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라는 것은 과대평가 된 개념

[프리뷰] '어디갔어, 버나뎃' / 9월 29일 개봉 예정

김세은 | 기사승인 2020/09/18 [15:11]

'인기’라는 것은 과대평가 된 개념

[프리뷰] '어디갔어, 버나뎃' / 9월 29일 개봉 예정

김세은 | 입력 : 2020/09/18 [15:11]

 

 

▲ '어디갔어, 버나뎃'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씨네리와인드|김세은 리뷰어] 인싸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대부분은 긍정적인 표현이라고 느낀다. 주변에 친구가 많아 든든한 느낌. 그런데 그 중에서 과연 진짜 내 편은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한 적이 있다.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어도 공허한 느낌. 그렇다면 인기라는 것이 사회적 성공의 척도가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과연 인기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오는 929일 개봉할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은 이에 대한 질문에 “Popularity is overrated.”라고 답한다.

 

그저 나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번에도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길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사들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 '어디갔어, 버나뎃'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최연소 맥아더상을 수상한 천재 건축가 버나뎃은 그녀의 현란한 수식어를 뒤로하고 남들과 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지능이 발달한 포유류들은 언제나 무리를 가르고, 정치하고, 싸운다고 한다. 인간도 그 중 하나이며, 사회에서 정의한 주류’, ‘일반등이 의미하는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이는 바로 배척당하기 일쑤다. ‘버나뎃은 이러한 사회적 시선에서 스스로 벗어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가족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아버린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선이 부담스럽고 조용히 살고싶어한다. 자신을 존경한다고 다가온 건축과 학생조차도 피하게 된다.

 

▲ '어디갔어, 버나뎃'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그러나 그 학생을 피해버린 것은, 그냥 관심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를 만난 날, 그녀는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연다.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하고 덮는다. 괴로워 보인다. 성공궤도를 달리던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이 지금의 현실과 비교돼서일까. 버나뎃은 딸 에게 인생의 지루함에 대해 고백한다. 그렇지만 자신은 남들은 보지 못하는 작은 것을 보고도 감사할 줄 안다고 말한다. ‘남들에게 작아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버나뎃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리라. 그것은 그녀에게 가족일 것이다.

 

▲ '어디갔어, 버나뎃'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버나뎃과 상대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은 옆 집 오드리이다. 그녀는 사교활동에 열성을 쏟으며, 언제나 그녀를 거부하는 버나뎃과도 대외적 이미지를 지키고자 다가간다. ‘오드리가 연 사교 파티가 한창일 무렵, ‘버나뎃집의 흙더미가 장대같은 비에 휩쓸려 오드리의 집으로 밀려들고 만다. 이에 분노한 그녀는 버나뎃을 찾아가 막말을 쏟아낸다. ‘오드리는 자신의 사교적 지위를 들먹이기까지 하며 버나뎃에 대한 피상적 평가를 내린다. ‘버나뎃과 그녀의 딸 또한 가만있지 않는다. ‘오드리가 몰랐던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실까지 폭로한다. 그런 뒤 버나뎃에게 “Popularity is overrated”라고 하며 그녀를 보듬는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많고, 소식에 밝다고 해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 '어디갔어, 버나뎃'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또한, 아무리 높은 인지도를 가졌어도, 본인의 능력을 이용하여 성취하고 살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버나뎃은 자신의 옛 건축학도 친구를 만나 속 깊은 얘기를 털어 놓는다. 자신이 혼신을 다해 만든 건축 프로젝트 ‘20마일 하우스가 무너지게 되고, LA를 떠나 시애틀에 살고 있는 고충을 말이다. 그녀는 시애틀에 정을 줄 수 없다. 모든 건물이 못생겨 보인다. LA에서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있어서일까.

 

여러 번의 유산 끝에 태어난 딸 는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심장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왔다. ‘버나뎃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옆에 꼭 붙어 있으면서, 언제든지 그녀가 아플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시간은 서서히 지나가고, 그녀의 마음엔 언제부터 시작된지 모를 공허함만 자리 잡았다. 그럴 때, 그녀가 믿고 의지하던 남편 엘진마저 그녀와 직접적 소통보단 전문가를 통한 치료를 요구한다. 엎친 데 덮쳐, 그녀는 FBI 사건까지 휘말리게 된다. 그러자 그녀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 '러빙 빈센트' 스틸컷  ©(주)판씨네마

 

영화를 보면서 '러빙 빈센트'가 떠올랐다. 유년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웠던 불안감. 종교적 헌신으로 남을 돕고 싶었던 마음에서 전도사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 자신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이 고흐에게 공허함과 정신적 아픔을 가져다 줬고, 급기야 그는 자신의 귀를 자르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며 비난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광기는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 '어디갔어, 버나뎃'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버나뎃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전문가를 통한 치료가 아닌, 그녀의 공허함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이해해주고 들어줄 가족이 필요했다. 그녀가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갈 지를 따라가는 것 또한 분명 이 영화의 큰 묘미이다.

 

▲ '러빙 빈센트' 스틸컷  ©(주) 판씨네마

 

고흐에게는 분명 인기가 필요했다. 그에겐 생계의 문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인기는 그에게 절실했던 돈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에 기여했다는 성취감도 가져다줄 수 있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이를 끝내 얻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무언가를 위해 인기를 추구하고 있다. 남들의 시선과 시기를 한 몸에 얻고, 사람들에 둘러 싸여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혹은 돈과 명예를 위해. 그것은 과대평가된 것이 틀림없다. 영화 '어디갔어, 버나뎃'은 우리에게 이런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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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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