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대디의 민낯을 통해 아동문제를 바라보다

영화 <온다>를 통해 바라본 일본 사회의 가족해체와 아동문제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2/03 [14:40]

육아대디의 민낯을 통해 아동문제를 바라보다

영화 <온다>를 통해 바라본 일본 사회의 가족해체와 아동문제

김준모 | 입력 : 2020/02/03 [14:40]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2010년대 일본에서 유행하는 남성상은 이케멘(イケメン·꽃미남)이 아닌 이쿠멘(イクメン·육아남)이다. 맞벌이 가정의 증가와 남성의 가정 내 역할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육아를 하는 남자들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용어가 바다 건너 한국까지 오게 된 이유는 영화 <아사코>의 두 주연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카라타 에리카의 불륜 사건 때문이다.

 

두 사람이 3년 간 불륜을 저지른 건 물론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관계를 의심하는 아내인 안에게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었다. 특히 불륜이 안이 임신 중 이뤄졌다는 점, 관계를 들킨 후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만났다는 점에서 아내를 기만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여기에 더해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대중을 기만하는 행동도 하였다. 바로 이쿠멘인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는 안을 만나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며 가정과 육아에 충실한 이쿠멘 행세를 하였다. 이를 통해 주가를 높이며 대세 배우로 등극한 그이지만 그 실상은 어려운 일은 아내에게 내팽개쳐 두고 술을 마시러 나가는 게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 가정의 일은 외부에서 그 진상을 알 수 없다. 부부가 어떤 가면을 쓰던 외부에서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집 안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건 두 사람이 전부기 때문이다.

 

▲ '온다' 스틸컷  © 네이버 무비



이런 히가시데 마사히로 사건을 보며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온다>가 그 주인공이다. 소설 <보기왕이 온다>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원작과 아주 큰 차이점을 보이는 지점이 하나 있다. 주인공 히데키와 카나의 결혼 장면을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세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 장면과 이후 생활을 직장 동료들까지 동원해 만들어 내며 소설에는 없는 장면들을 창조해낸다. 이 지점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온다>가 공포장르의 영화라는 점 때문이다. 장르영화가 장르적 재미를 위해 장면을 추가하거나 스토리를 바꾸는 경우는 봤어도 드라마적인 측면을 위해 장면을 추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군다나 그 장면들이 스토리 전개에 있어 흥미를 더하는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가 두 사람의 결혼과 이후 육아 장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는 그가 초점을 맞춘 방향성이 아동문제에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히데키는 블로그를 운영한다. 블로그에는 하루하루 딸과 얼마나 행복한 하루를 보냈는지와 육아대디, 이쿠멘으로서의 일상이 적혀 있다. 딸아이가 다쳤을 때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내와 달리 침착하게 대처했다는 그의 글은 많은 육아대디들에게 감명을 준다.

 

노래방에서 그를 존경한다며 고개를 숙이는 육아대디들의 모습은 파워블로거 히데키의 인기를 실감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경악을 유발한다. 아이가 다쳤을 때 히데키는 말 그대로 침착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블로그 글을 작성하는 히데키의 모습에 아내 카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카나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집 안은 난장판이다. 히데키는 집안일은 하지 않고 블로그 삼매경이다. 사람들은 히데키가 쓴 글만 보고 카나가 행복할 것이라 여긴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착하고 듬직한 남편이 있다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카나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답은 나와 있다. 분노 그리고 남편을 향한 증오일 것이다.

 

원작이 악령의 정체를 남성의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들의 원한으로 설정한 반면 영화는 그 대상을 아이로 설정한다. 남편의 가식과 무책임에 질린 카나는 원작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바로 남편의 친구인 대학교수와의 불륜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는 소외되고 버림받는다. 독박 육아를 하게 된 카나에게 아이는 귀찮은 존재이자 남편의 피가 섞인 보기 싫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 '온다' 스틸컷  © 네이버 무비



<고백>, <갈증>을 통해 아동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여성학대 문제를 다룬 원작을 한 발짝 더 진보시킨다. 가정에서 소외되고 고통 받는 여성인 카나가 아이에 대한 애정을 뒷전으로 내팽개쳐 두고 아이는 고통을 경험한다. 불신과 혐오 속 가족 해체의 불안을 고스란히 껴안은 것이다. 성인은 혼자 살아갈 수 있지만 아이는 그럴 수 없다. 히데키의 위선은 그토록 사랑한다 말했던 딸에게 고통을 주게 된다.

 

일본의 사회적 문제 중 하나는 가족해체다.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소외되고 고통 받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도덕적 의무뿐만 아니라 책임감이 부족한 부모는 자식과 자신의 삶을 분리한다. 히데키는 존경 받는 블로거 이쿠멘으로, 카나는 사랑받는 여성으로 가정 밖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하였고 이런 부모 안에서 아이는 소외된 채 상처를 받는다.

 

나카시마 테츠야는 원작이 지닌 이쿠멘이란 소재를 통해 일본 사회가 지닌 아동문제까지 논의를 확대시키는 깊이를 보여준다. 연극은 언젠가 끝나고 무대 뒤의 정체는 밝혀지지만 그 시간 동안 받았던 고통과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진정한 공포란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귀신이나 괴물이 아닌 양지에서 괴물의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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