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워즈 엔드' 유화포스터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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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와인드|김세은 리뷰어] 살면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보물을 누군가에게 넘기고 죽는다는 것. 그 누군가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또 살면서 이상하게 끌리는 물건들이 있다. 나의 손아귀에 담기지 못한다면 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처럼 아까운. 그것이 ‘하워즈 엔드’이다.
‘하워즈 엔드’는 영화의 제목이자, 플롯의 중심에 우뚝 자리 잡은 집이다. 이 아름다운 집은 인물에 따라 그저 재산으로 보이기도 하며, 혹은 수많은 전설과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각기 다른 시선을 가진 인물들이 모여 나타나는 윤곽선. 이 윤곽선을 따라가다 보면 영국의 사회가 보이고, 계급이 보이고, 나아가 인간의 욕망과 고뇌까지 보인다.
▲ '하워즈 엔드' 스틸컷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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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워즈 엔드'는 1992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작이다. 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최근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했다. 자연의 싱그러움과 인간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아름답고 현실적인 작품을 내놓는 아이보리의 대표작 '하워즈 엔드'. 이번 재개봉을 통해 감히 그 영화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 '하워즈 엔드' 유화 포스터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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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렛’과 ‘헬렌’은 중산층 슐레겔 집안의 자매이다. 낭만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두 자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마거렛’은 윌콕스 집안 가장인 ‘헨리 윌콕스’의 아내 ‘루스 윌콕스’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루스’는 큰 병을 앓다 죽게 되고, 그녀가 아끼던 ‘하워즈 엔드’를 ‘마거렛’에게 넘긴다는 유언을 남긴다. 이를 ‘마거렛’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들의 재산으로 돌린 ‘윌콕스’ 가문. 돌연, ‘헨리 윌콕스’는 ‘마거렛’에게 청혼하고 그녀는 받아들인다. 한편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헨리’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헬렌’은 가난한 가장인 ‘렌’과 사랑에 빠지고, ‘마거렛’을 떠나게 된다.
영화의 커다란 줄기는 두 커플, ‘헨리’와 ‘마거렛’, ‘렌’과 ‘헬렌’을 통해 나타난다.
▲ '하워즈 엔드' 스틸컷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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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워즈 엔드' 루스 윌콕스 스틸컷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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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렛’. 그녀는 ‘루스 윌콕스’의 화목한 가정과 화려한 집을 동경했다. 창문 너머 보이는 윌콕스 부부의 모습. ‘윌콕스’ 가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헬렌’과 남동생 ‘티비’의 장단에 맞춰 그들을 욕하기도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엔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경의 대상인 ‘루스 윌콕스’가 죽자, 그것은 ‘하워즈 엔드’를 향한 이끌림으로 변하게 된다. ‘하워즈 엔드’도 이상하리만큼 그녀를 이끈다. ‘헨리’의 청혼으로 인해 손에 닿을 듯 가까워지고, 빈 집이기에 잠시 가구를 옮겨 놓을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 ‘마거렛’은 그 집을 지키는 까다로운 ‘애버리’양의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
‘헨리’는 가난한 사람의 일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무책임한 조언을 하기도 하며, 도덕관념과 인본주의적 가치에 대해 쓸모없다고 느낀다. ‘마거렛’에게 10년 전 ‘루스’에게 바람을 핀 사실을 들키고서도, 모든 사람은 타락했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 '하워즈 엔드' 스틸컷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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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렛’은 ‘헨리’가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고서, 자신이 동경했던 그 화목한 가정이 허상임을 깨닫지만 용서한다. ‘윌콕스’ 가문은 그저 ‘하워즈 엔드’를 재산으로서 소유해야 할 공간으로 인식하며, 질투와 시기가 가득하다는 것 또한. 그럴수록 더욱 ‘하워즈 엔드’에 이끌렸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 '하워즈 엔드' 포스터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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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헬렌’은 일찍이 ‘윌콕스’ 가문의 본심을 알아챈다. ‘헨리’가 무책임하게 던진 조언으로 ‘렌’의 생계가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 ‘헬렌’은 ‘렌’이 힘든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영혼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하염없이 꽃밭을 걷는 ‘렌’을 ‘헬렌’은 이해한다. 꽃이 지고 있지만 계속해서 꿀 향기를 맡으려고 노력하는 ‘렌’을. 직장을 잃고 자신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낭만과 희망을 잃지 않는 그를.
▲ '하워즈 엔드' 렌 스틸컷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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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었을까?” ‘렌’은 ‘헬렌’을 보고 생각한다. 과연 그녀는 ‘렌’이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만난 아름다운 사슴이었을까. 그는 점점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진다.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예술에 대한 관심은 점점 멀어진다.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의 돈으로 생활하는 아내 ‘재키’를 외면할 수도 없다. ‘헬렌’에게로 도피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포기하더라도 아직 ‘음악과 의미’가 있잖아요.” “그건 저녁을 먹고 나서 배부른 부자들을 위한 것이죠.” ‘헬렌’과 ‘렌’의 대화다. 돈이 없으면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할 권리도 없는 20세기 영국의 민낯을 집어낸다. 그런 그들에게 ‘하워즈 엔드’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한 줄기 희망으로 그려진다.
▲ '하워즈 엔드' 스틸컷 © 알토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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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즈 엔드'는 집을 둘러싼 계급갈등과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영화로 볼 수 있다. 중산층 ‘마거렛’과 ‘헬렌’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상류층과 하층민으로 갈리게 된다. 여기서 야기되는 자매의 갈등이 사회 전반의 빈부격차와 가난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대변한다.
또한 결국 인간은 욕망에 휘둘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인이 원하는 바를 위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의 불행을 야기하기도 한다. ‘마거렛’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헬렌’을 돌아보지 못하고, ‘헬렌’과 ‘렌’은 그들의 사랑을 위해 ‘재키’에게 상처를 안겨준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됨을 깨닫고 시정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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