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관녀(棺女) 4화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4/24

[중편/소설] 관녀(棺女) 4화

김준모 | 입력 : 2020/04/24 [10:52]

그날 오세근은 집에서 출발해 오전 7시 공동경작지에 도착했다.

 

그를 비롯해 15명의 마을 남성들이 함께 일을 했으며 연쇄살인범 때문에 화장실은 2인 1조로 이동했다고 한다.

 

오후 5시 반에 일이 끝났고 당시 촌장이던 노원섭의 집에서 다 같이 식사를 했다고 한다.

 

오세근을 포함한 20대 3명은 주점으로 2차를 나갔고 파했을 때 저녁 8시 무렵이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오세근은 혼자 집으로 향했다.

 

오세근의 집만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주점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나 목격한 사람들의 말로는 술을 못한다며 두 잔 이상 마시지 않았으며 안주에도 손을 거의 대지 않고 말수도 적었다고 한다.

 

몇몇은 그 모습이 살인을 위해 몸을 무겁지 않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며 지금 생각해 보니 섬뜩함이 든다고 말했다.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 적이 있다.

 

왜 범인은 그날 살인을 저지른 걸까.

 

고된 노동으로 몸이 지치고 술자리까지 가진 날 굳이 사람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게 궁금증이었다.

 

범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알 수 있다는 답을 받은 그 질문은 여전히 의문이다.

 

꼭 그날 살인을 저질러야 될 이유가 있었을까.

 

일각에서는 19번의 살인 동안 증거를 남기지 않은 범인이 실수를 한 이유가 이날의 행적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하자면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날 무려 3명을 죽인 것이다.

 

발걸음은 버스정류장에서 멈췄다.

 

오세근이 일행들과 헤어진 뒤 목격된 첫 번째 장소는 이 버스정류장이다.

 

그의 집 방향과 반대라는 점에서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갔다는 건 살인을 위해 이동했다는 설명이 적절할 것이다.

 

당시 버스운전기사는 오세근을 봤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곳을 지나 살인을 위해 현장을 향했다.

 

버스정류장은 옛날 모습 그대로다.

 

녹이 쓴 표지판에는 버스이동경로를 붙인 종이가 바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벤치의 나무는 썩어 문드러져 형체만 남아있다.

 

지금도 버스가 다니기는 하는 걸까.

 

다시 살인현장까지 걷기 시작한다.

 

효림이는 좋겠다.

 

마을회관에 앉아서 어르신들이 주는 간식 먹으면서 편하게 물어보겠지.

 

난 여기서 계속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진범이 잡히고 주민 수가 줄어들면서 살인현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고 한다.

 

마을의 절반이 인간의 숨결 대신 자연의 바람을 품게 된 것이다.

 

사건이 잊힐 즈음 물꽃 마을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다.

 

범죄 전문가들이 등장해 사건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특집 다큐멘터리 연작 중 마지막 편이라 구색 맞추기로 껴 맞춘 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새로운 건 없었고 책의 내용을 또 다시 반복, 또 반복해 짚어줄 뿐이었다.

 

“물꽃 마을 연쇄살인사건은 믿음에서 비롯된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마을 내부에 결속이 단단하다 보니 살인이 외부에 의해 이뤄졌다고 본 것이죠. 경찰이 범인을 늦게 잡은 건 그들의 무능함 때문이 아닙니다. 마을이 지닌 특수성 때문이죠. 경찰을 외부의 적으로 취급하고 단단하게 결속한 마을 사람들 때문에 수사가 어려웠던 겁니다.”

 

“평범한 동네 아줌마가 사건을 해결했다, 그러니까 경찰이 무능했던 거다. 이건 잘못된 시각이라고 봐요. 경찰을 외부인이라 여기고 수사를 단단하게 막고 있던 벽이 내부에서 허물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생각합니다. 당시 경찰은 탐문수사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용의자로 의심이 되어도 연행하기 힘든 환경이었던 반면 김숙자 씨는 질문을 빙자한 심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어요. 그분이 피해자 유족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고요.”

 

“우리야 당연히 외부 사람인 줄 알았지. 옆집 밥그릇 개수도 아는데 당연히 의심하지 않지, 그래. 괜한 애들만 두들겨 팼어, 야. 난 떠난 사람들 마음 이해해. 얼마나 억울하겠어. 20건이야, 20건! 그놈 하나 때문에 마을 전체가 공포에 빠졌다고. 야, 우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이해가 가요? 아니, 안 갈 거야. 이건 안 겪어보면 몰라. 어두워만 지면 나갈 수가 없었다니까.”

 

“밤에 누가 아파. 그러면 이웃이랑 같이 마을회관으로 가. 그러면 마을회관에서 젊은 애들 깨워다 의사 선생 데려오게 하고 그랬어. 아니, 젊은 남자들도 죽는 마당에 무슨 자신감으로 밤중에 혼자 다녀? 집에 들이닥쳐서도 죽이니까 다들 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그고 그랬다니까. 당연히 외지인으로 알지 누가 마을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겠어.”

 

“그 자식 이름도 말하기 싫어요. 아, 당연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죠. 말수도 적고 도와달라는 일은 다 도와주니까 순하고 착한 사람이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충격이 말도 아니었어. 유괴는 생각도 못했죠. 그 집이 마을에서 좀 멀다 보니까 다들 갈 생각을 안 했거든요. 그런 놈이 사람 좋은 척 옆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소름이 돋아요, 소름이.”

 

“누구나 편견이란 게 있잖아요. 몸이 아픈 사람은 착할 것이다, 나쁜 짓을 할 수 없다. 뭐, 그런 생각 때문에 그 녀석이 더 설치고 다녔던 건지도 모르죠. 그때는 마을에 건장한 애들도 많았으니까 쟤들이 범인이면 범인이지 설마 했지요. 너무 화가 나서 그 마을에서는 더 이상 살지 못하겠더군요. 떠날 때는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후련해요. 촌장님이 많이 노력해주셨지만 원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오세근은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이었다.

 

그의 범행을 입증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지.

 

버스기사의 진술도 증거가 나오고 오세근이 범인임이 밝혀진 이후에야 등장했다.

 

의심되는 모든 상황을 숨기고 있었을 거야.

 

괜히 입을 열었다가 마을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깨지고 무너지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다.

 

20번째 살인현장에 도착했다.

 

이 살인을 끝으로 더 이상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범인을 잡았기 때문이라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범인이 이 사건을 끝으로 손을 씻으려 했다고 말한다.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다른 집들처럼 부엌과 화장실은 외부에 있고 깨진 장독과 널브러진 농기구들이 마당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내부의 구조는 오세근의 집과 같다.

 

차이라면 현관과 안방 모두 4면에 문이 있다는 점이다.

 

부엌으로도 문이 나 있고 뒷마당과 옆으로도 빠져나갈 수 있다.

 

짐과 핏자국이 없는 거로 봐서는 사건이 종결된 후 깨끗하게 치운 거로 보인다.

 

일가족이 몰살당한 집을 청소했다.

 

이후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팔기 위해 청소를 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지.

 

아픈 상처를 잊고 싶다거나 사건 현장에 남겨서는 안 될 걸 남겼다거나.

 

집 주변에는 벽이 없다.

 

이 점이 범인의 살인을 더 쉽게 만들어주었을지 모른다.

 

대문이 없으니 다가와 문을 두드리고 칼로 찌르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정말 끈끈한 신뢰가 이들을 죽인 걸까.

 

사람을 믿었다는 사실이 죄가 되어 목숨을 잃는다니.

 

집 주변을 둘러본다. 띄엄띄엄 집들이 보인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저들은 그날 밤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던 걸까.

 

소설에는 면식범에 의한 살인이라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고 되어 있다.

 

집안까지 침투한 범인이 출입문을 막고 섰기 때문에 도망갈 길이 없었고 잠이 덜 깬 가족들은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날도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 오세근의 노크 소리에 미닫이문을 열었고 흉기를 숨긴 오세근은 할 말이 있다며 현관이나 안방까지 상대와 함께 이동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는 중요한 말이겠거니 그를 집안에 들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수십 군데에 치명상을 입은 채 죽어나갔을 것이다.

 

바닥을 가득 적신 피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온 걸 서서히 인식하면서.

 

오세근은 피에 묻은 칼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겠지.

 

잠에 빠진 두 사람 중 누굴 먼저 죽일까 고민하다 남자의 목을 먼저 찔렀을 거야.

 

여자를 나중에 죽이는 게 더 편하니까.

 

한 번에 목을 찔러 죽인 뒤 바로 여자를 죽였겠지.

 

살인에 심취해 있다가 먹잇감을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되니까.

 

그러면 더 이상 즐길 수가 없잖아.

 

어쩌면 돌아가면서 한 번씩.

 

같은 부위마다 서로 다른 색의 피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며 흥분을 느꼈을지 몰라.

 

쾌락만이 존재하는 천국에 더 있고 싶었겠지만 마을 순찰대와 경찰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빨리 도망쳐야 했겠지.

 

몸은 자전거를 타고 달렸어.

 

달리고 또 달려서 냇가에 도착했지.

 

물꽃 마을이라는 명칭이 잘 어울리는 그 물가에서 피를 닦고 흉기를 흘러 보냈겠지.

 

자전거에 묻은 피도 다 닦은 다음에 집을 향했을 거야.

 

자신만의 공간에 앉아 유괴한 소녀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렸겠지.

 

밤중에 오줌을 싸 혼날 걸 두려워한 아이가 멍청하게 가출을 했다가 본인의 모습을 목격했단 사실도 모른 채.

 

오세근이 자전거를 타고 향했다는 냇가로 걸어간다.

 

냉기가 느껴지는 바람이 불어온다.

 

겉옷을 챙겨 나올 걸 그랬다.

 

더위가 식는 속도만큼 빠르게 추위가 다가온다.

 

발걸음은 놀라운 시선 앞에 멈춘다.

 

자전거 무덤.

 

땅에 일부가 파묻힌 자전거 수십 대가 모여 있는 그 장소는 인간의 묘지보다 차가운 냉기를 품고 있다.

 

흙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자전거는 하늘을 향해 바퀴를 올린 채 죽음의 순간을 선명히 비춘다.

 

그 모습은 위안과 안식을 얻지 못한 저주의 의식처럼 보인다.

 

범인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며 살인을 저질렀다.

 

물꽃 마을 출신의 사업가가 기부한 수십 대의 자전거는 마을의 특성상 공용으로 사용되었다.

 

아무 장소에나 자전거를 두면 다른 사람이 이용을 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소설에서는 이런 공용 자전거는 처음에는 흥미를 끌고 많은 이들이 애용했지만 길의 대부분이 비포장이라 다치는 일이 많았고 갈수록 이용하는 사람만 이용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고 한다.

 

오세근은 이 애물단지를 살인을 위해 보석처럼 이용했다.

 

피를 묻힌 채 집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빠르게 줄일 수 있었다.

 

놈은 일부러 현장 앞에 바퀴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다소 떨어진 장소에 자전거를 숨겨두고 살인을 저질렀다.

 

마을에 난 수많은 바퀴자국은 도로 위 아스팔트에 배인 매연냄새와 같았다.

 

자전거는 절름발이 오세근의 살인을 도왔다.

 

두 개의 바퀴는 그의 세 번째 다리가 되어줬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자전거를 죽였다.

 

공범에게 가해진 끔찍한 형벌은 무덤이 되어 지금 여기 마을 한 가운데에 경각심을 위한 표식으로 남아있다.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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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04.2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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