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뮤직박스는 있다, 아직 열리지 않았을 뿐

악마적 미학, <메데이아>를 떠올리며

김수민 | 기사입력 2019/11/19 [17:25]

누구에게나 뮤직박스는 있다, 아직 열리지 않았을 뿐

악마적 미학, <메데이아>를 떠올리며

김수민 | 입력 : 2019/11/19 [17:25]

 

▲ '뮤직박스' 스틸컷.    



영화 <뮤직박스>정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딸은, 그녀의 손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그래서 다시 그녀의 손으로 아버지를 고발할 수밖에 없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로 대변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애로우 크로스라는 경찰 조직에 소속되어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하던 전범이었다. 그리고 순진한 미국 농부이자 헌신적인 아버지로 완벽히 위장하여 주위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자신조차도 속여낸 치밀하고도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의 치부가 은폐되어 있던 뮤직박스를 열고, 이를 세상 밖에 끄집어낸 대가로 딸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다.

 

필자는 성선설을 지지하는 사람이지만, 미디어에 나오는 극악한 범죄자들을 보며 가끔은 성악설을 떠올린다. 인간은 한계로 가득 찬,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영화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질문하며, 과연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을지, 어디까지 밑바닥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실로 전범 미쉬카의 순진한 농부 연기는 대단했다. 나도 어쩌면 그가 냉전 체제의 공권력에 희생된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 '뮤직박스' 스틸컷.    



형사 사건 일류 변호사였던 애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변호하며 무혐의를 이끌어냈다.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에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애니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손으로 범죄자 미쉬카를 은폐하는데 일조한 것이다.

 

애니는 줄곧 일관된 태도를 보인다. 전범 마이클 라즐로는 자신의 아버지와 동명이인일 뿐이며, 이 재판에 회부된 라즐로는 공권력에 희생된 결백한 미국 시민이라고. 때때로 굳은 신념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한다. 그때의 미쉬카가 지금의 라즐로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수많은 증거들을 애써 회피하는 애니가 그랬고, 자신을 여전히 가정적인 미국 농부라고 믿는 라즐로가 그랬다. 라즐로의 머릿속에서 과거 살인 게임을 즐기던 미쉬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거나, 둘은 아예 다른 사람이었기에.

 

그러나 결국 이 영화는 정의의 손을 들어주기에 이른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을 확인한 뒤,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지만, 찝찝함은 없었다. 라즐로의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들을 전부 뒤집어냄으로써 아버지의 결백을 주장하던 애니도, 마지막 판도라의 상자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뮤직박스가 주는 반전이 그러했다. 아마 그녀는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뮤직박스를 여는 순간, 그녀는 아버지를 잃는다. 아버지를 잃고 싶지 않았던 애니는 뮤직박스를 끝내 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녀가 마지막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이 영화의 주제는 정의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영화의 결말이 이와 달랐다면,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애니의 입장이 이해가 가면서도, 그녀에게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내게 깊은 여운을 남긴 건 그녀가 직접 뮤직박스를 열었기 때문이었다.

 

[씨네리와인드 김수민]

 

 

보도자료 및 제보 : cinerewind@cinerewind.com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