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고발과 고뇌로서의 영화 「로제타」

홍수빈 | 기사승인 2021/10/25

자본주의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고발과 고뇌로서의 영화 「로제타」

홍수빈 | 입력 : 2021/10/25 [11:40]

▲ <로제타> 포스터  © 찬란

 

[씨네리와인드|홍수빈 리뷰어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미국 독립선언문에 등장한 천부인권 개념은 우리가 사회 부조리를 규탄하고 불평등에 분노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초석을 세운 인권 개념은 근대 시민 사회로 향하는 포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근대 사회를 연 문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등장이었다.

 

근대 역사에서 미국은 평등의 가치와 모순된 행보를 걸었다. 미국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시장 확장과 그로 인한 부의 축적을 실현하기 위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흑인 노예들을 착취했던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산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또한 미국의 독립선언문 처럼 불가침 인권을 천명한다. 그런데 평등이라는 혁명의 가치는 부패한 지배층을 무너뜨려도 도래하지 않았다. 신생 자본가 계급들만이 법과 제도로 그들의 재산권을 지키고 정치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민들과 여성은 정치에 참여하긴커녕 혁명의 빛을 보지 못한 채 고단하게 살아야 했다.

 

자본주의가 빛나는 부를 가지고 왔음에도 여전히 가난과 불평등은 해소되지 않은 문제로 남았다. 과연 자본주의와 평등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노동자의 삶을 그린 프랑스 영화 <로제타>는 그러한 질문에 대해 부와 인권의 가치 충돌을 목도한 곳에서 등장할 수 있는 고발의 영화이자 자본주의의 민낯을 밝히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질문의 해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고뇌의 영화다.

 

영화적 장치로 읽는 「로제타」

 

고발의 영화로서 <로제타>는 가난한 청소년 노동자의 현실을 어떠한 미화도 없이 드러낸다. 역경을 헤친 주인공이 결말에서 보상받는 이야기와 다르게 <로제타>는 감동적인 에피소드나 연민 어린 시선을 배제해 소외 계층의 삶을 현실적으로 전달한다. 그런 면에서 관객들은 <로제타>가 그저 절망스러운 상황을 단조롭게 보여주려 하는 데에만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예술 작품은 창작자가 수많은 현실 중에서 의도적으로 특정한 사실을 강조하고 연결한 목적 지향성의 결과다. <로제타> 또한 영화적 기술들을 통해 노동자의 고된 삶을 일부러 강조하고 그 속에서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인공 로제타는 알콜의존자 엄마와 이동식 트레일러에 사는 18살 소녀다. 가장인 로제타는 돈을 버느라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 로제타라는 소녀에게 주목한다. <로제타>는 어디론가 바삐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서둘러 따라가는 숏으로 시작한다. 로제타는 수습 기간이 끝나고 갑작스럽게 해고통지를 받았다.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는 로제타는 사장과 몸싸움까지 벌인다. 좋은 환경에서 살 권리,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는 차치하고 생존 수단인 노동권이라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로제타의 간절한 싸움은 처절하다. 로제타가 다툼을 벌이는 신은 모두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어 화면이 크게 요동친다.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분투에 관객들을 몰입시켜 자연스레 로제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로제타와 인물들이 충돌할 때마다 스크린 3분의 2를 그녀의 얼굴로만 채우는 클로즈업 숏 역시 우리가 집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인물은 가난한 노동자로 상징되는 로제타라고 밝힌다.

 

영화의 구조 또한 의도적으로 단순하다. 영화는 강에서 생선을 낚고 수선한 옷을 팔거나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등 먹고 살기 위한 로제타의 노력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로제타가 어디론가 뛰어가는 신이 수차례 등장하는 이유도 생존을 위한 그녀의 노력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로제타는 좋아하는 음악 하나 없고 춤추는 법도 모른다. 취미조차 없는 로제타는 여유를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자본주의 사회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가난한 사람은 더 노력하지 않은 게으른 패배자라고 낙인을 찍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이 가난한 삶을 살게 된 이유에는 반드시 개인의 잘못만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삶은 그들이 속한 사회와의 수많은 상호작용과 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가난은 모든 인간에게는 인간답게 살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망각한 사회가 약자들을 보호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영화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로제타를 보여주는 데에 많은 신을 할애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게으른 패배자로 규탄하는 시각을 파괴한다. 결국 <로제타>는 단순히 가난한 노동자의 삶을 관조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삶 이면에 위치한 사회 구조를 직시할 것을 요구하는 예술적 메시지를 함유한다. 

 

▲ <로제타> 스틸컷  © 찬란

 

뺏고 빼앗기는 싸움터, 자본주의 사회

 

그렇다면 <로제타>가 말하는 자본주의 사회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로제타가 몸싸움을 벌이던 오프닝 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부당 해고에 저항하던 로제타는 경찰에 붙잡혀 끌려 나간다. 다행히 그녀는 와플 가게에 새로 취직하지만 그 행운도 오래 가지 않는다. 사장 아들이 로제타의 자리를 꿰차 또다시 해고되고 만 것이다. 이때 로제타는 공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와플 가게에서도 거세게 대항한다.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격렬한 몸싸움 장면은 자본주의 사회란 다 함께 성공하고 공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누군가는 패배의 쓴맛을 보아야 하는 전쟁터임을 보여준다.

 

로제타는 싸움에서 빈번히 패배할 수밖에 없다. 노동력을 팔아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종속되었으며 그들은 자본가와 맞설 수 있는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부를 창출하기 위한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는 로제타의 사장들은 그녀의 처지를 고려해볼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슬픔을 공감하는 인간적 면모가 사라진 자리에 실리 추구를 위한 합리성이 들어선 사회는 그녀에게 냉혹하기만 하다.

 

결국 로제타는 사장이 그녀에게 행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 로제타가 와플 가게에 취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전에 일하던 여성이 실직했기 때문이었다. 뺏고 빼앗기는 싸움은 노동자와 노동자, 약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더욱더 비극적이다. 이는 강자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연대의 사슬을 녹슬게 만들기 때문이다. 로제타는 가게에서 함께 일한 친구의 잘못을 밀고해 그가 해고당하게 만든 뒤 일자리를 얻는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타인의 패배와 절망 위에 올라서야 하는 제로섬 게임은 인간 대 인간의 유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더 큰 이윤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묵인하고 누군가의 우위에 올라서기를 필연적으로 요하는 사회에서 인간 평등의 가치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성 불평등과 자본주의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해야 했다. 로제타라는 인물이 여성 청소년으로 설정된 이유에는 성차별과 결합한 자본주의의 실태를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로제타가 극심한 생리통을 앓는 신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또한 <로제타>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든 제공할 수 없는 사람이든 모두 착취 구조에 얽매여 있다.

 

알콜의존증이 심한 로제타의 엄마는 직장에서 근무할 수 없다.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 속에서 그녀가 생존을 위해 택한 일은 성매매다. 그녀는 성을 팔아 일용할 양식을 얻어온다. 이는 언뜻 그녀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을 내어주고 필요한 것을 취득하는 물물교환처럼 보이지만 성매매의 배후에는 특정 성이 수단으로 작용한 결과,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물건으로 전락하는 존엄성 파괴의 현장이 자리한다. 더군다나 <로제타> 속에서 성매매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의 한 형태가 아니라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가난한 여성에게 선택의 자유 없이 강제되는 길로 묘사된다. 로제타는 엄마를 착취하는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울부짖는다.

 

로제타 대신 와플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은 아이가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직장에 나오지 못해 해고되었다. 그녀는 결근 사유가 있으면 해고할 수 없다는 복지과 직원의 말을 전달해 항변하지만 사장은 단호할 뿐이다. 여자는 제 일을 대신하고 있는 로제타를 묵묵히 응시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보다 부의 창출이 더 중요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산력에만 관심이 있다. 가사노동이 여성의 일로만 치부되면 기혼여성은 가정에 얽매이게 되어 생산력이 저하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각축장이나 다름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고 만다. 로제타가 와플 가게에서 일을 배우는 신의 이 여성은 성 불평등과 결탁해 육아와 노동의 양립이 어려워진 사회를 함축해 보여주는 인물이다. 

 

▲ <로제타> 스틸컷  © 찬란

 

영화 밖 관객들의 몫

 

<로제타>는 노동 연합을 결성해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영화도 아니고 가난한 삶에서도 의미를 찾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영화도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게 소원이었던 로제타는 가스를 이용한 질식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나 로제타에게는 죽는 일도 쉽지 않다. 무거운 가스통을 들고 가다 넘어진 로제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눈물이 흐르는 로제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뒤 끝이 난다.

 

암울한 현실을 마주하고 나면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싶은 유혹에 휩싸인다. 그편이 나에게 더 쉬운 길이고 어쩌면 이득일 수도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로제타>는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약자들을 주목하라고 호소한다. 관객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수많은 로제타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아픔에 주목하고 공감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과 혜택이 누군가의 눈물에서 비롯되었다면 그것은 기쁨의 가면을 쓴 비극이다.

 

자본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뇌하는 일은 언제나 영화 밖 우리의 몫이다. <로제타>라는 영화의 의미는 변화하고 실천하는 관객들에 의해서 온전히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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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빈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객원취재팀 기자단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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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10.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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