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관녀(棺女) 6화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01

[중편/소설] 관녀(棺女) 6화

김준모 | 입력 : 2020/05/01 [13:34]

그날 오세근은 날카롭게 갈린 칼을 준비했을 것이다.

 

세 명의 시체에 뚫린 수십 개의 식칼 자국이 이를 증명한다.

 

처음 이 사건은 기존 연쇄살인과 별개로 생각됐다.

 

난도질 당한 시체의 모습에 원한 살인으로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피해자 세 사람 모두 어떠한 원한 관계도 확인하지 못했다.

 

이때 죽은 세 사람은 숙자 아줌마의 남편과 동생 그리고 동생의 아내였다.

 

책에는 동생 부부와 사이가 좋았다고 적혀 있다.

 

세 사람은 고스톱 치는 걸 좋아했는데 숙자 아줌마는 칠 줄도 모르고 배우고 싶지도 않아서 빠졌다고 한다.

 

남편은 하루 종일 동생 부부네 집에 가서 고스톱을 치다 오는 날도 있었는데 그날도 그런 날이구나 생각하고 잠을 청했다며 후회의 감정을 담았다.

 

‘만약 내 남편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면 한가롭게 양 숫자를 세며 잠을 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 사람을 죽인 오세근은 식칼을 피 묻은 옷으로 감싸고 자전거를 타고 움직였을 것이다.

 

그가 냇가로 향한 이유는 안에 입은 옷에 피가 묻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냇가는 유속이 센 편이었고 하류가 길게 퍼져 나갔기 때문에 밤 또는 새벽 중에 흉기와 피가 묻은 옷을 흘러 보내면 찾기 힘들 것이라 계산했을 것이다.

 

실제로 흉기도 옷도 찾지 못했으니 맞아 떨어진 거지만.

 

그가 왜 옷을 냇가에서 닦았는지는 의문이다.

 

젖은 옷이 더 수상하게 보였을 것이고 피가 잘 빠지지도 않았을 텐데.

 

어쩌면 얼굴과 손에 묻은 피를 닦거나 이전 살인에서도 의식처럼 냇가를 향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뒷모습을 봤다는 노인과 당시 가출했던 소년 두 사람의 증언이 공통적으로 세근을 가리키고 있으니까 그날 그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절대 운동부족이나 체력문제가 아니다.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면 절름발이 오세근은 이 먼 거리는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도 마을의 순찰대였다.

 

누가 어느 시간에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적힌 순찰대의 칠판을 봤을 것이고 이에 맞춰 살인을 저질렀을 확률이 높다.

 

오세근이 순찰을 돈 날도 두 건의 살인이 발생한 적 있다.

 

하지만 살인 추정 시간이 순찰 이후였다는 점에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이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순찰 시간을 피해 교묘하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냇가에는 반대편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냇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은 따로 없고 돌을 밟고 내려가야 된다.

 

돌계단은 경사가 완만하지도 않다.

 

아래를 보니 아이가 통발을 꺼내 확인하고 있다.

 

소리를 지르니 아이가 쳐다본다.

 

손을 흔드니 같이 손을 흔든다.

 

진석 : 얘! 물어볼 게 있는데 잘 들리니?
여범 : 쟤는 말을 못해! 나한테 물어봐, 나한테.

 

고개를 돌리니 한 중년 남자가 냇가 근처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

 

진석 : 아, 이 마을 주민 분이세요?
여범 : 그래, 맞는데, 그쪽은 누구요?
진석 : 저는 추리소설협회에서 나온 작가입니다. 이 마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내가 작가인 건 맞다.

 

책을 냈으니까 작가가 맞는 거지.

 

추리소설협회에서 나왔다는 건 거짓이다.

 

그런 협회가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회원은 아니니까.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커다란 챙모자 아래로 여드름 흉터가 가득한 얼굴이 보인다.

 

여범 : 우리 마을엔 무슨 목적으로 왔을까.
진석 : 이 마을에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에 조사하러 왔습니다. 여기가 범인이 발견된 장소라고 해서요.
여범 : 그 사건이라면 이 마을 살던 여편네가 이미 소설로 다 썼어. 그게 다야. 허탕쳤구만 그래.
진석 : 냇가에 다리는 언제 설치된 겁니까? 35년 전에도 있었나요?
여범 : 이거 지어진 지 10년도 안 됐어. 35년 전은 왜?
진석 : 냇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원래 이렇게 되어 있었나요? 돌계단이라 내려가기 힘들어 보이는데. 35년 전에도 이렇게 되어 있었나요?
여범 : 도시 사람이라 그래. 여기 사람들한테 이건 힘든 것도 아냐. 이리 내려와 봐. 내려와 보래도.
진석 : 아닙니다, 어르신. 혹시 35년 전에도 이 마을에 계셨나요?
여범 : 여긴 누가 오는 마을이 아니야. 나가는 마을이지. 35년 전 일이면 기억이 날 리가 있나. 그런데 자넨 여기 왜 온 건데? 왜 자꾸 35년 전을 물어봐?
진석 : 여길 내려가려면 돌을 손으로 잡고 내려가야 했을 거 같은데. 그러면 돌에 피가 묻거나 그러지 않았을까. 끙, 잘 모르겠네.
여범 : 아니, 뭐 하러 왔냐니까!
진석 : 소설 쓰러 왔습니다. 여기서 35년 전에 발생한 연쇄살인으로 소설을 쓸 예정입니다.
여범 : 저런 미친놈을 봤나. 야, 이놈아! 내가 말했잖아! 여기 살던 여편네가 소설로 썼다고! 그게 다야! 그 여편네가 싹 다 갖다 써서 쓸게 없다니까. 범인도 밝혀진 사건을 뭘 다시 소설을 써?
진석 : 저 어르신은 TV도 안 보나. 스마트폰도 없겠구나. 어르신...
여범 : 야, 이 새끼야! 똑바로 못해? 그거 잡아서 넣는 게 그렇게 힘들어? 한 번 더 실수하면 혼날 줄 알아. 어, 뭐라고?
진석 : 어르신, 저 애는 누구에요? 어르신 손자입니까?
여범 : 손자? 아, 그래. 손자야, 손자. 손자인데 말을 못해. 아들놈이 이혼해서 사정이 안 좋아. 그래서 내가 돌보고 있어. 근데 자네, 왜 왔다고?
진석 : 소설 쓰러 왔다고요, 소설! 어르신 말씀 감사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시골이고 도시고 영감탱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목청은 크고 귀는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폐교가 보인다.

 

자전거 무덤과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

 

쇠사슬에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진 정문은 녹이 가득 쓸어 있다.

 

틈으로 보이는 내부도 가득 자란 수풀과 먼지가 가득 덮인 유리창을 볼 때 오랜 시간 관리를 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누군가 등을 쳐서 바라보니 노인과 아이가 서 있다.

 

노인은 큰 키에 어깨가 딱 벌어진 게 힘쓰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귀엽게 생긴 아이는 커다란 봇짐을 메고 남자 옆에 딱 붙어있다.

 

경률 : 누군데 학교 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소?
진석 : 저는 추리소설협회에서 나온 작가입니다. 이 마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경률 : 그럼 도시 사람인가? 거 여기 온 도시 사람들 다 마을 안에서만 지내는데 댁은 여기 변두리까지 무슨 일인가?
진석 : 여기 마을에서 35년 전에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경률 : 근데 학교 안을 왜 보고 있는가? 저 안에 뭐라도 있나?
진석 : 아뇨, 그냥. 여기 학교가 있는 게 신기해서요.
경률 : 뭐? 신기? 시골마을은 학교가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하나?
진석 : 아, 그게 아니라. 보니까 폐교 같은데 언제까지 학교가 운영되었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보통 마을에 어린 애들이 사라지면 학교가 사라진다고 그러잖아요.
경률 : 여긴 학교가 없어진지 꽤 됐지, 아마. 한 20년 되었을 거야, 아마. 왜 그때 새천년을 기념해서 학교를 없애는 거냐며 마을에서 엄청 항의했었거든. 근데 항의하면 뭐해. 여기 교사가 아무도 안 오는 걸. 한 3년 정도는 마을에서 좀 배웠다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애들이 없으니 의욕도 안 생기고 해서.
진석 : 근데 저기 보이는 수도시설 있잖아요. 저건 35년 전에도 작동했던 건가요?
경률 : 이 사람이! 시골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당연하지. 자네가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35년 전이면 웬만한 동네는 다 시골이었어. 여기만 운이 없어서 발전을 못한 거지.
진석 : 그러게요. 뭐, 덕분에 마을이 참 아름답습니다만.
경률 : 그쪽 같은 방문객이 보기 좋으면 뭐하나. 우리 같이 사는 사람이 좋아야지. 그런데 35년 전 사건은 왜? 그 뉴스 때문에 그래? 그놈 범인 맞아. 그깟 증거가 아니면 뭐 어쩌라고. 자기가 다 했다고 했는데. 그리고 그 DNA인가 뭐시기,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도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진석 : (이봐요. DNA는 유효기간이 없다고요.) 뭐, 그건 경찰이 할 일이고, 저는 그때 사건에 대해 제 나름대로 구성해서 소설을 쓸 예정이라서 말이죠. 그런데 범인이 정말 사실을 인정한 건 맞나 보네요.

 

책에는 적혀 있다.

 

저항하던 범인이 사건 현장을 재연한 날 취재진 앞에서 사실을 인정했다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피해자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달라. 며칠 동안 잠을 못자며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던 그의 입에서 그토록 듣고 싶어 하던 말이 새어나왔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뻔뻔하기 짝이 없던 두 입술 사이로 드디어 진실을 내뱉은 것이다’

 

재판에서도 범인은 사실을 인정하며 재판부에 눈물로 호소했다.

 

자신의 장애와 마을 사람들에게 당한 차별과 멸시를 이유로 들어 공분을 샀다.

 

하지만 재판부의 마음은 달랐나 보다.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997년 12월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에 오른 23명의 이름에 오세근이 없었던 이유다.

 

‘법원의 판결을 본 순간 신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신이 있다면 지상에 올라온 그 악마를 내버려둘 리가 없다.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그 선택을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게서 모든 걸 뺏어간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있다.’

 

재판부의 선택은 새로운 길을 향한 초석이 됐다.

 

만약 오세근이 무죄로 풀려난다면 숙자 아줌마가 쌓아올린 명예는 물론 마을이 유지해 온 평화 역시 한 순간에 무너진다.

 

진석 : 그런데 어르신, 이 학교는 말이죠, 그 방호원 같은 경비원 분이 예전부터 있었나요?
경률 :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선생도 애들도 별로 없었던 학교인데 관리할 게 뭐가 있다고.
진석 : 그럼 이 쇠사슬은요? 전에도 이렇게 문을 닫아놨었어요?
경률 : 학교를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데 문을 왜 닫아놔? 안 열어두면 일찍 오는 애들이 못 들어가는데. 그런데 학교에 왜 자꾸 관심을 가지는 거야, 그래?
진석 : 갑자기 걸리는 게 있어서요. 어르신도 35년 전 사건 잘 아시죠?
경률 : 뭐, 그때 이 마을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알지. 직접 겪었으니까. 그건 왜?
진석 : 그 당시 순찰대셨나요? 순찰대가 여기 학교 앞까지 순찰을 왔었나요?
경률 : 사람이 없는데 여기까지 왜 와? 당신 추리소설 작가 맞아?
진석 : 그럼 오세근은 왜 냇가까지 간 걸까요? 피를 닦기 좋은 장소가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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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05.0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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