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아이러니

안지현 | 기사승인 2020/01/20 [12:00]

<복수는 나의 것>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 아이러니

안지현 | 입력 : 2020/01/20 [12:00]

 * 주의!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복수는 나의 것> 포스터  © 스튜디오박스

 

[씨네리와인드|안지현 리뷰어]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는 있다.’ ‘나쁜 사람은 없는데 나쁜 짓은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이 아이러니한 문장들을 관객에게 친절하게 떠먹여 준다. 너무도 친절해 도리어 불편할 정도로 정성스레 대접한다.

 

 

  ▲ <복수는 나의 것> 스틸컷  © 스튜디오박스

 

이 영화에는 가해자가 없다. 가해자를 굳이 찾자면 그것은 바로 자본일 것이다. 주인공 청각장애인 류(신하균 분)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를 위해 신장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그러던 와중 장기밀매조직에 의해 사기를 당하게 된다. 더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었던 류에게 연인인 영미(배두나 분)는 아이를 유괴하자고 제안한다. 영미는 거듭 망설이는 류에게 이것은 화폐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 착한 유괴라며 유괴를 정당화한다. 그렇게 류는 동진(송강호 분)의 아이를 납치하게 되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아이는 사망하게 된다. 이에 아이를 잃은 동진은 류에게 복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가해자는 굳이 말하자면 자본이다. 자본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류가 공장에서 해고당해 장기밀매업자에게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장기밀매업자에게 사기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영미 또한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무정부주의 혁명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류는 영미의 제안대로 유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은 실재하는 가해가 아니다. 따라서 영화 속 피해자들의 복수는 진정 가해자를 향한 복수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복수는 나의 것> 스틸컷  © 스튜디오박스

 

또한 이 영화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심지어 영화는 그것을 꽤 적나라하게 강조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라디오 DJ가 읽어주는 류의 사연은 저는 착한 사람입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류에게 복수를 하는 동진 또한 형사에게 나름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명확한 가해자가 없지만 복수 행위는 오고 가고, 나쁜 사람은 없지만 나쁜 짓들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며 관객은 이전의 복수 영화에서와는 다르게 분노할 대상을 찾지 못해 방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쁜 사람을 찾아내려는 관객에게 영화는 효과적인 편집기술을 이용해 계속해서 혼란을 준다. 예기치 못하게 죽어버린 아이를 바라보며 당혹감에 휩싸인 류의 표정을 로우 앵글로 촬영해 그 효과를 극대화시켜 아이가 죽은 것이 류의 탓이 아님을 완전히 이해하려는 찰나, 컷이 바뀌며 같은 구도로 아이를 잃은 동진의 모습을 담아낸다. 관객은 아이를 잃은 동진이 부검을 지켜보며 오열하는 장면을 통해 동진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따라서 류에게 화살을 돌리려 하지만 류의 누나의 죽음을 바라보며 하품을 하는 동진의 모습에 다시금 혼란에 빠진다.

 

  ▲ <복수는 나의 것> 스틸컷  © 스튜디오박스

 

영화 후반, 관객들은 결국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라는 동진의 아이러니한 문장에 그 어떤 이질감을 느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영화를 통해 수많은 아이러니를 모조리 꼭꼭 씹어 삼켜냈지만 체한 것 마냥 속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나쁜 사람은 없지만 나쁜 짓은 있고,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있을 수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의 원인은 자본이 우선시 되는 사회 구조에 있다. 그 사회 구조에 속한 개인은 어딘가 꽉 막힌 속을 부여잡은 채 끝없이 쉐도우 복수만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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