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내 인생의 관객이 한 명일지라도

[프리뷰] '국도극장' / 5월 개봉 예정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26 [09:16]

비록 내 인생의 관객이 한 명일지라도

[프리뷰] '국도극장' / 5월 개봉 예정

김준모 | 입력 : 2020/05/26 [09:16]

▲ '국도극장' 포스터  © 명필름랩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유배는 죄인을 귀양 보내는 형을 의미한다. 이 형에 의해 죄인은 먼 곳에서 격리수용을 당했는데 가기 전 곤장 100대 정도를 때려 보내서 유배지에서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의 청춘에게 곤장 100대를 맞을 만큼 큰 죄는 취업을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료 아사이의 소설 ‘누구’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공부나 운동을 못하면 그냥 못하는 건데 왜 취업을 못하면 무능한 인간이 되는 걸까’

 

기태는 고시생이다. 평생 고시 공부를 했는데 사법고시가 폐지됐다. 한 거라고는 법 공부가 전부인데 쓸데가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벌로 교향 벌교로 내려간다. 그에게는 이 길이 마치 유배 같다. 고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따뜻함이다.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던 부모님이 반겨주고 친척들과 모여 웃음꽃을 피운다. 동네를 지키는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며 옛 추억에 젖기도 한다.

 

▲ '국도극장' 스틸컷  © 명필름랩

 

그러기는 개뿔, 기태에게 고향은 답답하고 서러운 곳이다. 친구들은 수도권으로 대학을 가면 뭐 하냐며 기태를 공격한다. 돈 한 푼 벌지 못한 기태는 그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기태의 형은 어머니 생신 날 선물도 하나 준비해 오지 않았다며 친척들 앞에서 동생을 망신 준다. 빤히 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동생이 택한 길이 잘못되었다는 걸 강조하듯 말이다. 여기에 아픈 몸에도 자식 먼저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답답하고 안쓰럽다.

 

기태는 지난 영화를 재상영하는 국도극장에서 일한다. 간판장이 겸 극장 관리인인 오 씨는 온종일 술에 취해있다. 그와 기태에겐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극장에서 일하지만 삶은 영화 같지 않다. 그 뒤의 영사기 속 암실처럼 깜깜하기만 하다. 하지만 비가 내린다고 하늘을 원망할 순 없지 않은가. 암실 속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다. 기태는 그 희망을 동창 영은에게서 찾는다.

 

▲ '국도극장' 스틸컷  © 명필름랩

 

영은은 가수 지망생이다. 그녀도 기태처럼 30대 후반을 바라보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지만 가수가 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한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여기저기 공연을 다니며 자신을 어필하는 영은의 모습에 기태는 의욕을 얻게 된다. 처음 기태는 ‘급하다니까 잠시 도와주러 왔다’며 국도극장을 찾는다. 그는 이곳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의 가치를 바라보며 점점 생각을 바꾸게 된다.

 

삶이 힘든 이유는 실패와 비교 때문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의 순간이 있다. 그 실패는 영화나 드라마처럼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삶을 아래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또 비교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내가 택한 길이 잘못되었다는 듯 비난하는 이들을 보게 되며, 내 자신을 무능하고 게으르다 여기게 만드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삶이 영화 같지 않아도 어떠랴.

 

▲ '국도극장' 스틸컷  © 명필름랩

 

극적인 역전이나 감동적인 성공이 없어도 인생은 아름답다. 옛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국도극장의 관객처럼 새로운 영화(성공을 통한 새로운 모습)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관심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과거 유배는 주로 정치범이 당하는 형벌로 양반계층이 그 대상이 됐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유배지에서도 희망을 접지 않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는 한, 삶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의 청춘에게도 기태와 같은 슬픔과 고민, 유배와 같은 실패가 있다. 청춘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현실은 더 고달프고 쓰라리게 느껴진다. 하지만 유배지에 있어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고, 누군가의 인정이 없어도 꿈을 그릴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관객만 있더라도 스크린에 불이 켜지는 극장처럼, 내 인생의 관객이 단 한 명일지라도 가치가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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