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시작하는 처음

리뷰|영화 '종착역(2020)'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임채은 | 기사승인 2020/12/29

끝에서 시작하는 처음

리뷰|영화 '종착역(2020)'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임채은 | 입력 : 2020/12/29 [10:00]

[씨네리와인드|임채은 리뷰어] 

 

이번 여름 방학 숙제는 세상의 끝을 찍어오는 거야

 

사진반 동아리를 담당하는 선생님 구식은 사진부 아이들에게 미션을 준다. 풋풋한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들은 선생님이 건넨 필름 카메라를 받으며 미션을 시작한다. 네 아이는 떡볶이를 먹으며 각자 한 마디씩 얹는다. 대체 세상의 끝이 어디인 건데, 우리 그냥 숙제하지 말까, 같은 곳에서 찍어도 되나, 나 학원가야 돼서 시간 없는데 어떡하지. 종잡을 수 없이 뻗어 나간 대화 끝에 아이들이 내린 결론은 종착역을 찍자.

 

 

▲ '종착역' 스틸컷  ©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목적지가 1호선 종착역으로 정해지자, 엉덩이가 가벼운 아이들은 곧장 신창역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풍경은 예상과는 달랐다. 종착역은 평범한 지하철역이었다. 선로가 끊어져 있지도 않았고, 그다지 황량해 보이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실망했지만, 이왕 온 거 뭐라도 찍어가자며 셔터를 누른다. 우연히 근처에 옛 기차역이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된 아이들은세상의 끝을 찾아 조금 더 마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종착역'의 특징은 개입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는 듯, 한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특히 신창역에 처음 도착한 아이들의 어수선한 모습을 꽤 먼 거리에서 오랫동안 담아낸다. 카메라 속 아이들은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감독은 관객이 14살 여자아이들의 대화를 온전히 따라가게 한다. 이 영화에서 오디오가 겹치는 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이며, 혹은 일부러 의도한 결과물이다.

 

극 영화이니만큼 연출자가 있고 꾸며낸 이야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권민표, 김한솔 감독은 영화가 허구에 그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사이사이 꾸밈없는 대화를 넣어 진실을 건져냈고,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 필름 사진을 장시간 삽입해 극의 막이 오르는 것을 지연시켰다. 대만 영화감독 에드워드 양이 롱테이크를 활용해 주제에 나아갔다면, 그들은 살아있는 대화를 이용했다. 연출되지 않은 대화를 이용해 허구와 진실, 영화와 일상을 뒤섞어, 영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했다.

 

'종착역'은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후, 한 달 뒤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다시 관객을 만났다. 이 영화는 권민표, 김한솔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앞으로 그들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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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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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12.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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