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녀(2)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20 [09:55]

[단편/소설] 마녀(2)

김준모 | 입력 : 2020/01/20 [09:55]

[3]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옥선 아줌마와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은 다른 중학교로 진학할 것을 강요했다. 지금 가려는 중학교에서 날 싫어한다고, 항의전화가 빗발쳐 어차피 다니기 힘들 거라며 다른 학교로 가야 된다는 점을 계속 말했다. 두 사람이 복도에서 담배를 피며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아줌마는 내가 무섭다고 했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몇 번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며 짜증나 죽겠다고 말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다 죽어버리면 최고지 않겠냐며 웃었다. 아줌마는 걱정마라고 말했다. 내가 먹는 밥에 조금씩 독약을 넣고 있으니 길어도 1년 안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곧 죽을 거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름대로 선택을 했다. 옥선 아줌마의 바람대로 다른 중학교로 진학을 결정했다. 대신 아줌마가 해놓은 반찬은 하나도 먹지 않기로 했다. 아줌마 몰래 반찬을 버리고 배를 곪는 일이 잦아졌다. 아줌마는 점점 말라가는 내 몸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내가 죽으면 제일 먼저 기뻐하겠지.

 

진학한 중학교는 소위 문제아 집합소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사고를 쳐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한 애들에 조선족 출신 가정 애들로 이뤄져 있다. 입학과 동시에 소문이 났다. ‘안대녀가 여기로 왔다고. 날 보기 위해 다른 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분명 그럴 거야. 기대는 몇 분 만에 산산조각 났다. 권익성 패거리가 둘러싸고 말했다. 마법을 부려보라고. 그런 거 부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있으면 흥미가 떨어지겠지. 반응 없는 목각인형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으니까. 녀석들 중 한 명이 물었다. 남자 고추 본 적 있냐고. 단체로 성기를 꺼내더니 내게 오줌을 쌌다. 축축하게 젖은 내 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역 표시를 했으니 건드리는 놈이 있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 안대녀! 쓰레기통 비워!

그날도 그랬다. 청소시간에 비워도 되는 걸 굳이 점심시간에 비우라며 화를 냈다. 속셈이 빤히 보였다. 학교 뒤편에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괴롭힐 생각이겠지. 거긴 온갖 더러운 쓰레기가 가득하니까. 전에도 그곳에서 각목으로 맞은 적이 있다. 그때 체육관 2층 교무실에서 담배를 피던 체육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눈을 흘기고는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들은 항상 말한다.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르는데 어떻게 이긴다는 걸까. 커다란 쓰레기통이 가까워질수록 피하고 싶었다. 고양이를 피해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꼬리가 없다.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커다란 쓰레기통에 다다랐을 무렵 목은 딱딱하게 굳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놈들은 웃었다. 어떤 짐승도 먹잇감을 보고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가능한 건 인간뿐이다.

-안대녀 까꿍!

호경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기 무섭게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얼굴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졌다. 숨을 쉬면 쉴수록, 소리를 지르려면 지를수록 비닐은 더 깊게 파고들었다.

-안대녀 어때? 죽을 거 같아? 죽을 거 같으면 소리를 질러야 도와줄 거 아냐.

주먹이 날아와 배를 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처음에는 침이 흐르고 다음에는 구토가 나오더니 이내 목구멍 깊숙이 피가 뿜어졌다.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 게 즐거운지 주먹질을 반복했다. 또 다시 갇혀버렸다. 소리를 내지를 수 없는 덫에 잡혀버렸다. 죽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죽으면 엄마를 볼 수 없다. 죽음은 종착역이 아니다. 슬픔으로 떠나는 끝이 없는 통로다. 만약 그때 지수가 호경에게 달려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재석이 나를 놓치지 않았다면 그들을 모두 죽였을 것이다.

-이게 진짜 미쳤나.

비닐봉지를 벗었다. 침과 피와 구토로 범벅이 된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내 옆에는 지수가 누워있었다. 지수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익성은 지수의 위에 올라탔다.

-넌 뭔데 까불어? 뭔데 기어오르고 지랄이냐고!

만약 익성의 주먹이 지수의 얼굴을 때렸다면 놈을 가루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은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난 정말로 엄마를 볼 수 없었겠지.

-그만 둬.

은성의 말에 익성 패거리는 행동을 멈췄다. 하지만 그 눈빛들은 공포나 두려움의 표출이 아니었다. 잠시 먹잇감을 맡기고 돌아가는 하이에나 떼거리처럼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은성이는 말수가 적어. 좀 의기양양하게 굴어도 될 텐데 조용하잖아. 그런데 지수 너, 그날 대체 무슨 생각이었어. 은성이가 도와주러 와서 다행이지 맞아죽을 뻔 했잖아.

-은성이한테 처음에 부탁했을 때 걔 듣지도 않았어. 내가 선생님들 부르려고 했는데 다들 교무실에서 꿈쩍도 안 하니까 내가 뛰어가는 거 보고 불안해서 따라온 거야. 나타날 거면 더 일찍 나타나주지. 한 대 맞았는데 죽을 거 같더라. 죽일 테면 죽이라는 생각이었어. 너랑 같이 황천강 건너면 심심할 거 같지 않아서. 있지,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살아있는데 네가 죽는 거야. 네가 죽으면 나, 절대 살아가지 못할 거 같아.

넌 가족이 소중하지 않니? 난 가족이 세상 누구보다 소중해. 만약 엄마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엄마가 없어지면 알 수 있어. 나랑 엄마는 한 몸을 공유했거든. 우리의 심장박동은 하나야. 맥박이 약해지면 누군가 세상에서 사라진 거야. 내가 죽으면 지수 너도 따라 죽을 거야?

-그때가 되면 내가 네 엄마가 되어줄게. 혼자서 외롭지 않게 손 잡아줄 거야. 이 더러운 집에서, 저 사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널 지켜줄게. 그러니까 설아야, 나랑 친구가 되어줘.

7살 이후로 친구라는 단어를 들은 적이 없다. 어느 누구도 외진 무인도에 다리를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잠시라도 정박하고 싶지 않았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난파선조차 외면했다. 선생님들은 빈말로라도 나를 가리켜 친구라고 하지 않았다. 지수는 섬에 새로운 이름을 달아줬다.

-나 그만 가볼게. 내일 보자.

지수가 입을 맞춘다. 내 입술 위로 자기 입술을 포갠다. 현관 앞에 선 지수를 껴안는다. 그 애의 머리가 코에 닿는다. 검은 머리카락 위로 눈물을 떨어뜨린다. 허리에 포갠 내 손을 지수가 잡는다. 그 애도 고개를 내린다. 같이 눈물을 흘린다. 미안하다는 말. 미안하다는 지수의 말이 슬프게 다가온다. 너도 저주에 걸린 거니? 나처럼 빠져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거구나. 우리에게 구원은 없을 거야. 위로는 잠시 슬픔을 잊게 만들 수 있지만 고독에서 빠져나오게 만들 순 없어. 내일이 오면 햇빛은 망망대해로 안내하겠지. 불 꺼진 등대는 암초를 비춰주지 않고 파도는 거세게 때릴 거야. 산산이 부셔져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고통은 끝나지 않겠지. 매일 하늘이 흐리더라도, 태풍이 불고 번개가 내리치고 안개로 가득하더라도 지수 네가 곁에 있어준다면 좋겠어.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다시 엄마를 만나기 전까지 내 곁에 있어줘. 나도 네 곁에 있어줄게. 널 사랑하니까, 그러니까 내 곁에 있어줘.

 

[4]

 

한 달에 한 번 엄마랑 수봉공원에 갔다. 거북이 모양을 한 놀이기구를 타는 걸 가장 좋아했다. 느리게 물위를 도는 그 기구 위에서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었으니까. 공원 입구에는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 온갖 종류의 인형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엄마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인형을 사줬다. 그땐 몰랐다. 인형에 정신이 팔려 눈물이 가득 고인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설아 지켜줄게. 우리 설아 행복하게 엄마랑 같이 살자. 알았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도 사람이란 걸. 엄마만의 행복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걸. 그걸 알게 된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듯했다. 바로 지금처럼.

눈을 사러 가자고 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수는 스마트폰을 보여줬다. 역 근처에 시장이 있는데 그 안에 잡다한 걸 파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거기서 의안을 사는 거야. 양쪽 다 눈이 있으면 넌 더 이상 안대녀가 아니잖아. 그러면 혹시 알아. 저주가 풀리고 어머니가 돌아올지.

지수는 미래를 스케치했다. 의안을 끼면서 설아에게 내려진 침묵의 저주는 풀린다. 눈은 원래대로 돌아오고 모든 이들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던 엄마의 귀에도 들어간다. 설아는 다시 엄마와 만나게 되고 동화의 한 문구가 아래에 흘러나온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 꿈의 첫단계를 위해 가게를 향했다. 노인은 내 눈에 맞는 사이즈가 없다고 말했다. 더 작은 크기를 주문할 테니 일주일쯤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지수를 따라 시장구경을 했다. 지수는 내 입술에 틴트를 바르고 온갖 액세서리를 가져다 댔다.

-설아 넌 진짜 마녀가 분명해. 너무 예뻐서 신이 저주를 내린 거야. 신도 인간이랑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질투한다잖아.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그러다 해가 지는 걸 보지 못했다. 붉은 전등불이 온전한 어둠을 밝힐 때에야 집을 향했다. 수많은 길 중 가장 작은 길을 택했고 출구 앞에서 최악의 가능성과 마주했다.

-안대녀 아냐? , 익성아! 저기 안대녀랑 똘마니다. 잡아서 조질까?

지수가 말했다. 빨리 튀자고. 그 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무작정 달렸다. 지수의 뒷모습을 보며 숨이 차오르다 못해 터질거 같은 고통을 느꼈다. 잡히면 안 돼. 잡히면, 잡히면 더 괴로울 거야, 잡히면....... 골목을 통과하던 중 쌓아둔 나무상자 더미에 넘어졌다. 지수야, 도와줘! 지수야! 지수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계속 뛰어간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다. 또 다시 난 미로에 홀로 남겨졌다.

 

상흔은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으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믿음은 거짓이다. 죄책감이 싫겠지. 그 무거운 감정을 짊어지고 싶지 않아 침묵으로 일관한다. 경찰이 지나간다. 시선 한 번 주고는 제 갈 길을 간다. 안대를 본 거다. 사냥당하는 마녀를 구해줄 용사는 없다. 어느 동화에서나 마녀는 죽는다. 아지트란 곳에 도착했다. 푸른 벽과 새하얀 문이 눈에 들어오는 이층짜리 단독주택이다. 호경은 날 소파에 던졌다. 익성은 부엌에서 캔 맥주를 가져와 자기들끼리 마셨다.

-안대녀도 혼자 살지? 전에 너네 집 근처까지 가봤어. 호경이 얘가 보고 뭐라 그랬는지 알아? 쓰레기 아파트래. 하하하 얼마나 더러운지. 그런데서 지내니까 네 몸에서 악취가 나는 거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가 뭘까. 때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더 악랄하고 추잡한 짓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겠지.

-너 말이야, 지수 걔랑 친하더라. 걔가 만날 너네 집에 가더라고. 그런데 걔가 어떤 년인지 알고 어울리는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녀석의 얼굴에 장난 끼가 없다. 침착한 눈빛에는 서늘함이 얼어있다.

-걔 초등학교 때 사람을 죽였어.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를.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지수가? 그 조그마한 애가? 그러면 내가 혼란이라도 겪을 줄 알았나 보지? 정신 차려. 거짓말에도 정도가 있는 거야.

-내가 걔랑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거든. 그래서 잘 알아. 걔가 얼마나 간악하고 교활한 년인지. 만날 같이 어울리던 친구를 따돌렸지. 누구도 같이 놀지 못하게 막았어. 심지어 생일날도 혼자 보내게 만들었고. 직접적으로 때리거나 욕을 한 게 아니라 선생도 방법이 없었어. 그렇게 3개월을 속앓이 하던 소심한 여자애가 자살을 했어.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그 유서에 뭐라 적혀있었는지 알아? '김지수가 날 죽였어' 이 글자가 빼곡하게 써져 있었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걔가 왜 너한테 붙어다니고 도와주려고 하는지 알아? 그 죽은 애가 너랑 닮았거든. 그래서 그러는 거야. 자기 죄책감 좀 덜어보겠다고 너한테 잘 대해주는 거라고. 그런데 있잖아, 진짜 김지수가 너한테 잘 대해주고 있다고 생각해?

무슨 의미일까. 어떤 음흉한 흉계를 꾸미고 있기에 다들 입가에 비소를 머금은 걸까.

-만약 그날 김은성 그 새끼가 오지 않았다면 그년은 우리한테 달려들지 않았을 걸? 오늘 봤잖아.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거. 걔는 널 죄책감을 덜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가증스러워. 존나 착한 척하잖아.

익성이 캔을 집어던진다. 옆으로 지나가면서 어깨에 맥주가 튀었다. 왜 화를 내는 거야. 너야 말로 잘못했잖아. 네가 한 잘못만 따져 봐도.......

-아니지. 정확히 해, 안대녀. 난 사람을 죽인 적은 없어. 너랑 네 똘마니가 죽였지! 너희 둘은 당해도 돼. 죽을 만큼 쳐 맞아도 할 말이 없다고. 그런데 네 눈빛, 그게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는 다 품고 있잖아. 세상이 싫어해야 되는 건 넌데 왜 네가 세상을 싫어하냐고!

놈들이 달려든다. 재석과 호경이 팔을 잡고 민규가 턱을 잡아 들어올린다. 익성은 잭나이프를 꺼낸다.

-네 몸에 새겨줄게. 네가 마녀라는 증거를 온몸에 남겨줄 거야!

더 이상 망가지기 싫다. 여기서, 여기서 더 망가지면 엄마는 날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도망쳐야 된다. 지금 당장.

 

눈을 떴을 땐 새하얀 달빛이 아닌 누런 가로등빛이 날 반겼다. 아스팔트의 냉기가 등줄기를 파고 들어 아직 살아있음을 인식시켜 주었다. 일어설 힘을 잃어버리고 다시 눈을 감을 즈음 누군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손으로 날 껴안았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