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동경한 그림자 이야기, '킹메이커'

Review|'킹메이커'(Kingmaker, 2021)

한지나 | 기사승인 2022/02/26

빛을 동경한 그림자 이야기, '킹메이커'

Review|'킹메이커'(Kingmaker, 2021)

한지나 | 입력 : 2022/02/26 [19:45]

  © ‘킹메이커’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씨네리와인드|한지나 객원기자1961년 강원도 인제에서 이뤄진 작은 연설. 작지만 굳셌던 정치인 김운범의 연설은 한 사람의 인생을 깡그리 바꿔놓았다. 빨갱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이북 출신 서창대의 삶을. 그는 이 연설로 빨갱이 소리를 듣고도 허허실실 웃고 있는 정치인 김운범을 만나게 되었다. 연설 중 자신을 향해 빨갱이라 소리치는 남성을 향해 운범은 조롱이나 비난이 아닌 대화를 이끌어낸다. 모두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할 자유가 있다 소리치며. 운범은 목포 형무소에 끌려갔다 온 자신이 빨갱이라면 멍청한 빨갱이 아니겠느냐며 특유의 재치로 상황을 정리한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단어를 소탈하게 받아들이고 만민의 자유를 외치는 정치인.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창대는 정치인 김운범에게 강렬하게 이끌린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는 창대가 지난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둔 인간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달걀을 훔쳐가고 발뺌하는 이웃을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는 질문에 창대는 그를 닭 도둑으로 몰아갈 수 있는 꾀를 전해준다. 창대는 멍청하게 당하고 있을 바에 주먹을 쥐고 뒤통수를 때리는 편을 택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간악하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운범을 당선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편지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운범의 선거캠프에 찾아간 창대는 고루한 방식만 고수하다가는 운범이 또다시 낙선하게 될 거라 소리친다. 이겨야 당신의 대의를 실현할 수 있는 거라며 자신이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싶다는 창대의 말이 끝내 운범의 마음을 두드렸고 창대는 비로소 운범을 빛낼 기회를 잡게 된다.

 

그렇다면 서창대가 이토록 빛내고자 하는 김운범은 누구인가. 운범은 계속되는 낙선에도 정의가 곧 사회의 질서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정의로운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국민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독재의 끈을 끊고자 한다. 정치인 김운범은 결코 표를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운범에게 정치는 단순히 표를 버는 장사가 아니라 잠들어 있던 정의를 깨우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한 꿈의 장치다. 그에게 정치라는 생물은 수단이자 동시에 목적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창대가 다가온 것은 천운이자 비운이었다. 창대는 어둠 속에 있던 운범을 빛이 드는 곳으로 끌어올렸지만 운범의 빛이 강해질수록 창대는 그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창대는 빛을 동경한 그림자니 말이다.

 

  © ‘킹메이커’ 스틸 컷.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창대의 방식은 분명하고 강력하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 내세울 수 없다. 그는 타 후보 소속당인 공화당의 선물을 거둬가 신민당의 이름으로 선물을 다시 나눠주는가 하면 공화당 이름으로 잔치에 초대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아 공화당을 향한 야유를 불러온다. 한마디로 창대는 악에는 악으로 승부를 겨루는 네거티브의 귀재다. 창대는 공화당의 악행과 엇비슷한 악행으로 부딪혀야만 승리를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자극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진실이나 양심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정치와 선거는 표를 얻기 위한 투쟁이며 운범을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싶다는 창대의 목표에는 정당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는 오직 본인이 믿는 김운범의 승리와 성공만을 바랄 뿐이다.

 

창대의 바람대로 운범은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이후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빛이 세질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는 건 당연하다는 창대의 말이 기우였는지 두 사람의 궤도는 더없이 틀어져 갔다. 운범이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창대는 발각되어서는 안 되는 짙은 그림자가 되어간다. 이전에도 창대와 운범 사이에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운범은 창대의 방식을 이용해 승리를 얻으면서도 그의 방식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했다. 그리고 창대는 필요할 때에만 자신을 이용하고서 근신 처분을 내리는 운범에게 깊은 서운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계속 인연을 이어올 수 있던 것은 운범은 창대에게 대의가 있으리라 믿었고 창대는 자신이 계속해서 운범을 빛낼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대의 대의는 운범이 생각하는 대의와 달랐다. 운범의 자택에서 폭발 사고가 벌어지고 창대는 주요 용의자가 된다. 이전 회의에서 운범의 지지율 상승을 위한 자극적인 쇼가 필요하다고 피력했기 때문이다. 창대는 가까스로 혐의를 벗었지만 운범과의 갈등을 피할 수는 없었다. 대선 후보가 된 운범에게 창대의 존재는 치명적인 독으로 다가왔고 운범은 지금은 함께할 수 없다는 말을 건넨다. 운범은 이전처럼 창대를 다시 부를 거라 위로하지만, 그림자에서 나와 운범과 함께 빛이 드는 곳에 설 것을 꿈꾸던 창대는 무너져 내린다. 결국 창대는 운범 앞에서 운범의 대의인 국민을 욕보이며 자신이 그들을 휘둘러 표를 얻어낸 것이라는 오만을 입 밖으로 내뱉고야 만다. 이에 운범은 창대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라 여겼던 자신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창대에게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언제나 운범을 동경하던 창대의 마음에 비수를 꽂은 것은 마지막 운범의 질문이었다. 폭발 사고의 범인이 창대가 맞느냐고 묻는 말. 사실 운범은 창대가 범인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계속해서 자신을 밝혀준 그림자를 끊어 낼 날카로운 칼이 필요했을 뿐. 항상 운범을 위해 어둠을 자처했던 자신을 의심하는 운범에게 배신감과 상처를 느낀 창대는 자신이 범인이 맞다고 소리치며 운범의 자택을 뛰쳐나온다. 자신의 대의에게 버림받은 창대는 공화당 진영에 합세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네거티브공세를 운범에게 퍼붓는다. 창대의 꾀는 또 한 번 정확하게 작동해 지역감정을 부추겨 온 나라를 뒤흔들었고 운범은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다.

 

빛과 그림자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절대 같은 선상에 놓여 함께 길을 걸어갈 수 없다. 운범과 창대가 그렇듯이. 빛을 동경한 그림자는 절대 빛이 될 수도 빛과 함께 설 수도 없는 것이다. 영화는 두 사람의 비극적인 관계를 통해 목적과 수단 증 무엇을 앞세울 것이냐는 고전적인 물음을 조명한다. 창대가 없었다면 정치인 김운범은 낙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창대와 끝까지 함께했다면 정치인 김운범에게 정치는 표를 버는 장사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달걀 도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결국 목적과 수단의 줄다리기는 내내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이기는 것과 이겨야 하는 이유를 잊지 않는 것 무엇이 더 중요한가. 그리고 현시대의 우리는 무엇을 우선에 둔 채 살아가고 있는가. 빛을 동경한 그림자의 이야기, 영화 '킹메이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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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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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2.02.2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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