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 사이에 놓인 소리의 장벽

리뷰|영화 '우리 둘(2019)'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상영작)

임채은 | 기사승인 2020/12/25

'우리 둘' 사이에 놓인 소리의 장벽

리뷰|영화 '우리 둘(2019)'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상영작)

임채은 | 입력 : 2020/12/25 [10:00]

[씨네리와인드|임채은 리뷰어] 마도 지라드(마틴느 체발리에르)와 니나 돈(바바라 수코바)은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이자 남들 모르게 사랑을 나누는 사이다. 두 여인은 서로의 가족에게 상황을 고백하며 비밀리에 지속된 관계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자 한다. 그들이 그토록 바라왔던 로마에 가서 함께 살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에는 온전히 두 사람만 자리하고자 하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 둘'은 무엇보다 청각적 요소가 도드라지는 영화다. 영화에서 소리는 등장인물의 관계처럼 은밀하게 청각을 자극한다. 때로는 천둥보다 앞서는 번개처럼 먼저 일어날 사건을 예견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화면을 압도하는 각종 소음(세탁기 소리, 물 끓는 소리, 유리 깨지는 소리 등)과 한 음악이 두 번 이상 사용되어 각기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만나볼 수 있다.

 

▲ '우리 둘' 포스터.  © IMDB

 

소음과 역경

니나와 마도는 부동산 업자를 집으로 불러 집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는다. 단 몇 발자국 사이로 마주한 두 사람의 집은, 오랜 세월 그들이 비밀스럽게 왕래했음을 알 수 있다. 니나는 이렇다 할 가족이 없지만 마도는 사별한 남편 말고도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딸이 있다. 마도는 자식들에게 니나와의 관계가 단순한 이웃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아파트를 정리하고자 저녁 식사를 마련한다. 마도는 딸의 아빠가 죽기를 기다린 거 아니냐는 뾰족한 말에 상처입고, 전하려 했던 이야기를 내뱉지 못한다.

 

그날 저녁 뒤, 빨래방에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장면이 클로즈업으로 담긴다. 세탁실 건물 밖에서는 부동산 업자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세탁기 배경음 위로 그들의 대화가 올라간다. 니나는 부동산 업자를 종용하며 빨리 집값을 받으려 하지만, 업자는 마도가 계약을 취소했다고 전한다.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니나는 당혹스러워한다. 배신감에 가득 찬 니나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그 얼굴을 강타한다.

 

마도의 주방에서 나는 소리는 군침을 돌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화구 위에 놓인 냄비에서 보글거리는 소리는 오히려 섬찟하다. 히치콕의 '새'에서 전깃줄에 앉아 있는 새가 서서히 늘어나 스크린을 덮치는 것처럼, 보글보글 끓는 소리는 점점 커지며 다른 모든 감각을 압도한다.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니나는 요리사 없이 외로이 남겨진 주방 기구 뒤에서 이상함을 감지하며 다가온다. 그는 사태를 파악하고 황급히 마도를 찾아 건물 밖으로 나가는데, 마도는 이미 뇌졸중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있다.

 

영화 초반부에서 한 아이가 공원에 홀로 서 있다. 버드 아이 뷰로 찍은 장면에서는 황량한 공기와 낙엽만이 아이를 감싼다. 드문드문 까마귀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입을 벌리고 온 힘을 다해 외치지만 어떤 소리도 전해지지 않는다. 까마귀 소리만이 가득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난 마도도 이 아이처럼 말을 전하지 못한다. 무엇도 담기지 않은 공허한 시선도 공중에 흩날린다.

 

앞서 나온 소음은 서서히 밀려오는 파도처럼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소리가 절정에 다다른 순간 장면은 전환된다. 이렇게 화면에 스미는 소리와는 반대로, 찬물을 끼얹어 마비된 감각을 깨우는 소음도 있다. 다음 음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재즈처럼 말이다.

 

때아닌 밤중,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침묵을 가른다. 창문을 깬 범인은 니나고, 자동차는 마도의 것이다. 마도가 말과 거동이 힘들어지자 딸은 요양사를 고용한다. 니나는 요양사를 도와 마도 곁에 있으려 하지만, 요양사는 계속해서 니나의 도움을 쳐내고 홀로 마도를 돌본다. 산책에도 끼워주지 않고 문단속도 철저히 한다. 자신이 낄 자리가 없어지자 분노에 휩싸인 니나는 마도의 차창을 깨고 요양사에게 뒤집어씌운다. 마도에게서 격리되며 켜켜이 쌓인 분노 에너지는 창문 깨지는 소리와 함께 폭발한다.

 

쾅. 쾅. 쾅. 세차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요양사와 그 아들이 니나를 찾아온 것이다. 요양사는 차창 사건이후 니나와 거래를 하고 마도의 돌봄 지분을 나눠 가진다. 하지만 평화도 얼마 못 가 요양사가 한눈판 사이 마도가 집 밖으로 사라져 그는 잘리고 만다. 무직이 된 요양사와 그 아들은 니나에게 매달 주기로 했던 돈을 계속 달라고 요구한다. 니나는 단칼에 거절하고 요양사의 아들은 후회하게 될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된 복도는 무섭도록 조용하다.

 

 

감정을 주무르는 음악

영화에서 왈츠곡은 두 번 사용된다. 니나가 요양원에 맡겨진 마도를 보고 혼자 돌아오는 장면과 니나와 마도가 함께 요양원을 탈출하는 장면에서다.

 

니나와 마도의 관계를 알게 된 딸은 마도를 요양원에 보내어 두 사람을 떨어뜨린다. 니나는 마도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마도는 병원 수화기를 들어 본능적으로 니나 집 전화번호를 누른다. 말을 못 하는 마도의 편에서는 침묵만이, 직감적으로 마도임을 알아차린 니나의 편에서는 마도가 맞는지재차 되묻는 소리만이 들린다. 한 요양사가 마도를 단속하러 오며 니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건네자, 니나는 재빨리 병원 이름을 묻는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병원이지만, 니나는 어떤 장벽에 부딪혀 마도를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서서 걷는 니나의 모습에 4분의 3박자의 슬픈 왈츠 리듬이 흘러나와 무너지기 직전인 그의 마음을 대변한다.

 

같은 곡이 영화 말미에도 나온다. 니나는 의사와 마도의 딸 몰래 마도를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에 성공한다. 곧바로 딸이 눈치 채고 뒤를 쫓는다는 점에서 가슴 저리는 탈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걷고 있는 인물이 두 사람이라는 점에서 음악이 조금 희망차게 들린다.

 

영화의 주제곡 'I'll follow him'은 프랑스어 버전으로 총 3번 등장한다. 영화 초반, 중반, 종반에 고루 배치되어 있다. 처음 노래가 나올 땐 그들이 젊고 생기가 가득했을 때다. 파티에서 그들은 서로의 눈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발을 맞춘다. 음악도 두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그다음으로 같은 음악이 흘러나올 땐 상황이 다르다. 니나는 기억을 잃은 마도에게서 자신의 흔적을 찾기 위해 추억의 노래를 꺼내어 튼다. 밝고 힘찬 곡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추억들이 새어 나와 마음이 아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 노래가 흐른다. 요양병원에서 도망친 두 여자는 로마에 갈 경비를 가지러 집에 들른다. 하지만 현관문 뒤에는 기이한 적막이 내려앉아 있다. 집안은 한바탕 헤집고 간 듯 엉망이 되어 있다. 로마로 갈 마지막 희망이었던 비상금도 요양사의 아들이 모조리 털어갔다. 날카로운 경고는 현실이 됐고, 카메라는 테라스에서 허무하게 흩날리는 커튼을 담는다.

 

모든 것이 허탈해진 시간 음악이 흘러나온다. 미래가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니나와 마도는 하릴없이 서로에게 의지한다. 두 사람은 거의 처음으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그들은 이 노래만큼 함께 나이 들어왔다. 그들의 시간을 다 헤아릴 순 없지만, 그 시간, 이 노래에는 애환이 담겨 있다. 숨어서 사랑해야 하는 슬픔과 그럼에도 '우리 둘'이 함께한다는 기쁨 말이다. 영화는 그 시간을 고이 접어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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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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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12.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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