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녀(3)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1/21 [10:17]

[단편/소설] 마녀(3)

김준모 | 입력 : 2020/01/21 [10:17]

[5]

 

-너 몇 살이니? 눈은 왜 그러고?

덩치가 큰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이것저것 물어봤다.

-말을 잘 하는 구나. 아니, 좀 의외라서. 아저씨는 말이지, 밖에 있는 저 아저씨들이랑 다른 사람이야. 아저씨가 하는 일은 설아가 다시 학교에 다녀도 되는지 판단하는 거란다.

엄마랑 같이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표정을 바꿨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있었다.

-엄마도 설아랑 같이 살고 싶대. 그런데 지금은 그러기 힘들다나 봐. 엄마 마음이 많이 아파서 다 나을 때까지 설아가 오랫동안 기다려야 될 거야.

엄마가 먼저 약속을 어겼다고 했다. 엄마가 끝까지 지켜주겠다 했는데, 엄마는 설아만 있으면 된다고 그랬는데, 엄마가 먼저 날 배신했다고, 그래서 내 마음이 더 상처를 입었다고, 그러니까 엄마가 치료해줘야 된다고 투정을 부렸다. 남자는 날 꼭 안아주었다.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게 노력할 테니 꼭 살아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날 무서워하지 않는 어른은 그 남자가 마지막이었다.

 

눈앞에 머그컵이 보인다. 손을 드니 테이블이 만져진다. 허리가 아프다. 계속 굽히고 있었나 보다. 고개를 드니 은성이가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란 걸 알겠다. 고마워. 말을 마치기 무섭게 자리를 뜬다.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화장실을 향하는 거 보니 어지간히 참았나 보다. 놈들 눈에 들어올 까봐 일부러 창가는 피해 앉았나 보다. 카페니까 난리라도 치면 경찰이 바로 출동하겠지. 카페는 처음 와 본다. 하나 둘 서로를 마주보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가슴이 설렌다. 분위기 있는 공간에서 누군가와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 속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다. 이 자그마한 테이블과 의자, 머그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어디 아파? 얼굴 완전 빨개. 열나는 거야?

아냐, 괜찮아. 그나저나 고마워. 너 이 동네에 사는 거야?

-아니. 운동 갔다가 오는 길에 너 발견해서. PC방이나 찜질방보다는 카페가 좋겠다는 생각에 여기로 왔어. 24시간 하는 데가 별로 없어서. 또 익성이 녀석들이 괴롭힌 거지?

맞아. 이번에는 당하지는 않았어. 도망쳐 나왔거든. 은성이 너 지수랑 같은 초등학교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런데 솔직하게 답해줄 수 있어? 지수, 초등학교 다닐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자살했다는데 사실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아. 엄청 유명한 사건이었고 그 여자애 아빠가 학교까지 찾아와서 지수 때렸으니까. 익성이 그 새끼 그거 말하려고 널 괴롭힌 거야?

그랬구나. 다들 아는 이야기였구나. 걔네가 그러더라. 나도 지수도 둘 다 살인자니까 당해도 된다고. 자기들은 사람은 안 죽였으니 우리가 더 나쁘다고 하더라고.

-안대녀 너 진짜 사람 죽인 거야?

하하, 그래. 죽였어. 죽였으니까 이러고 사는 거겠지. 내가 죽인 사람은 내게서 너무 많은 걸 앗아갔어. 그래서 그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 생각했지. 그런데 죽이고 나니까 더 많은 걸 잃어버린 거 있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어서 빛이 비추던 반지하 창문을 내가 닫아버렸어. 어둠속으로 내가 날 던진 거야.

-솔직히 말하면 난 너희가 두려워. 이건 내 감정이니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줘. 지수랑 초등학교 때 꽤나 친했어. 지수는 뭐랄까 모든 애들이 좋아하는 그런 애였거든. 그래서 지수가 그 애랑 놀지 말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어. 우린 전부 방관자가 아니라 가담자였지. 그 애가 그렇게 여릴지, 지수가 그렇게 악독할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익성이도. 그 애하고도 친구였거든. 내가 요즘 유도를 배운다고 그랬어. 그 한 마디 했는데 갑자기 한 번 붙어보자고 하더라. 내가 덩치가 더 크니까 당연히 이기고 있었는데 걔 친구들이 팔 다리를 잡는 거야. 의자로 내 팔이랑 다리를 내리쳤어. 그리고 얼굴을 계속 내리쳤어. 분했던 거지. 자기가 더 강할 줄 알았는데 내가 이기니까 분했던 거야. 난 아직도 걔 얼굴만 보면 오금이 떨려. 몇 달을 병원에서 보냈어. 1년이 지나고 학교로 돌아갔는데 익성이도 지수도 다 있는 거야.

은성이의 손이 떨린다. 겁을 먹은 걸까. 아니면 울분에 찬 걸까.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난 피해자야. 그런데 걔들이랑 같이 1년을 피해봤어.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게 되었다고. 이게 뭐지? 왜 이래야만 되는 거지? 난 익성이한테 사과를 들은 적 없어. 그 애의 아버지도 마찬가지겠지. 지수가 사과했단 말은 들어본 적 없으니까. 안대녀 네가 누굴 어떤 이유로 죽였는지 난 몰라. 다만 다른 사람한테 해를 끼치는 사람하고 어울리고 싶지 않아. 또 그때처럼 침대에만 누워서 부모님이 우는 소리만 듣고 싶은 생각, 난 없거든. 너희들이 무서워. 익성이도, 지수도, 안대녀 너도, 다 나한테는 너무 무서운 사람들이야.

 

집에 불이 켜져 있다. 옥선 아줌마가 실수로 안 끄고 간 걸까. 핸드폰이 있다면 연락을 해 봤을 텐데. 아줌마는 핸드폰을 사 주라고 나온 정부 지원금을 주지 않았다. 그 돈은 나를 돌보는 자신에게 주는 상여금이라 했다. 지난 8년 간 아줌마는 한 번도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적 없다. 아직 안에 있다면 지하실로 가야 되는 걸까. 익성 일당은 아닐 것이다. 그 안에서 대기하고 있어봐야 나를 어찌할 수 없단 건 놈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집 밖에서 창문을 연다. 지수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다. 문을 여니 지수가 일어선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입을 열려는 그 애에게 달려든다. 입술을 포개고 혀를 맞댄다. 어떤 말을 해도 삼킬 것이다. 내 귀가 들을 수 없게. 네 모든 생각과 감정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릴게.

 

[6]

 

-너한테 고백할 게 있어.

지수는 날 바닥에 눕혔다. 거칠게 옷을 벗기며 숨을 헐떡였다.

-나 사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수정이란 애였는데 내가 그 애를........

알아. 그 애를 죽인 거. 당황하지 마. 난 마녀잖아. 모르는 게 없다고. 네 눈을 본 순간부터 알았어. 너처럼 나도 슬픔에 잠겨 있는 거.

-난 겁쟁이야. 그 애한테 거절당하고 나서 두려웠어. 혹시 소문을 내면 어떡하지. 나처럼 친한 친구가 생겨서 비밀이라고 말해버리면 어쩌지. 그래서 아무도 그 애랑 친해지지 못하게 소문을 냈어.

수정이가 죽어서 너무 슬펐겠다. 난 다시 엄마를 만날 수 있지만 넌 아니잖아.

-일 년 동안 정신과 진료를 받았어. 다시 학교에 왔을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넌 알 거야. 다들 날 바라보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니나 다를까 이미 소문은 다 나 있고 아무도 나랑 어울리려 하지 않았어. 그러다 널 본거야. 수정이랑 닮은 너랑 친해지면, 그러니까 마녀인 널 인간으로 만들면 용서받지 않을까 해서.

용서해 줄게. 내가 너를 용서할 거야. 넌 이제 구원받았어. 그러니 날 구원해 줘. 네가 내 엄마가 되어줘.

-안 돼. 그럴 순 없어. 네 엄마는 이 세상에 있잖아. 기다리면 온다고.......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들어.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아. 사랑했다면 돌아왔을 거야. 내 온몸에 상처가 나고 마음이 썩어서 벌레들이 나뒹굴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거라고. 내가 마녀가 된 날 엄마가 말했어. 넌 이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그러니 누구의 사랑도 받을 수 없다고. 안기려는 날 밀치면서 울음을 터뜨렸어. 자기가 괴물을 낳았다고 경찰들에게 말하는 걸 들었어. 그런데 엄마가 왜 돌아오겠어.

-그럼 왜 기다렸던 거야?

살고 싶으니까. 어떻게든 살아가고 싶으니까 엄마를 기다린 거야. 그래야 나란 존재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거니까. 더 이상 혼자서 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지수 네가 내 엄마가 되어줘. 그리고 날 사랑해줘.

지수는 옷을 벗었다. 내 가슴을 애무하고 성기에 손가락을 넣었다. 부드러운 살결을 맞대며 서로의 향기를 맡았다.

-수정아, 용서해줄 거지? 나 사랑해줄 거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엄마, 사랑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어.

이 밤이 끝나지 않길. 심장박동 소리가 뜨겁게 울리는 이 소리가 절대 멈추지 않길. 위층의 소음보다 더 강하게 귀를 때리는 우리의 소음이 자취를 감추질 않길 바랐다.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나서야 잔뜩 젖은 바닥과 침으로 범벅이 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를 비추는 태양이 되었다.

 

엄마가 날 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인정하기 싫을 뿐이었다. 엄마는 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었다. 항상 엄마 곁을 지킬 거라 굳게 다짐했다. 우리 집에 그 남자가 오기 전까지.

 

외로워서 그런 거야. TV만 봐도 알잖아. 남자가 여자 좋아하듯 여자도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엄마는 여전히 날 사랑해. 이 사랑은 변함이 없어. 그치, 스티치? 이 왕눈이 코알라야, 어서 맞다고 말하라고! 스티치는 외계인이야. 그땐 그런 것도 몰랐지. 세상에 나와 엄마만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 아저씨가 싫었어. 날 보고 실실 웃기만 하는 그 얼굴이 짜증이 났지. 아저씨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어. TV를 보거나 과자를 먹고 주구장창 통화만 했지. 가끔은 내 장난감을 함부로 만져서 화를 내기도 했어. 엄마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가야 되니까 더 인내심을 지니고 남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했지. 그러다 그 일이 터져버렸어. 아저씨는 엄마랑 같이 잘 테니 다른 방에 가서 자라고 했어. 당연히 거절했지. 항상 엄마랑 같이 침대에서 잤으니까. 엄마는 날 달래보려 했지만 소용없었어. 아저씨를 싫어했으니까 나와 엄마만의 공간인 침대에서 내보내고 싶었지. 아저씨의 큰 발이 날 걷어찼어. 정말이야. 붕 날아서 문에 부딪쳤다니까. 잠시 동안 숨을 쉴 수 없었어. 엄마가 화를 내자 문밖으로 뛰쳐나갔어. 이런 더러운 집구석 다시는 안 올 테니까 다시는 날 찾지 말라며. 생각했지. 엄마가 날 달래줄 거라고. 언제나처럼 다가와 안아주고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줄 거라고. 현관문 소리가 들리고 눈물이 흘렀어. 내가 아니라 아저씨를 잡기 위해 나간 거야. 그때 버림받은 거야.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스티치가 코알라가 아닌 외계인이란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부정했던 거야. 어쩌면 떠나야 했던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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