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판타지에 더한 디테일한 중세의 포인트,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악몽

[프리뷰] '그레텔과 헨젤' / 7월 8일 개봉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6/24 [13:49]

동화의 판타지에 더한 디테일한 중세의 포인트,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악몽

[프리뷰] '그레텔과 헨젤' / 7월 8일 개봉

김준모 | 입력 : 2020/06/24 [13:49]

▲ '그레텔과 헨젤' 메인 포스터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더콘텐츠온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동화 ‘헨젤과 그레텔’은 1812년 처음 출간된 이해 200년간 160여 개의 언어로 변역된 건 물론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크게 사랑받아 왔다. 영화계에서도 이 동화를 바탕으로 많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마녀 사냥꾼이 된 남매가 등장하는 제레미 레너, 젬마 아터튼 주연의 ‘헨젤과 그레텔: 마녀 사냥꾼’, 살인이란 범죄로 10대의 잘못된 욕망을 담아낸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크리미널 러버’ 등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레텔과 헨젤’은 동화처럼 중세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 동화가 지닌 환상성을 유지하고자 마녀와 마법, 저주란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판타지에 더해진 게 중세의 현실과 현재에도 통용될 가치를 진하게 반영한 주제의식이다. 작품은 장르적인 매력을 살리면서 이 영화만이 지닌 색깔을 표현하다. 이를 통해 관객은 영화가 디테일하게 담아낸 중세의 현실과 마법 같은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 '그레텔과 헨젤' 스틸컷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더콘텐츠온

 

자식마저 내쫓는 빈곤과 기근

 

산업혁명 전까지 유럽은 아시아보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 차례 대기근을 겪은 아일랜드를 비롯해 유럽 각국은 빈곤의 문제를 겪었다. 특히 중세의 강력한 왕권과 봉건제도는 소수 귀족과 성직자에게 모든 부가 쏠리는 현상을 만들었다. 여기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의 환경은 잦은 전쟁과 한 번 전염병이 돌면 대륙 전체를 덮치는 공포로 인해 백성들의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다.

 

작품에서 헨젤과 그레텔은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다. 도끼를 던지며 자매를 쫓아내는 어머니의 모습은 다소 괴상하게 보이지만 입을 줄이기 위해 수녀원으로 가는 것을 거절한 그레텔의 모습을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당시 유럽의 빈곤은 심각한 수준이었고 부모는 입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피임이 없고 종교적 율법에 따라 낙태가 금지되었던 시대는 아이들이 빈곤을 가속화시키는 입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 '그레텔과 헨젤' 스틸컷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더콘텐츠온

 

희생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

 

굶주림에 지친 그레텔과 헨젤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숲속의 오두막을 향한다. 이곳의 주인인 홀다는 남매에게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남매가 먼저 일을 돕겠다고 자청하기 전까지 일도 시키지 않는다. 이 마녀의 속셈이 무엇인지 동화를 아는 이들은 눈치 챘을 것이다. 작품은 홀다가 자신의 마법을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킨다는 설정을 통해 공포를 자아낸다.

 

과거 아이들은 가난한 집안을 위해 동냥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들이 존중받게 된 건 전 세계적으로 기간이 길지 않다. 산업혁명 당시에도 아이들은 값싼 노동력의 대상으로 희생당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이 불법적으로 고용되며 전 세계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묵인한다. 여기에 현대의 청춘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은 아이들의 미래이기도 하다.

 

영화는 마녀에 의해 희생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현재에도 폭력과 빈곤의 사각지대 속에서 죽어나가는 아이들의 고통을 조명한다. 아이들에게 평화와 꿈을 지켜줄 수 없는 세계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보기 힘들다. 그레텔은 홀다에 의해 헨젤과 떨어지란 강요를 받는다. 헨젤이 그레텔의 앞날에 방해만 될 것이란 게 이유다. 이는 아이를 하나의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아닌 물건 같은 소유의 대상이란 시각에서 비롯된다.

 

▲ '그레텔과 헨젤' 스틸컷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더콘텐츠온

 

증오의 대상이 된 여성과 마녀

 

영화는 도입부에서 핑크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마녀가 되었고, 소녀에게 겁을 먹은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홀로 숲에 보냈다는 이야기의 동화를 들려준다. 이는 후에 그레텔과 헨젤이 마녀의 집을 향하는 내용의 복선이 된다. 중세의 마녀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늙은 여자라는 점이고, 두 번째는 미혼 여성이란 점이다. ‘헨젤과 그레텔’ 동화의 마녀 역시 늙고 미혼인 여성이다.

 

중세의 마녀사냥은 늙은 여성에 대한 공포와 사회의 규범을 따르지 않는 여성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다. 결혼을 하지 않는 여성은 가족이란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질서에서 벗어난 존재는 증오와 편견의 대상이 된다. 여성은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길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남편이 죽고 주름지고 나이든 얼굴로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다. 삶의 지혜로 숲속에서 약초를 구분하거나 다양한 질병의 치료제를 아는 그녀들의 모습은 마치 마법을 부리는 마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마녀는 폭력과 차별의 대상이 됐다. 이런 마녀의 증오는 홀다란 캐릭터에 담긴다. 그리고 홀다는 이 증오를 그레텔에게 심어주고자 한다. 그레텔 역시 가족에게 상처받았고, 여성이란 이유로 후원을 받거나 수녀원에 들어가는 희생을 강요받았다. 홀다는 여성의 주체성과 능력을 강조하지만 그레텔은 그 힘의 근원이 증오와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그레텔과 헨젤' 스틸컷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TCO더콘텐츠온

 

고통의 시대 속 희망을 말하다

 

그레텔은 홀다처럼 사물 또는 자연과 대화할 수 있다. 나무가 움직여 그레텔의 손을 잡는 장면은 으스스한 분위기 속 판타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아름다움은 시대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단 희망을 심어준다. 집에서 쫓겨난 그레텔과 헨젤은 한 남성으로부터 음식을 제공받고 그 금액을 물어본다. 아이들은 호의나 배려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세상이 지닌 냉혹함과 이기심에 상처를 받았다.

 

이는 홀다에게 먼저 집안일을 하겠다고 제안하는 그레텔의 모습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레텔은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고 여긴다. 잔인한 세상에는 누구나 대가와 이익을 원한다. 그레텔이 반복적으로 꾸는 악몽 역시 홀다의 잔혹한 열망이 투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힘을 얻는다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누군가를 공격할 수 있고 반대로 보호할 수 있다. 홀다가 전자의 의미로 힘을 사용했다면 그레텔은 후자의 의미를 보여주고자 한다.

 

시대의 고통은 반복된다. 빈곤과 기근, 폭력과 학살은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숙제다. 다만 이런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내고자 하는 미래 세대의 등장 때문이다. 그레텔은 헨젤 덕분에 이런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동화가 지닌 주제의식과 색깔에 집중하면서 현대의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들을 잡아낸 심도 높은 이야기 덕분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Read More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