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질곡을 목격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Review|'고야의 유령'(Goya's Ghosts ,2006)

김도연 | 기사승인 2021/09/30

역사의 질곡을 목격한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Review|'고야의 유령'(Goya's Ghosts ,2006)

김도연 | 입력 : 2021/09/30 [11:00]

▲ 영화 '고야의 유령' 포스터     © The Saul Zaentz Company

 

[씨네리와인드|김도연 리뷰어] 그림 ‘벌거벗은 마야’가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유럽 전역은 들썩였고 작품은 저급하다며 손가락질받았다. 모두가 여성의 나체에 점 하나, 음모 하나 그리지 않던 시절,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6, 에스파냐)는 과감하게 여성의 신체를 직설적으로 그려낸다. 고야의 작품 전반에 드러나는 과감함과 혁명성은 그를 현대 미술가의 시작으로 보게끔 한다. 로코코 화풍의 영향을 받았기에 궁중화가로서의 초기 작품들은 화려하고 귀족적이다. 허나 인생의 덧없음과 불안한 현실, 귀까지 멀게 만든 병은 고야의 후기 작품들에 영향을 미쳤고, 그는 그로테스크하고 기이한 이미지들을 그린다. 자신의 인생만큼이나 혼란했던 당시 에스파냐와 유럽 정세를 끊임없이 기록했기에 더욱 어두운 화풍으로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고야의 유령’은 스페인 역사의 질곡과 그곳에 속해있던 개인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 영화 '고야의 유령' 스틸컷   © The Saul Zaentz Company

 

종교 재판소의 해악

 

1792년 마드리드, 종교 재판소에서 고야(스텔란 스카스가드)의 그림이 문제가 된다. 로마는 물론 멕시코에까지 퍼져나간 고야의 작품은 성직자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고야는 국왕과 왕비가 인정한 궁정화가였고 종교 재판소의 로렌조(하비에르 바르뎀) 신부에게도 인정을 받아 성당의 그림을 담당하기도 한다. 종교 재판소는 위기감을 느끼고 종교 재판을 더 가혹하게 진행하기 시작한다.  부당한 심문을 통해 강제 자백을 받아내어 무고한 개인들을 고문하고 수감시켰다. 부유한 상인의 막내딸 아이네스(나탈리 포트만)는 크리스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는 이유로 이교도의 누명을 써 가혹한 고문을 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당시 종교 재판소가 고문하고 사형시켰던 사람에는 ‘물질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성당을 신전이라 하는 유대교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을 등에 업고 같은 인간을 입맛대로 판단하고 처벌한 종교 재판소는 부패할 대로 부패해있었다. 부패한 종교와 무능한 정치, 향락에만 취해있는 마드리드에서 고야의 그림은 점차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고의적으로 여왕의 얼굴을 희화화해서 그려넣거나 왕궁의 가족사진 속 인물의 시선 처리를 불안하게 하는 등 고야는 시대의 혼란함을 그림 속에도 표현한다.

 

▲ 영화 '고야의 유령' 스틸컷     © The Saul Zaentz Company

 

나폴레옹의 시대, 그리고 영국의 침략

 

15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한다. 부패한 왕족과 타락한 교회를 깨부순 나폴레옹의 군대는 스페인을 해방시켜주겠다는 명목 하에 마드리드를 침략하여 프랑스 혁명의 위대함을 칭송하지만, 병사 개개인은 이집트에서 데려온 맘루크인들이며, 나폴레옹은 자신의 친형을 스페인 왕의 자리에 앉힌다. 스페인 국민들에게 나폴레옹은 침략자에 지나지 않았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적 가치들도 수많은 이들의 피를 기반으로 했다. 나폴레옹 점령 이후 종교 재판소 사람들은 죽거나 수감되었으며, 15년 전 프랑스로 건너간 신부 로렌조는 권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영국군이 쳐들어오게 되면서 다시 입장은 뒤바뀐다. 로렌조는 신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처형당한다. 15년 전 부당하게 고문당하고 지하 감옥에 갇힌 아이네스는 비로소 풀려나지만 고된 수감 생활과 감옥 안에서 당한 성폭행,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이미 정신과 육신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후였다. 귀가 먹은 고야는 시대의 격변과 참혹함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화가이자 시대의 기록자로 생을 바쳤다. 

 

크레딧이 올라간 후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아이네스의 처절한 인생 때문이다. 종교의 해악과 역사의 질풍 속에서 개인의 파멸이 당연시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고 여전한 일이다. 신의 이름을 빌려 같은 인간을 심판한 스페인 가톨릭은 나폴레옹의 시대가 오자 파멸했지만 나폴레옹 역시 종교 재판 못지않게 수많은 개인을 죽였고 영국도 마찬가지다. 패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약자와 강자는 뒤바뀐다. 거대 담론을 방패 삼은 부도덕한 개인은 약자를 착취한다. 이 파렴치한 구조는 인간사와 함께하고 있고, 이는 결국 인간도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낱 동물에 불과하다는 자조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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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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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9.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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