현실을 버티는 게 너무나 버거울 때, '버티고'와 '거인'

김준모 | 기사입력 2019/11/15 [17:10]

현실을 버티는 게 너무나 버거울 때, '버티고'와 '거인'

김준모 | 입력 : 2019/11/15 [17:10]

 

▲ <버티고>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에 쉬운 일이 사라져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렸을 땐 짧게 느껴져서 아쉬웠던 하루하루가 점점 견디기 힘든 무게로 다가온다. 이 무게가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로 무거운 이들이 사회에는 존재한다. 이들에게는 출발선이 공평하다는 말도, 능력이 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도 다 허상처럼 다가온다. 왜냐하면 내가 바라보는 이들과 내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버티고>와 <거인>은 현실의 무게 앞에 숨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하루를 보내는 이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버티고>의 서영은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진수와 사내 커플이지만 이 사실을 숨긴다. 계약만료기간이 점점 다가오는 서영은 회사 문제를 이유로 자신을 멀리하는 진수의 모습에 불안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불안은 진수가 회사에서 나가게 되면서 현실이 된다.

 

서영의 불안은 관우를 통해 형상화된다. 서영이 일하는 사무실이 위치한 고층건물의 유리창을 닦는 관우는 줄 하나에만 의존한 채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계약직이라는 위태로운 줄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그 줄이 끊어져 언제 아래로 추락할지 모르는 서영에게 유리창 앞의 관우는 마치 자신의 모습과 같다. 이런 위태로운 줄에 매달려 있는 건 서영과 관우 만이 아니다. 열일곱의 고등학생 영재 역시 마찬가지다.

 

▲ <거인>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이동진 평론가가 '성장영화가 아니라 일종의 재난영화'라 평한 <거인>은 재난과도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영재를 바라본다. 영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착하고 상냥하고 예의바른 모범생이다. 그는 자신을 돌보아 주는 종교 관련 시설 관계자들에게 장래희망이 신부인 거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뒤에서는 시설의 물건을 훔쳐 장물로 친구들에게 파는 건 물론 남을 속이고 배신하는 거짓말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설 내 동생들에게 강압적인 언행을 행사하기도 한다.  

 

영재와 서영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둘 다 가족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점이다. 서영은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해 고막이 터진다. 이 고통 때문에 서영은 평생 균형감각에 이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남들과 같은 정상적인 방향으로 살아가는데 문제를 겪게 된 건 서영만이 아니다. 남편에 폭력 때문에 이혼한 서영의 어머니는 이후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비관만 하고 자식에게 금전적 도움과 관심을 요구하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 <버티고>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어머니는 서영에게 사랑을 줄 수 없었고 서영은 혼자 균형을 잡고 나아갈 동력을 얻지 못하였다. 서영의 등에 밧줄 하나만 매달아 준 채 버티는 삶을 살게 만든 건 부모다. 영재는 부모에 의해 거인이 되어간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집안을 부양할 능력이 없다. 영재는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시설에 갔지만 고등학생이 되며 눈치를 봐야 될 상황에 직면한다. 그런 영재에게 아버지는 동생도 시설에 맡기고 싶다는 절망적인 말을 한다.

  

동생이 시설로 오게 되면 자신이 시설에 더 이상 있지 못하게 될 것을 아는 영재는 절망과 분노에 찬 기도를 한다. 그 기도의 내용은 부모를 벌해주고 자신을 품어달라는 간절한 메시지이다. 영재는 부모가 주는 절망을 먹고 거인이 되어간다. 그래서 영재에게는 사는 게 숨이 차다. 마치 재난처럼 오직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해야 되고 남을 속여야만 된다. 영재에게는 내일이 희망이 아닌 고난처럼 다가온다.

 

▲ <거인> 스틸컷     © 필라멘트 픽쳐스



두 번째는 시간이 흐르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계약직인 서영에게 재계약 기간은 지옥과도 같다. 기간마다 조건은 달라지며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회식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은 물론 불합리하다 여기는 업무 역시 참고 해야 한다. 그녀는 계약직 인원이 1명으로 줄어들면서 친구인 예담과 경쟁해야 되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다.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마땅한 경력도 없는, 다시 도전할 젊음도 없는 서영에게 시간이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다.

 

영재는 고등학생이 되면 시설을 떠나야 된다는 사실에 노심초사 한다. 그에게 성장은 어른이 된다는 호기심과 설렘이 아닌 일상의 붕괴를 의미한다. 시설 밖 세상은 지옥과도 같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시설을 운영하는 부부도, 먹고 자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하는 아이에게 행복은 존재할 수 없다. 남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영재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두 작품은 현실을 버티는 게 너무나 버거운 두 인물을 통해 고달픈 삶의 모습을 조명한다. 누군가에게 삶은 재난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버티는 게 전부인 순간의 연속이다. 현실이 힘든 청춘들에게 요구되는 게 눈높이와 소확행이다. 높은 곳을 바라보기보다 자신의 능력에 맞춰 살아가고 소소한 것에서 확실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이들의 모습이 있음을 이 두 편의 영화는 보여준다.

 

[씨네리와인드 김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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