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윤희들에게, 나도 네 꿈을 꿔

Review|'윤희에게'(Moonlit Winter, 2019)

손은비 | 기사승인 2021/10/12

세상을 살아가는 윤희들에게, 나도 네 꿈을 꿔

Review|'윤희에게'(Moonlit Winter, 2019)

손은비 | 입력 : 2021/10/12 [10:40]

 

 

[씨네리와인드|손은비 리뷰어] 첫사랑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모두 형태와 빛깔이 다른 첫사랑을 떠올리지만 사실 사랑의 본질은 같다하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사랑의 형태가 있다그래서 이 영화는누군가는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간직하고 있을 첫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그런 <윤희에게>는 주인공 윤희의 첫사랑 에게서 온 편지로부터 시작된다편지에서 쥰은 자신이 가끔 윤희의 꿈을 꾼다고 말하며그럴 때마다 종종 보내지 않을 편지를 써왔다고 말한다보내지 않을 생각에 어쩌면 더 밑바닥까지 내보였을 그 편지가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윤희 앞으로 도착한 편지는 딸 새봄이 먼저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의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발신인과 깊게 연관되었음을 직감한다새봄은 엄마에게 일본으로 졸업여행을 가자고 제안하고이후 편지를 확인한 윤희는 직장을 그만두고 딸과 일본으로 떠난다. 그들은 과연 일본에서 재회할 수 있을까?

 

▲ '윤희에게'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꿈으로 사는 사람

 

그들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를 살아왔다영화 후반 윤희가 말하듯 여자를 사랑한다고 얘기하자 부모님에 의해 정신병원을 다녀야 했고원하지 않던 결혼을 해야 했던 시대그래서 윤희도 쥰도 살기 위해 서로에게서 최대한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그렇게 도망치고 20년이 지나기까지한 명은 이혼 후 아이와 살아가고한 명은 먼 일본에서 살아간다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모든 걸 잊게 되는 것은 아니듯이여전히 둘은 가끔 서로의 꿈을 꾼다올라오는 감정을 눌러두고 살아왔지만 속마음까지 속일 수는 없어 꿈에 나오는 그런 사람그저 시대의 탓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픈 사랑이었다.

 

사는 것은 참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기도 한다마음 한편의 것을 의식적으로 밀어내고 현실을 살아가지만쥰의 편지에서도 말하듯 더 이상은 참지 못할 것 같은 순간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윤희와 쥰에게는 그러한 것이 마음 한편의 서로였다하지만 타자에 의해 막아진 마음을 혼자 다시 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쥰은 더 이상 참지 못할 것 같은 순간조차도 그녀를 생각하며 편지를 쓰기만 하고 결코 보내지는 못한다또 윤희는 그녀가 있는 일본에 가서도 쥰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앞에 나타나진 못한다결국 서로의 만남은 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 '윤희에게'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극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빛나니까

 

엄마를 돕고 싶은 딸 새봄은 꿈속에서만 가능했던 둘의 만남을 일본에서 성공시킨다그때 윤희와 쥰이 어떤 대화를 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영화에선 그들이 다시 만난 것으로 극적인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다또 누구도 예전같이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현실에선 잠시라도 지나면 완벽히 예전 같아질 수 없단 걸 알기 때문이다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순 없어도앞으로 둘은 좀 더 선명한 모습으로 꿈에서 만나게 되겠지그것이면 충분했다.

 

또한 윤희와 준은 헤어진 그날의 경험으로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말하지 못하며 살아왔을 것이다그렇게 살아오며 그 속에서 신념이 생기고 쌓이며 마음의 문도 단단해지기 마련윤희는 삼촌의 사진관을 자주 찾아가는 딸 새봄에게 삼촌에게 짐이 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하지만 의도치 않은 누군가의 영향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쥰도 자신의 편지가 고모에 의해 보내질지 몰랐을 것이며윤희도 준과 직접 대면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그 작은 손길을 겪음으로써 둘은 각자의 삶에서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 '윤희에게'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겁쟁이는 내가 아니었음을

 

퀴어라는 소재와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소재 두 가지가 영화의 큰 줄기이지만영화는 그들의  삶에 특수성을 부여하거나 클리셰로 소비하지 않는다윤희는 그저 자신의 고통이 어떠한 형태로든 딸의 세대까지는 대물림되지 않길 바랐을 것이고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새봄은 남자친구와 건강한 사랑을 하는 고등학생으로 나온다영화에서 윤희와 쥰의 만남을 성사시킨 뒤 새봄과 남자친구가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보여준 것처럼결국 그들은 다르지 않기에 동일 선상에 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날 때쯤 윤희는 자신이 결코 겁쟁이가 아니었음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모녀는 이사를 가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또 윤희는 언제 보낼지, 보내기는 할지 모를 편지의 답장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가장 슬펐던 것은세상에 얼마나 많은 ‘윤희’가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일지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일지 모른다하지만 간절히 바라건대 세상에 모든 윤희들이 부디 선명한 꿈을 꾸었으면잠든 순간 만이라도 사무치는 사람을 만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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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비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객원취재팀 기자단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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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10.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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