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아이의 첫 심부름 길

Review|'콩나물'(Sprout, 2013)

최지인 | 기사승인 2022/01/17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아이의 첫 심부름 길

Review|'콩나물'(Sprout, 2013)

최지인 | 입력 : 2022/01/17 [13:53]

▲ '콩나물' 스틸컷.  © 윤가은

 

[씨네리와인드|최지인 리뷰어온 마음을 다해, 보리의 심부름 길을 응원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자그만 아이의 첫 심부름 길, 그 사실만으로도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어쩐지 마음은 그 정도를 넘게 되었다. 그건 내가 보리의 모습에서 나 자신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할아버지의 제삿날, 생전에 좋아하시던 콩나물을 깜빡하고 만 엄마를 대신해 보리가 심부름을 나선다. 아직은 어리다며 집에 있기를 바라는 엄마의 걱정을 뒤로하고 보리는 세상으로 나왔다. ‘엄마, 나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두 눈은 반짝이고, 두근대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있다. 그런데 집을 나서자마자 보리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시장에 가려면 이 길로 가야 할 것 같은데 하필 공사 중이어서 가려던 길을 갈 수 없게 되었고, 야채 트럭을 발견하여 좇으려다 빨래를 떨어트린 아주머니의 부탁으로 그마저 놓치게 된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시는 막걸리까지 한잔하고 나니 보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뭘 사러 가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 '콩나물' 스틸컷.  © 윤가은

 

그러다 콩나물을 좋아하시던 자신의 할아버지와 똑같은 모자를 쓴 한 노인을 발견하고, 따라가 말을 건다. ‘시장에 가려고요. 그런데 길을 잘못 온 것 같아요.’ 길을 잃고 지쳐버린 보리의 목소리는 어딘가 시무룩하다. 그런데 노인은 보리에게 말해주었다 ‘아니야 잘 왔어요. 이 길만 지나면 시장인걸?’

 

길을 잃은 줄 알았던 보리는 그렇게 결국 시장에 왔다. 하지만 야채 가게 아주머니가 뭘 사러 왔는지 물어도 콩나물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까먹었구나?’라는 질문에 멋쩍은 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렇게 콩나물 심부름을 간 보리는 엉뚱하게 해바라기 한 송이를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해바라기가 콩나물 만큼이나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것이라는 걸 보리가 알 턱이 없지만, 손녀는 자기의 방식으로 훌륭히 심부름을 해냈다.

 

▲ '콩나물' 스틸컷.  © 윤가은

 

심부름은 성공인가? 

 

처음 보리를 응원하는 마음엔 초조함이 가득했다. ‘딴 길로 가지 말고 곧장 시장으로 가야지’, ‘놀고 싶어도 꾹 참아야지’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며, 무사히 콩나물을 들고 집으로 가기를 바랐다. 보리가 무서워하던 강아지를 얼마나 지혜롭게 지나쳤는지, 아주머니를 도와주려던 마음이 얼마나 예뻤는지는 잘 바라보지 못했다.

 

분명 ‘콩나물’이라는 목적만 생각한다면 이 심부름은 실패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를 과정에 집중시킨다. 보리는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도왔고, 그들과 놀았고 싸웠으며, 다치고 또 치료받기도 했다. 영화 끝자락 즈음엔 과정은 보지 않고 그저 보리의 손에 콩나물만 쥐어주려고 했던 마음을 거두게 된다. 보리가 걷고 있는 심부름 길은 사실 방황하는 우리 인생길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보리는 영화를 보고 있는 내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더 진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보리가 콩나물을 사지 못해도, 설령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해주고 싶었다. 그래, 비록 가려던 길로 못가고, 실컷 놀다가 목적을 잃었어도, 다치고 울며 방황하듯 떠밀렸어도, 잘 왔다. 콩나물이 아닌 해바라기를 들고 돌아갔어도 그게 정답일 수도 있는 거였다. 엄마가 모르는 새 보리는 한 뼘 자랐고, 그걸 보는 나도 한 뼘 커졌다.

 

▲ '콩나물' 포스터.  © 윤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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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인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객원취재팀 기자단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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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2.01.17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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