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참 아름다운 이야기구만. 역시 인간의 이야기에는 사랑이 꼭 들어가네. -사랑이 아니라니까, 이 뚱땡이 고양이야. -뭐? 뚱땡이? 나 그냥 간다. 어디서 외모로 지적질이야.
진석은 재빨리 주머니에서 츄르를 꺼내며 손을 모아 사정한다.
-이거 먹고 화 풀어. 그 귀여운 몸을 표현할 인간의 언어가 없어서 그런 거야. -음, 좀 의심스럽지만 받아주지. 그런데 그 윤주라는 애가 우리에 대해 아는 건 아닌 거 같고 대체 누가 알려준 거야?
큰형의 말에 진석은 고개로 뒤를 가리킨다. 큰형과 작은형 뒤편에 모여 있는 고양이 사이로 누런 털의 고양이가 손을 든다.
-저 누리란 녀석이 알려주더라고. ‘이름 없는 고양이’ 두 분이 계시는데 이 근방에 호사가라고 하더라.
진석이 누리를 다시 만난 건 택배를 찾으러 관리사무소로 갔을 때였다. 누리는 관리사무소 앞에 앉아 멍을 때리던 중이었다. 진석은 도망치려는 누리를 가까스로 불러 세웠다.
-뭐야, 너. 어떻게 고양이 말을 하는 거야? -세상에는 별별 종류의 인간이 다 있거든. 나도 그중에 하나고 말이지. 인간이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너희 고양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 너도 요즘 일어나는 고양이 살해 사건 알지? 그 범인을 잡는데 협조를 구하고 싶어서. 너희는 밤에 많이 돌아다니니까, 혹시 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아는 고양이가 없을까 해서. -음, 들은 적은 있어.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네. 난 아는 게 없거든. 나 먹고살기도 바빠서 남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저기 5단지 뒤뜰에 가면 큰형과 작은형이 있어. 걔들한테 물어봐봐. -이름이 큰형, 작은형이야? 걔들은 어떻게 생겼는데? -가서 보면 알아. 덩치가 엄청나고 매일 둘이 붙어 다니거든. 그놈들은 이름이 없어. 보통 길고양이는 이름이 세 개는 있어. 적어도 밥 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세 명은 되니까. 우리가 쓰는 이름도 그중 가장 좋아하는 이름이고. 그런데 그놈들은 사람한테 얼굴을 잘 안 드러내지. 그러면서 먹이 냄새는 잘 맡아서 두고 가면 꼭꼭 챙겨 먹어서 살이 뒤룩뒤룩 쪘다니까. 우리 중 가장 오래 살았고, 남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니 그놈들은 아마 알 거야.
큰형과 작은형은 누리의 머리를 쓰다듬듯 쥐어박는다.
-너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겨버렸잖아. 아, 하필 인간이랑 엮이다니. -그래, 인간. 그래서 우리한테 원하는 게 정확하게 뭐지? -이번 사건에 대해 너희가 알고 있는 정보 전부랑 앞으로의 수사 협조. 너희는 밤중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밤눈도 밝잖아. 그리고 너희 종족 일이니까...
작은형은 앞발을 들어 진석의 말을 자른다.
-아, 종족이란 말은 패스. 우리는 개인플레이야. 너희 인간처럼 단체로 뭉쳐서 난동부리지 않는다고. 좋아, 우리가 도와주겠어.
고맙다 인사하려는 진석의 입을 또 작은 형이 앞발을 들어 막는다.
-다만! 인간과의 거래인만큼 우리도 너희처럼 기브 앤 테이크로 계약을 해야겠지? 우리 도움으로 범인을 잡으면 매일 츄르와 참치캔을 사와. 사료 먹는 것도 이제 질렸어. 우리 숫자 맞춰서 한 고양이 당 한 캔씩! 알겠어? -야, 나 작가지망생이야. 돈도 못 번다고. 그리고 너희 캣맘한테 만날 받아먹잖아. 인간과 고양이 관계에 무슨 기브 앤 테이크야? -우린 귀여움을 주잖아! 인간 앞에서 고양이 세수하고 꼬리 흔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 야옹~ 하면 야옹~ 하고 반응해주는 팬 서비스도 잊지 않는다고. 돈이 있고 없고는 우리가 알 바 아니니까 싫음 말아!
후- 한숨을 내쉰 진석은 앉아서 손을 내민다.
-그래, 우선 정보부터 듣자. -오케이, 콜!
큰형은 앞발로 진석의 손을 잡는다.
-먼저 녀석의 생김새. 모자랑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확인이 쉽지 않았다고 해. 옷차림? 그것까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네. 우리가 하루에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겠어. 일단 남자 같다네. 덩치를 보니 여자는 아니었다고. 뭐, 덩치가 큰 여자일지도 모르지. 얼굴을 못 봤으니. 아니, 쫓아가 본 고양이는 없어. 사체가 확 던져졌는데 다들 당황해서 그 상태로 얼음이 되었다나 봐.
완전 당했다. 진석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큰형과 작은형을 노려본다. 저 악랄한 고양이들 같으니라고! 처음부터 별다른 정보가 없다는 걸 알고 불공평한 계약을 체결한 게 분명하다. 야, 그런 정보는 남한테 듣지 않아도 알겠다. 진석은 화를 억누르고 자기 집 주소를 알려준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앞으로 와 울어 달라 말한다. 허탈한 마음을 품고 발걸음을 돌린 순간, 큰형이 또 다른 정보를 말한다.
-그리고 살해당한 고양이들, 이 동네 애들 아니야. 그러니까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애들이 아니라고. 우리는 영역동물이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않아. 그러니까 얼굴만 보면 누가 누군지 다 안다고.
*
매일 동네를 돌며 고양이를 본다 하더라도 모든 고양이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고양이에 따라 경계심이 심한 녀석은 인기척만 나도 숨어버린다. 사료나 간식으로 유혹해도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모두들 죽은 고양이가 이 동네 녀석들인 줄로만 알았다. 큰형과 작은형은 정보가 더 들어오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녀석들의 협조를 받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이후에 들어갈 츄르와 참치캔 금액이다. 7마리 가까이 되는 녀석들을 먹여 살리자니 주머니 사정이 걱정이다. 약속을 어기자니 저것들이 어떤 보복을 할지도 모르고. 뭐, 고양이 보복이래 봤자 귀여운 수준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머리맡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드륵드륵 긁는 소리에 베란다 문을 열어보니 누리 녀석, 앞발로 방충망을 긁어 대서 다 망가뜨려 놨다.
-야! 뭐하는 짓이야? 울음소리 내기로 했잖아. -내가 오늘 목이 아파서. 그나저나 이럴 때가 아니라고! 3단지에서 누가 새끼고양이를 납치하려고 하고 있어. 암만 봐도 그놈 같아.
방충망을 열고 슬리퍼 차림으로 뛰쳐나갔다. 홍석이란 남자가 다시 나타난 게 분명하다. 지난번에 하지 못했던 계획을 오늘 시행하려 하는 거겠지. 윤주가 다신 이 동네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일부러 연기하고 말이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보였다. 이번에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달려들었다. 남자의 팔을 잡고 몸을 돌리는 순간, 그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형? 지금 뭐하는 거야? -진우 너는 여기서 뭐 하는 건데?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진우는 고양이 울음을 들었다고 한다. 가서 보니 바위 위에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바위 아래로 떨어진 형제 한 마리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다. 진우는 새끼 고양이를 잡아서 바위 위로 올려주고 싶었지만, 어찌나 경계심이 강하고 날쌘지 자기가 다가가면 수풀 사이로 숨어버리고, 뒤로 물러나면 또 나타나고, 그러다 다가가면 또 숨어버리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형이 없으니까 고양이 상대하기 정말 힘들더라.
아래에 떨어진 놈을 보니 지난번에 봤던 그놈이다. 녀석은 몸을 움츠리며 바위 뒤로 숨으려 하지만 막다른 길이다.
-야, 너 지난번에도 너 혼자 까불다가 떨어진 거지?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침울한 얼굴로 끄덕인다. 다시 바위 위에 올려주고 다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한다. 새끼 고양이는 새 또는 다른 고양이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래서 어미 고양이는 안전한 장소에 새끼를 낳고자 한다. 장소는 잘 골랐지만, 이놈들 중 하나가 까불이라는 걸 그 어미 고양이는 몰랐을 거다.
-그 능력은 여전하네. 형이 없었으면 얘는 계속 바위 아래에 있었겠지? -자기 엄마가 챙겨줬을 거야. 근데 의외네. 여전히 고양이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학교에서 길고양이 밥 챙겨주는 모임도 했었는걸. -그러냐. 자, 이제 집에 가자. -형은 몰랐지? 우리가 대화 안 한 지 한참 되었으니까. -네가 날... 싫어하잖아. -맞아, 형이 싫어. 형이 내편 안 들어준 것도 싫고, 의욕 없는 것도 싫고, 백수인 것도 싫어.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싫은 건 형이 불행한 거야.
진우는 새끼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고양이는 진우 손에 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린다.
-학교 다니면서 느낀 게, 돈 버는 것보다 힘든 게 행복한 거더라. 돈은 죽었다 생각하면 벌 수 있는데, 행복은 살아야 하는 거잖아. 취업한 선배들 이야기 들어보니 꿈 아닌 돈 따라가면 후회한대. 다들 그러잖아. 현실적으로 살라고. 그런데 현실적으로 살아서 행복하지 않으면 그걸 현실이라 할 수 있을까. 불행한 게 현실이라면 세상이 너무 슬프잖아. -그래도 돈을 벌어야지. 그래야 사는데. -난 형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 남들보다 시간이 더 걸릴 뿐이야. 형이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현실이라 생각한 길로 접어들면 눈앞에 행복을 놓치게 될 거야.
진우가 웃는다. 어린 시절, 함께 고양이를 보던 그때처럼.
-그러니까 형, 부탁이야. 고양이를 지켜줘. 고양이가 주는 행복을 형이 지켜줘야 해. 형한테는 그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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