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는 그녀만의 방법

영화 '소공녀' 속 미소의 이야기

이유민 | 기사승인 2020/06/12 [10:27]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는 그녀만의 방법

영화 '소공녀' 속 미소의 이야기

이유민 | 입력 : 2020/06/12 [10:27]

 

▲ '소공녀' 포스터. ⓒ광화문시네마,모토MOTTO, CGV아트하우스 

 

[씨네리와인드|이유민 리뷰어모든 사람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가족일 수도, 동경하는 연예인일 수도, 큰맘 먹고 장만한 새 차일 수도, 겨우 대출을 받아 장만한 집일 수도 있다. 영화 속 주인공 미소에게는 담배와 위스키가 그것들이다. 가사도우미인 미소는 일당으로 집세, 세금, 약값, 담뱃값, 위스키값을 해결한다. 말하자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방식인데, 으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녀는 불행하지 않다.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가던 미소에게도 새로운 해가 찾아오고, 이를 기념하며 하늘에서 터지는 폭죽과 함께 담뱃값이 대폭 상승한다. 일당을 딱 맞게 쓰던 하루살이 미소에게 처음으로 지출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미소는 사랑하는 담배를 포기할 수 없고, 결국은 집 없이 살아가기로 한다. 여기에서부터 미소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 '소공녀' 스틸컷. ⓒ광화문시네마,모토MOTTO, CGV아트하우스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관객은 담배나 위스키를 포기하라고 미소에게 소리쳤을 것이다
. 담배와 술을 끊으면 건강도 좋아지고 돈도 절약할 수 있는데. 대부분이 이런 참견을 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참견에도 불구하고 미소는 집 없이 살아가며 과거 친했던 밴드 멤버들의 집을 전전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부모 때문에, 남자친구 때문에, 부모 때문에 등등의 여러 이유로 오래 머물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집은 기타를 쳤던 언니의 집. 결혼해서 부자 동네의 큰 집에 사는 언니는 미소를 반겼다. 방 많다며, 남편과 둘이 살기엔 너무 큰 집이었다며, 미소가 와 다행이라고 말한 언니 덕에 미소는 오랜만에 예전의 평화로운 삶을 되찾았다. 그러나 편하게 있으라던 언니는 본인의 생각보다 꽤 오래 함께 지내며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남편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미소에게 결국은 화를 낸다. 그렇게 미소는 마지막 멤버의 집에서도 나오게 되고, 하루의 끝에 늘 가던 위스키 집에서는 위스키 값이 올랐다는 말을 듣는다.

 

영화의 후반부에 미소 없이 모인 밴드 멤버들이 미소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손에 꼽힐 만큼 좋아하는 장면이다. 짐을 잔뜩 이고, 메고 온 미소를 보며 다들 내심 안됐다, 오죽했으면 집없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사정은 쟤보다는 낫네. 라며 위안 삼았을지도 모른다. 미소의 삶을 고작 두 시간 남짓 엿본 관객들조차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만큼은 추억으로 포장한 탓인지 안타까움, 동정심을 다 빼고 온전히 친구로서 미소를 대하는 이 장면이 너무나도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미소의 이야기는 역시 우리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 백발과 어울리지 않는 긴 생머리와 위스키, 그리고 높게 솟은 서울의 아파트 사이에 자리 잡은 하나의 텐트. 미소는 결국 집세와 약값을 벌어 여전히 담배와 위스키,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로도 미소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해가 참견이라는 걸 안다. 남의 취향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알잖아, 나 술 담배 사랑하는 거.”라고 말하는 미소에게 정미는 그 사랑 참 염치없다.”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염치없는 사랑이 있을까. 만약 미소가 술 담배가 아니라 사랑하는 동생의 수술비를 위해서 방을 뺐다며 멤버들을 찾아왔다면, 그들은 미소를 쉽게 내칠 수 있었을까? 같은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이 사람이었다면 감동적인 사연이고 담배이면 한심한 사람이 되는 것일까.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의 결론을 내렸겠지만, 나의 결론은 이렇다. 사랑은 그저 사랑일 뿐, 우리가 함부로 그 사랑을 홀대할 수는 없다

 

▲ '소공녀' 스틸컷. ⓒ광화문시네마,모토MOTTO, CGV아트하우스 

 

'소공녀'는 미국 소설의 제목이다. 이 소설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라고 한다. 올바른 심성을 가지고 살아갔더니 결국은 부유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교훈이 담긴 내용이다. 원작의 내용을 찾아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소설의 제목을 인용한 감독의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상적인 소녀상의 표본이라고 나타내어지는데, 미소는 이상적인 소녀상과는 사뭇 다르다. 그간 소녀들에게 요구되어왔던 조신함, 얌전함과는 다르게 담배를 뻑뻑 피는 것을 좋아하고 위스키 한잔을 마시는 것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올바르지 않은 심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미소는 부유함을 찾지 못한다. 이를 비관적으로 이용한 감독의 의도가 보여서 이 제목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소제목은 microhabitat. 영화의 제목과 함께 등장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미소(微小)서식 환경 ((미생물·곤충 등의 서식에 적합한 곳))’ 이다. 재치있는 소제목에 또 한 번 웃음이 났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초반부 미소의 자취방에 바퀴벌레 한 마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이와 같은 소소한 재치가 돋보인다. 미소의 자취방에서 우리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다.”라고 말하는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옷을 벗는 한솔과 미소의 모습. 그 둘을 동시에 비추면서 옷을 다 벗기도 전에 추워하는 미소의 모습이 이어지면서 봄에 하자.”고 말하는 한솔. 사소한 재치와 함께 비애까지 표현한 대사여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네 번째로 찾아간 선배의 집에서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한 미소를 보여주는 장면 역시 자칫하면 심각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재밌게 표현하여서 더욱 웃음이 났던 것 같다.

 

영화는 이렇게 무겁다면 무거운 소재이지만 대체로 가볍게 모든 장면을 나타낸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 역시 가볍게 시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꽤 오랫동안은 생각이 많아졌다. 미소도, 한솔이도, 일을 관두고 네일가게를 차릴 거라던 그 여성도, 밴드 멤버들도 모두들 어딘가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특히 미소의 행복은 아주 오래 빌어주고 싶어졌다. 내가 빌어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은 담뱃값과 위스키값이 오르지 않기를 바라주는 것. 그렇게라도 미소의 사랑이 더 이상 염치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해주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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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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