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긍정하는 움직임

이정곤, 「낫아웃」

송상호 | 기사승인 2021/12/30

'점'을 긍정하는 움직임

이정곤, 「낫아웃」

송상호 | 입력 : 2021/12/30 [10:20]

[씨네리와인드|송상호 리뷰어] 야구에서 낫아웃 상황은, 그 찰나의 순간은 참으로 묘하다. 타자가 삼진아웃을 당했을 때 포수가 공을 놓친다면 타자에게 다시 1루로 뛸 기회가 주어진다. 유예된 시간은 천금 같은 기회일 수도, 가혹한 희망 고문일 수도 있다. 져 줘야 하는 경기에서 일부러 못 죽겠다는 광호는 낫아웃 상황이 되자 베이스로 전력 질주해 생존하지만 바로 대주자와 교체된다. 지시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경기가 끝난 뒤 광호는 자신을 질책하는 감독에게 일부러 아웃당하기 싫은데 왜 명령을 따라야 하냐고 대든다. 사실 이때 악에 받친 채 내뱉는 광호의 대사보다 더욱 마음을 파고드는 건, 생존을 위한 광호의 움직임이다. 그래서 '낫아웃'(2021)은 청각적 표지를 제한 채 몸짓으로만 전달되는 요소들에만 주목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도, 여전히 화술의 효과와 전달력이 유지되는 영화다.

 

'낫아웃'은 도입부에 고등부 야구 경기의 중계화면과 불법 주유 사업에 가담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붙여놓는다. 이 두 신에서 영화는 광호의 형상을 어떻게 재현하는가. 첫 신에서 중계자의 말소리는 경기를 뛰는 선수들을 보조한다. 즉, 광호가 방망이를 휘둘렀고, 베이스를 돌았고, 득점권 주자가 홈을 밟았고, 결국 광호가 경기를 끝냈다는 이 명확하고 간결한 정보만이 각인된다. 그래서 '낫아웃'은 운동과 형상의 영화다. 다음 신을 자세히 보면, 다소 수동적인 광호의 불완전한 실루엣이 감지된다. 그의 얼굴은 경찰차 광원에 의해서만 붉거나 푸르스름한 빛을 받아 어른거릴 뿐이다. 두 신을 점유하는 주체는 모두 광호이며, 이러한 도입부의 병치를 통해 그의 양가적 면모가 서사 전개의 단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 또한 유추할 수 있다. '낫아웃'에선 청각 정보보다 시각 정보가 유효한 순간이 많아 보인다.

 

'낫아웃'은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태생적 배경으로 인해 신체 이미지가 유효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스포츠 영화에서는 육체적 표지가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고등학교 야구부 에이스 광호는 말보단 몸이 앞선다. 이때 극 중 광호가 몸담은 환경이 광호를 재단하려 든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선배와 감독 및 코치진의 명령에 따라 위계가 설정되고, 성과를 위한 엘리트 체육이라는 명목하에 고착화된 시스템이 워낙 굳건한 탓에, 언제나 약자 혹은 을의 위치에 놓인 학생 선수들은 부조리와 제도의 맹점을 늘 실감하면서도 체념한 채 운동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지옥을 버텨낸다. 현실의 장벽을 연이어 체감하는 광호가 원하는 건 단 하나다.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 그래서 극의 동력을 이끄는 요소와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호응하는 과정을 살피려면, 광호의 액션과 리액션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야구선수가 경기에서 낫아웃 상황에서 전력 질주로 1루를 밟고 세이프 판정을 받아도, 홈까지 도는 일은 첩첩산중이다. 어쩌면 이건 주인공의 삶과 맞닿아 있다. 광호는 그의 인생에서 매 순간 일종의 ‘낫아웃’ 상태에 놓이는 셈이다. 영화는 그럴 때마다 몸부림치는 일이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단지 그 몸짓에 집중해 광호가 처한 상황을 음미하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낫아웃'을 지탱하는 시선이다. 이건 움직임이 목표하는 바를 내다보지 않는 대신 운동의 상태 자체를 머금으려는 시도다. 즉, 종착지를 향해 선을 그으려는 거동이 아니라, 순간에만 몰두하는 점처럼 제자리에서 천천히 번져 나가는 신체 감각의 확장이다.

 

이때 광호의 격렬한 움직임만큼이나 중요한 건 동작이 중단되는 때다. 대학 입시의 선수 할당제, 뇌물 등으로 얼룩진 관행이 자신을 가로막자 광호는 멈춘다. 그가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야구만 계속하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말하는 광호의 말을 떠올려 보자. 광호는 다른 말을 할 줄 모른다. 아니 하기 싫어한다. 아버지에게도 야구가 하고 싶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리고 말의 공백을 몸으로 채우려고 한다. 이렇듯 '낫아웃'을 지탱하는 두 축은 광호의 행동과 감정 표출이라고 볼 수 있는데, 두 요소의 충돌과 어긋남으로 인해 생성되는 부산물들이 영화를 채워나간다.

 

▲ 영화 '낫아웃' 스틸컷     ©판씨네마(주)

 

그렇다면 울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광호의 처절한 몸짓에서 보이는 건 성장일까. 자신의 내면 상태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일은 광호에게 언제나 어려웠다. 그런 광호가 마침내 입을 열어 진솔한 감정을 드러낼 때, 마침내 수동적인 리액션에서 벗어나 발화하는 적극성을 품으려고 할 때 '낫아웃'은 성장영화와 유사해진다. 하지만 영화는 변곡점을 묘사하지 않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성장 서사로 귀결되지 않는 쪽을 택한다. 성장 대신 강조되는 건 상태의 지속이다. 광호와 아버지를 둘러싼 환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여전히 광호는 야구를 계속한다는 것. 아버지는 야구를 하는 아들을 계속 지켜보고 응원한다는 것. 그래서 영화는 목적지가 정해진 서사를 헤쳐나가면서도 동시에 그 뻗어 나가는 경로에만 묶여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가 계속해서 제시해온 광호의 육체 언어를 통해 우리는 내러티브에 속박되지 않은 몸짓 그 자체의 물성을 감각한다.

 

엔딩 타이틀 이후 마지막 숏에서 카메라는 저 멀리서 오는 야구부원들의 구보 대열을 기다린다. 마침내 광호가 프레임에 잡히고 나면, 카메라가 뜀박질하는 광호의 곁을 따라가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 찰나의 움직임은 인물을 보듬으려는 시도다. 사실 카메라는 영화 내내 그의 뒷덜미를 묵묵히 좇았다. 소극적인 응시에만 머무른 셈이다. 하지만 마지막의 카메라는 광호를 기다렸다가 아주 잠깐이라도 그와 동행하려고 한다. 그렇게 '낫아웃'은 움직임에서 움직임으로 끝난다. 영화가 추구하는 건 자그마한 변화라도 붙잡는 몸짓이다. 이때 남는 건 반복해오던 운동의 상태뿐인데, '낫아웃'은 그 현상을 긍정하는 영화이길 원한다. 잠시나마 머금을 수 있는 동작의 반복. 단련 뒤에 찾아오는 성장과 안정, 또 다른 고난에 따른 극복. 이건 역시나 단번에 휘갈긴 ‘선’이 아닌, 무수히 찍힌 ‘점’들을 잇는 과정이다. '낫아웃'은 그렇게 ‘점’을 긍정하는 움직임으로 광호를 어루만진다.

 

▲ 영화 '낫아웃' 스틸컷     ©판씨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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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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