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스무 살의 기록

나룻배 위를 떠가는 청춘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

백유진 | 기사승인 2020/09/18 [14:50]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스무 살의 기록

나룻배 위를 떠가는 청춘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

백유진 | 입력 : 2020/09/18 [14:50]

[씨네리와인드|백유진 리뷰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은 갓 성인이 된 주인공 와타나베의 부유하는 청춘 기록이다. 마치 안갯속을 유유히 떠가는 나룻배같다. 그 나룻배는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그 스스로도 무엇을 찾는지 몰라 체념하고 지친 듯 그저 강물에 몸을 맡긴다. 그 흘러감 속에서 와타나베가 만나는 관계와 시대, 혼란스러운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게 부유하는 나룻배는 때론 노르웨이 숲으로, 환상의 세계로 뭣도 모르는 스무 살 청춘들을 데려가곤 한다. 이 소설이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써 많은 이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기는 모두가 경험하는 보편적인 성장통인 것 같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스무 살이 그런 나이다. 2001년에 개봉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네 친구들도 고등학교를 벗어나 성인이라는 또 다른 틀로 넘어간 것 같지만 내부 사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그들은 안정적인 틀이 아닌 안개 낀 호수에 내던져진 상태라 혼란스러워 방황한다. 열아홉, 함께 웃고 떠들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네 친구들은 스무 살이 된지 약 일 년이 되어 가는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태희(배두나)는 졸업 후 아버지의 찜질방을 도와주고 있고, 혜주(이요원)은 한 증권가에 입사했으며 비류(이은주)와 온조(이은실) 쌍둥이 자매는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팔고, 지영(옥고운)은 미술을 할 형편이 알될 만큼 가난해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닌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주제로 웃음꽃을 피우던 친구들은 스무 살이 되면서 서서히 갈라진다. 각자 가지고 있는 꿈과 가치관, 형편과 환경이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 다른 스무 살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유학은 뭐 아무나 가니?’라고 혜주가 무심코 던진 현실적인 말에 지영은 상처를 받고 혜주를 멀리하기 시작한다.

 

조각 난 헝겊 같은 그들의 관계를 착한 태희는 어떻게든 다시 엮어보려 한다. 자주자주 만나야 우정이 유지가 된다며 늘 약속을 잡고 꾸준히 연락하는 것 역시 태희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달라진 친구는 더 이상 고등학교 때 까르르 웃던 소녀가 아니라 일이 더 중요한 여자가 되어 있기도 한다. 오랜만에 친구 혜주에게 전화를 걸지만 웬일이야?”라는 물음에 대뜸 서운해져 소리친다.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해야 되냐?”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균열이 가기 시작한 관계, 변하는 우정, 불안한 미래. 변화투성이인 스무 살은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런 그녀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영화 속 배경 역시 추운 겨울이다. 또한 이 영화에는 유독 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어두운 터널을 지나거나 홀로 지하철을 타고 길 위를 터벅터벅 걸어간다. 마치 각자의 길을 가면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떠돌이 길고양이처럼 스무 살이 된 청춘들은 길 위를 배회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지영이가 키우는 고양이는 사랑스럽지만 예민한 그녀들을 상징한다. 혜주는 고양이가 귀엽지만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지영에게 고양이를 도로 돌려준다. 고양이는 사랑스럽지만 키우려면 그럴 형편이 되어야 한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살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쇼핑하러 갈 형편도 되지 않는 지영이의 처지처럼 말이다. 또 이집 저집 옮겨 다니는 고양이는 거주지를 매번 옮겨 다녀야 하는 20대의 숙명과 같은 특징이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스틸컷 © (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사람은 착하지만 엉뚱한 태희다. 왜 태희만 이 복잡한 스무 살의 터널을 빠져나와 성장했을까? 그것은 태희만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생각하던 사람, 자유를 꿈꾸던 사람, 친구들의 스무 살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룻배에 누워 자유를 꿈꾼다고 하면 현실적인 말로 비웃음을 사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 놀고 있다며 타박 받는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에게는 철없는 사람 취급을 받지만, 태희는 연락이 되지 않는 지영의 집까지 직접 찾아가 그녀의 아픔을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그녀를 속박했던 집에서 벗어나 비행기를 타고 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리라.

 

고양이를 부탁해. 이 말은 나의 불안한 청춘을 좀 부탁한다는 호소처럼 들린다. 자기 앞가림만 챙기는 이기적인 혜주는 자신이 잘 가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반문하게 되고, 쌍둥이 자매는 생각하지 않고 마냥 해맑기만 하다. 그녀들은 당당히 도시의 밤거리를 다니는 고양이처럼 잘 성장할 수 있을까? 그런 영화를 본 우리는 지난 스무 살을 잘 거쳐 왔으며, 혹은 거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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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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