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혹은 도망, 설령 그 어느 것일지라도

Review|'스텐바이, 웬디'(Please Stand By, 2017)
: 나선형 성장이 뜻하는 도전의 의미

박소현 | 기사승인 2022/02/26

도전 혹은 도망, 설령 그 어느 것일지라도

Review|'스텐바이, 웬디'(Please Stand By, 2017)
: 나선형 성장이 뜻하는 도전의 의미

박소현 | 입력 : 2022/02/26 [19:53]

▲     © 판씨네마

 

[씨네리와인드|박소현 리뷰어누구나 크고 작은 꿈을 안고 살아간다. 그 꿈이 너무 원대한 나머지 허망하다는 평가를 받거나 혹은 너무 사소하여 꿈이라는 정의에 포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소망마저 모두 현실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스탠바이, 웬디는 자폐아가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보여준다그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도 시청 포인트가 될 수 있다반지의 제왕의 광팬인 소녀가 자신만의 팬픽을 꾸준히 써왔다는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작가가 이 소재를 웬디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     © 판씨네마

 

주체적인 삶을 위한 의지

 

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웬디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낀다. 시간 단위로 정해진 계획을 수행하고 예외란 없던 그녀의 삶이 또다시 똑같이 흘러가던 중, 우연히 발견한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은 그녀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

 

그녀가 SF 영화사 스타트렉의 광팬이 된 이유는 영화 속 캐릭터 스팍에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극의 끝이 보이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미지의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기보다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스팍의 도전적인 자세는 웬디가 자신의 일상을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과보호하는 주변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녀의 삶의 작은 희망이었던 스타트렉의 시나리오를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 과보호로부터 잃어버린 자신의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마감까지 일주일이 남은 시점에서 그녀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도 글쓰기에 매진하며 그녀만의 시나리오를 작성해간다.

 

▲     ©박소현 판씨네마 스틸컷 

 

도망 혹은 도전

 

웬디가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공모전에 입상하기를 원했던 이유는 단순히 도전을 통한 삶의 회복뿐만이 아니었다. 상금을 받아 자신에게 투자되던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호시설로부터 벗어나 다시 언니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웬디의 언니는 자폐아를 가진 웬디가 제대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해 갓 태어난 자신의 딸, 즉 그녀의 조카에게 해를 가할까 걱정돼 그녀의 공모전 참여를 말린다. 여러번 읽고 고친 시나리오를 무력하게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웬디는 얼마 남지 않은 기한 안에 제출하기 위해 모두가 잠든 사이 몰래 LA로 무작정 떠난다.

 

보호시설에서 정해준 규칙을 따르기 위해 한 번도 건너본 적 없었던 마켓가를 건너며 그녀의 일탈은 시작된다. 마켓가를 건너게 되면 보호시설과 멀어지게 되므로 이 행동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항상 보호 아래서 삶을 살아왔던 웬디가 처음으로 자신의 온전한 의지에 의한 선택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LA까지 가는 도중 버스에서 애완동물을 데리고 탔다는 이유로 쫓겨나기도, 돈을 빼앗기고 사기를 당하기도 하며 좌절의 연속을 겪는다. 우연히 들른 가게에서 주인이 웬디가 자폐아라는 이유로 초코바 가격을 두 배 이상 받으려 할 때, 한 할머니가 나타나 그녀를 도와준다. 웬디가 자신의 손자와 닮았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자신과 함께 가자며 좌절한 웬디를 데려가며 그녀의 고생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웬디와 할머니가 탄 버스는 사고가 나게 되었고, 웬디는 기억을 잃은 채 병원으로 실려간다. 센터장과 아들, 그리고 그녀의 언니는 웬디를 찾으러 병원에 찾아온다. 그러나, 시나리오 제출을 위해 병원에서 또다시 몰래 탈출한 그녀는 탈출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그만 떨어트려 잃어버리고 만다.

 

▲     ©박소현 판씨네마 스틸컷 

 

하나의 논리적인 결론, 전진

 

좌절한 그녀는 자신의 시나리오 일부분을 읽어본다. ’함장님,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서 무엇인가를 깨달은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쓰레기장의 이면지를 주워 잃어버린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271장을 모두 손으로 써내려가기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실종신고를 받고 수색하던 경찰들과 마주쳐 그녀는 다시 센터장과 언니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웬디의 간절함을 깨달은 가족은 그녀가 잃어버린 시나리오를 되찾아준 후, 파라마운트로 데려다준다. 시나리오 제출 과정에서도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으나, 그녀는 내면의 불안감과 분노를 참으며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 그녀의 모습과 달리, 그녀를 옥죄는 강박과 무시에도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전진을 통한 성장을 이뤄냈음을 알 수 있다.

 

▲     ©박소현 판씨네마 스틸컷 

 

스탠바이, 웬디!

 

공모전에서 수상하지는 못했으나, 그녀는 변화를 이루었다. 스스로의 삶을 되찾고 더 이상 반복되는 보호 속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을 묻어두지 않는다. 불현 듯 이는 분노에 이성을 잃지 않고 조카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한 명의 이모로서, 언니의 정신적인 지지대가 되어주는 소중한 가족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임을 암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 과정이 서툴고 조금은 느리더라도, 그녀는 글쓰기를, 주체적인 삶을 살기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도 전진해 나아갈 것이다

 

스탠바이는 그녀가 감정에 압도될 때마다 센터장이 그녀의 진정을 위해 외워주던 주문이다그러나 첫 도전 이후 스탠바이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더 이상 스탠바이는 웬디가 감정에서 떨어져 가만히 있도록 만드는 주문이 아니다반복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가 끝이 났음을 알리는 신호이자그녀의 도전은 계속될 것임을 알려주는 응원도구가 될 것이다.

 

▲     © 판씨네마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실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커다란 꿈에 압도되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 이 영화는 그 꿈을 위해 나아가기 위한 방향에 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음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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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객원취재팀 기자단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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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2.02.26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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