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미지가 주는 감동과 깊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상상계를 엿보다.

양재서 | 기사승인 2020/08/27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미지가 주는 감동과 깊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상상계를 엿보다.

양재서 | 입력 : 2020/08/27 [17:41]

[씨네리와인드|양재서 리뷰어] 인간은 아주 오랫동안 마법을 동경해왔다. 마법이 있던 사회는 다채로운 상상계(想像界)였다. 마법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승리를 거두고, 서구 사회를 필두로 상상계와 이미지는 그 힘을 잃어갔다. 오늘날의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읽거나 하늘을 나는 등의 마법적 능력을 초능력이라 일컫는다. 이 얼마나 딱딱하고 무심한가? 과학이 제일(第一)인 사회 속, 과학적이지 않은 것들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갔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등장은 상상계의 부활을 야기했다. 스크린 속 비현실적인 이미지와 감미로운 선율은 다시 한 번 우리를 마법의 세계로 인도했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은 Let it go 신드롬을 낳았고, 토이 스토리는 수많은 어른들을 울렸다. 애니메이션은 과학에 물든 어른들을 어른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서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을 넘어, 대한민국과 전 세계의 상상계를 부활시켰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 (주)이수C&E

 

지브리 스튜디오의 수많은 명작 중에서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다음으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와 뛰어난 영상미, 그리고 사운드 트랙으로 삼위일체를 이룬다. 2004년 개봉 이래, 2백만이 넘는 국내 관객들이 영화를 관람했으며 그 인기는 여전하다. 하울은 그 시절 아이들의 첫사랑이었으며 소피는 삶의 용기를 주었다.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영화는 2018년에 국내 재개봉을 하였고 최근에는 넷플릭스에도 업로드 되며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 (주)이수C&E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하룻밤 새 노인이 된 소녀 소피하울의 성에 들어오며 겪는 모험 이야기다. 영화는 소피의 내면적 성장을 중심으로 사랑, 반전(反戰)등 여러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우리를 잊고 있던 마법의 세계와 재회시킨다. 하늘을 나는 성과 말하는 불꽃, 마녀의 저주까지, 영화 속 세상은 마법으로 가득 차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러한 상상력은 사회학자이자 신화학자인 질베르 뒤랑의 논의와 맞닿아있다. 그는 상상계의 두 체제-‘밤의 체제낮의 체제’-를 활용하여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두 체제를 논하기에 앞서, 뒤랑의 논의를 간단히 살펴보자. 질베르 뒤랑은 오랫동안 비과학적인 것-이미지와 상상계-의 체제를 정립하는 데 몰두하였다. 몇 십 년에 걸친 그의 논의를 다 짚을 순 없지만, 그는 인류학적 도정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인류학적 도정이란 인간의 주관적 충동과 객관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상징체계를 만드는 총체적 과정을 뜻한다. 이렇게 형성된 우리의 상징체계, 즉 상상계는 크게 낮의 체제밤의 체제로 나뉜다.

 

밤의 체제는 인간의 유한함이 만들어낸 공포심에서 비롯된다.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동물과 밤, 그리고 추락의 이미지들로 대변된다. 우리는 이 세 가지 구조 중 밤의 구조에 집중할 것이다. 밤은 최초의 시간이자, 죽음 그 자체이다. 밤의 체제 속에서 달의 변화는 시간성의 지표이며, 어두운 물은 죽음의 주인인 피를 상징한다. 이 두 상징은 여성의 속성인 월경에서 수렴하며 무서운 어머니, 그리고 마녀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낳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 (주)이수C&E

 

마녀는 인간 조건의 직접적 요소인 시간을 조정하는 사악한 자다. 수많은 동화 속에서 마녀들은 추악한 모습을 숨긴 채 공주를 괴롭힌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역시 황야의 마녀가 등장한다. 그녀는 마법으로 젊음을 유지하며, 소피에게는 노화라는 저주를 내린다. , 황야의 마녀는 시간의 조정자이자 악의 상징이다. 하룻밤 새 아흔 살의 할머니가 되어버린 소피 역시 밤의 상징이다. 그녀가 자신감을 잃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면 늙어버린 모습이 부각된다. 이와 같은 밤의 이미지들은 영화의 포문을 열고 주제에 깊이를 더하는 장치이다.

 

한 편, 명백한 ()의 존재는 구마(驅魔)의 욕구를 낳는다. 뒤랑에 따르면 인간은 그 유한함과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대조적이고 영웅적인 낮의 체제를 구축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낮의 상징을 통해 밤의 부정(不淨)을 극복한다. 상승과 빛의 이미지는 밤의 체제를 정화한다. 그는 수많은 작품에서 이미 비상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다. 영화 속 하울은 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비행(飛行)하며 악과 싸운다. 비행은 상승의 이미지로, 꿈을 실현하거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

 

하울의 심장인 캘시퍼는 귀여운 얼굴과 달리, 엄청난 마력을 지닌 불꽃이다. 낮의 체제에서 불은 태양의 분신이자 영혼의 불멸을 상징한다. 따라서 캘시퍼와 거래한 하울은 영원한 젊음과 함께 마법의 원천을 공유한다. 이 불꽃은 집을 지키는 수호자로서 악의 침입을 차단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스틸컷 © (주)이수C&E

 

하지만 불은 다중적(多重的)의미로 인해 밤의 체제에 속하기도 한다. 영적이고 신성한 의 불과 달리, ‘의 불은 악마적이며 파괴적이다. 캘시퍼는 소피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한다. 또한 자신과 거래를 한 하울이 가혹하다고 불평하는데, 캘시퍼와 이어진 하울은 천사보다는 악마에 가깝다. 이는 하울이 백조가 아닌, 흑조라는 것에서 드러난다. 설리만과의 대립 장면과 소피의 꿈에서 하울은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야수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중적이고 함축적인 이미지는 때때로 낮과 밤의 체제 사이에서 양면성을 지닌다.

 

이미지의 양면성은 밤의 부정을 완화한다. 모든 것을 정복하고 정화하는 낮의 체제 속에서 인간은 절대적인 공허함을 느낀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뜨거운 낮과 함께 휴식의 밤이 필요하다. 밤은 그 양면성으로 완곡화(婉曲化)되며, 부정적 가치가 전도(轉倒)된다. 이로써 낮과 밤의 체제는 화합을 이루며 우리의 상상계는 더욱 넓어진다. 소피는 영화 속 밤의 이미지를 완곡하는 매개체다. 소피는 할머니가 되어서 비로소 용기와 사랑을 깨닫는다. 내면적으로 성장하며 밤을 극복한 소피는 사랑으로 주위를 정화한다. 소피의 사랑은 악마 캘시퍼와, 악으로 물드는 하울을 되살리며, 전쟁을 멈추는 계기가 된다. 황야의 마녀 역시 제 시간을 되찾음으로써 완곡화된다. 무시무시한 마녀였던 그녀는 소피의 돌봄을 받으며 다정한 할머니로 변한다.

 

상상계는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류의 직관적 세상이다. 그렇기에 더 흥미롭고 다채로우며 변칙적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세상을 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였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의 분투가 장면 하나하나, 음악 한곡 한 곡에 담겨있다. 이것이 세대를 이어가며 오랜 시간 위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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