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날갯짓으로 벽을 넘은 '벌새'

‘독립영화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작품

김미정 | 기사승인 2021/09/28

잔잔한 날갯짓으로 벽을 넘은 '벌새'

‘독립영화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해 준 작품

김미정 | 입력 : 2021/09/28 [11:40]

[씨네리와인드|김미정 리뷰어] 이 훌륭하고도 멋진 작품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벌새」 가 개봉한 지 어언 2년이 다 되어간다나는 왜 이제야 이 영화를 만난 걸까? 답은 단순하다. 내가 그동안에 갖고 있던 독립영화에 대한 어쭙잖은 편견과 오해 때문이다. 아마 많은 수의 독립영화를 접하지 않았기에 색안경을 낀 채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나의 작은 변명이자 추측을 해본다.

 

지금까지 나는 독립영화들을 통해서는 큰 인상이나 감동을 느끼지 못했었다. 오히려 이 영화가 왜 항간에 그렇게도 훌륭하다고 칭찬이 자자한 걸까내지는 볼 만하지만 훌륭한 정도까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업영화에 비해 극 내의 사건 자체는 자극적이지 않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남다른 영화들이 나에게는 심심하거나 난해하게 느껴졌다사실 벌새」 도 혼자였으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지인들과 갖는 영화모임에서 이번 주 볼 영화로 결정돼서 봤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분명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던 영화 한 편이 내가 갖고 있던 영화에 대한 편견의 벽을 넘어버렸다.

 

▲ <벌새> 공식 포스터   © (주) 엣나인 필름

 

<벌새>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김일성이 죽은 1994, 중학생 은희의 일상에 생긴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여러 일들의 이야기이다. 포털사이트에 기재된 영화의 소개에는 '1994,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14은희의 아주- 보편적이고 가장- 찬란한 기억의 이야기'라고 되어있는데 영화의 전반적인 면들을 굉장히 잘 설명한 문장이라고 생각된다.

 

<벌새>의 주인공 은희는 영화에서 보여주는 94년도의 시간동안 예상치 못한 관계의 무너짐을 겪고 그 속에서 또 성장해 나간다. 믿었던 단짝친구의 배신, 나를 좋아한다던 후배의 냉랭한 돌아섬, 흔들리는 은희의 버팀목이었던 영지’ 선생님과의 이별 등 은희는 여러 관계를 맺었고, 그 관계들은 마치 아무도 예상 못했던 성수대교가 급작스럽게 무너지듯, 붕괴가 오면서 방황했다.

 

▲ <벌새> 공식 스틸컷  © (주) 엣나인 필름

 

은희가 겪는 관계의 붕괴와 방황은 은희만의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본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자아를 찾지 못했던 그 시절에 한 번씩은 겪었을, 관계의 위태로움과 그로 인한 방황과 외로움을 은희를 통해서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그 때를 지나온 이들은 은희에게 동질감과 함께 묘한 위로를 받고 또 건네기도 한다.

 

혼란스러웠던 모든 일들과 순간들은 결국 방황이라는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 한 걸음 나아갈 발판을 대어주는 찬란한 시기로 기억된다. 그 시절 에게 전부인 것만 같던 관계의 붕괴로 인한 상실감은 은희와 우리를 추락시키는 게 아닌 더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준다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충돌과, 또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모두 느끼며 살아가고 성장해 나간다주인공 은희를 통해 살며시 건네는 위로와 은희를 보며 떠올리는 보편적인 기억들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벌새> 공식 스틸컷  © (주) 엣나인 필름

 

나 또한 은희를 보면서 그 때의 나를 떠올렸고, 위로를 받기도 건네기도 했지만,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지 선생님’에게 있영지 선생님은 묘하게 무기력해 보이면서도 차분한 말투와 태도로 은희를 다독여준다많은 관객들이 뽑은 <벌새>의 명장면인 영지 선생님의 손가락 신과 대사는 그녀 특유의 말투와 함께 마치 그 시절을 이미 흘려보낸 성인들까지 다독여주는 것 같다.

 

영화의 후기들 중, 방황했던 그 시절의 어린 나가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는 글이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지금의 나를 영지 선생님을 통해 위로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 속 영지 선생님이 하는 모든 행동과 말들이 가만히 다독여주는 것 같았고, 나도 그 인물에게 동화돼 덩달아 나른해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수학여행 전 학생들의 들뜬 모습들을 카메라로 비춰주는 마지막 장면에 함께 깔리는 영지 선생님의 내레이션 대사는 그저 14살의 은희보다 어른이 아닌, 영화를 보는 나보다도 어른인 사람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 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린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 <벌새> 공식 예고편  © (주) 엣나인 필름

 

이런 영지 선생님의 언행은 비록 영화 속 가상인물일지라도,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선생님은 14살의 은희를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여 첫 만남에서 함께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밤에 은희의 얘기를 들어준 후에는 너의 새벽을 공유해주고 나눠주고 보여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말하는 사람이다나에게 다가오는 누군가를 사회적, 개인적 편견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격체로서 존중해주는 것. 타인이 나에게 공유해준 그의 시간과 이야기에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벌새>를 통해, 영지 선생님을 통해 또 하나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독립영화에 대해 난해하다’, ‘어렵다라는 편견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벌새>는 공감 요소가 가득한 일기를 보는 듯하였고, 어린 시절의 공감을 뛰어넘어 지금의 내가 어른으로서 배울 수 있는 태도를 알려주었다. 여러모로 이 작품에 감사한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미정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1.09.28 [11:40]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