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고찰: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하는 대중

피터 위어, 「트루먼 쇼」

류나윤 | 기사승인 2021/12/22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고찰: 스스로를 신으로 착각하는 대중

피터 위어, 「트루먼 쇼」

류나윤 | 입력 : 2021/12/22 [12:00]

[씨네리와인드|류나윤 리뷰어]

 

▲ '트루먼 쇼'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미디어 영화의 고전, 「트루먼 쇼」

 

미디어 이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혹은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마법의 탄환 이론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이론은 미디어의 힘이 탄환만큼이나, 주사 만큼이나 강력하고, 즉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 예시로는 1938년 미국의 라디오 시리즈 세계들의 전쟁을 듣던 청취자들 6백만 명이 패닉을 일으켰던 사건이 있다. 이런 미디어의 힘에 대한 공포는 주로 인간, 대중은 결국 점점 강력해지는 미디어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것이 전달하는 것을 실제 세상인 양 믿으며 살게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추측에서 발생하는 것 같이 보인다.

 

트루먼 쇼는 바보상자라 불리며 텔레비전이 비아냥을 받았던,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텔레비전의 힘이 강력했던 시대의 미디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이 트루먼 쇼와 관련된 미디어 에세이를 쓸 때 영화가 미디어를 비판하는 시각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트루먼 쇼가 가짜임을 알고,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에세이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관점도 타당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 영화가 아직도텔레비전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 네모난 상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텔레비전에 대한 경외의 시선이 담겼다고 말하고 싶다.

 

<트루먼 쇼>의 계단

 

트루먼 버뱅크의 하루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감시된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유명한 리얼리티 쇼인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트루먼 쇼>의 기획자인 크리스토프의 의도대로 방송에 출연했다. 그는 이제 어엿한 어른이고, 예쁜 아내와 가정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꼬리가 길면 반드시 잡힌다고, 트루먼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불현듯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길(이는 실비아라는 캐릭터로 요약된다)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게 이 영화의 간략한 내용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 트루먼이 비로소 만들어진 세상을 탈출할 것을 선택하는 계단 시퀀스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 '트루먼 쇼'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트루먼과 크리스토프의 관계 인간과 신

 

크리스토프는 트루먼 쇼가 사는 세상을 창조했고, 트루먼은 그를 볼 수 없다. 오직 크리스토프만이 트루먼이라는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고, 원한다면 그의 가정사를 바꾸면서까지 그가 물을 두려워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원한다면 그 강도가 얼마가 되든 트루먼에게 시련을 줄 수 있고, 그것을 손 하나 까딱해 멈출 수도 있다. 크리스토프는 마치 자신이 트루먼을 탄생시킨 것 처럼 하늘에 있는 달 모양의 기지에서 그를 관조하는데, 이는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바라보는 신의 시선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는 씨헤이븐이라는 세상을 창조하고 세상의 모든 곳에 눈을 달아놓은 신이다.

 

크리스토프가 방송국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그는 다른 방송에서 <트루먼 쇼>라는 방송을 대표해서 인터뷰한다. 그는 시청자가 24시간 내내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방송을 기획했고,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인정받는다. 크리스토프가 만든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트루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송을 대표하고, <트루먼 쇼>전례 없는방송이고 최첨단 카메라 기술을 사용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최신의 방송계를 대표하고, 텔레비전을 대표한다. 크리스토프가 텔레비전 그 자체이고, 텔레비전 그 자체가 바로 신이 되는 것이다.

 

▲ '트루먼 쇼' 스틸컷.  © ㈜해리슨앤컴퍼니

 

신의 관점에 이입하는 대중

 

흥미로운 건 시청자 역시도 크리스토프의 관점에서 트루먼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트루먼은 시청자의 자식이자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그런 존재처럼 비친다. 영화 후반부에 운명을 거스르며 바다를 항해하는 트루먼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트루먼을 마치 자신의 아들처럼 응원하고 걱정한다. 수많은 대중 중에서 트루먼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자신이 도와줄 수 없기 때문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비치는 신의 관점에서 내려다본 트루먼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다. 카메라가 비추는 화면에서 트루먼은 한낱 작은 인간에 불과하다. 미물이다. 모든 것이 관객의 손에 달린 것 같다. 관객은 리모컨을 쥔 채, 마치 자신이 트루먼에게 파도를 일으켜준 것처럼 그를 지켜본다.

 '트루먼 쇼' 스틸컷 ⓒ파라마운트 픽쳐스

 

결국 트루먼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을 탈출한다. 트루먼은 헤맬지도 모른다. 아마 헤맬 것이다. 한 편의 엄청난 리얼리티 쇼를 종방까지 몬 대중은 다른 덴 뭐 하지라고 말을 하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이 마지막 장면과 관련해 미디어에 좌우되는 대중, 그러니까 우리 자신을 비판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대중의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합니다.’ 트루먼 쇼가 이만큼 많이 인용된 이유는 그것이 1998년도에 개봉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미 20년도 더 지났고, 이미 올드 미디어가 되어버린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해도, 과연 <트루먼 쇼>가 현재에는 의미가 없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미디어 이론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렇게 크지는 않은 효과를 가진다고 했다가, 어떤 때는 효과가 크기도, 어떤 때는 아니기도 한다고 했다가그것이 매스 미디어든 소셜 미디어든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비극인 것은 많은 사람이 미디어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취향을 좌우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미디어는 정말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더 이상본방사수를 하지 않는다며 텔레비전의 힘을 약하게 생각하지만, 플랫폼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리얼리티 쇼를 보며 화를 낸다. 마치 우리가 그런 쇼에 있어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 것처럼. 마치 우리가 그런 쇼의 제작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처럼. 마치 방송 관계자들의 악랄한 편집 방식을 다 깨닫고 있는 것처럼 다른 들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텔레비전 속 가여운 주인공들, 리얼리티 쇼의 가련한 피해자들을 동정한다. 하지만 동정해야 할 것은 누구일까? 그런 쇼에 과몰입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들은 아닌가?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류나윤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객원취재팀 기자단 6기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1.12.22 [12:00]
  • 도배방지 이미지

트루먼쇼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