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잡지 속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들

Review|'펄프 픽션'(Pulp Fiction, 1994)

조윤정 | 기사승인 2022/02/26

삼류 잡지 속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들

Review|'펄프 픽션'(Pulp Fiction, 1994)

조윤정 | 입력 : 2022/02/26 [20:08]

[씨네리와인드|조윤정 리뷰어]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보게 된 것은 <킬 빌> 이었다. 평범한 B급 액션물인 줄 알고 친구들과 함께 킬 빌을 관람하게 된 그 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소룡 쫄쫄이 같다고 웃었던 우마 서먼의 의상은 실제로 이소룡의 오마주였고 온갖 예능 방송에서 들어봤을 법한 스코어 음악들이 전부 킬 빌의 사운드트랙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 속 캐릭터들은 전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나올법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영화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킬 빌이 온갖 액션 영화의 오마주로 가득 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쿠엔틴 타란티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영화나 만화를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었다. 미술이나 음악 등 즐길 거리는 많았으나 영화 특유의 소란스러운 구조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는 이유도 잘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펄프픽션>은 달랐다. 과할 정도로 많은 대사량이나 비선형적 구조 탓에 영화의 초반부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중반부부터는 완벽히 몰입해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 영화 펄프 픽션 스틸 컷.   © 미라신 코리아

 

펄프픽션의 영화 미술은 확실히 다른 작품과는 다르다. 마피아의 세계를 다룬 <대부>나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에 대해 다뤘던 <블레이드 러너>에 비해 펄프픽션에는 통일된 주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영화 미술 역시 하나의 컨셉으로 정리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이 더욱 매력으로 다가왔다. 제목인 펄프 픽션의 뜻이 싸구려 잡지인 것처럼,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마르셀러스 갱단과 관련된 인물들의 소동을 다룬다. 때문에, 전체적인 미술보다는 각 인물의 의상이나 세트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례로, 갱 특유의 복식과 1950년대풍의 레스토랑은 전혀 조화롭지 않을 것 같지만 비주얼적인 독특함을 자아내며 펄프픽션 풍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조사해보니, 여러 문화가 섞여 있는 특징이나 초라한 동네의 모습이 그 시대의 LA 풍경과 아주 비슷했다고 한다. 인물의 의상에 대해 더 주목해보자면, 마르셀러스 갱단은 대부의 콜리오네 패밀리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둘 다 검은 정장을 입고는 있지만 줄스의 경우 아프로펌을 하고 있는 데다 목에 꼭 끼는 목줄을 늘 차고 다닌다. 빈센트의 경우, 단발머리에 귀걸이를 착용하고 다니며 딱붙는 셔츠가 아닌 린넨 셔츠를 입는다. 어쩐지 각이 덜 잡힌 둘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이후, 지미의 휴양지 티셔츠를 어쩔 수 없이 입게 되었을 때 이런 우스꽝스러움은 극에 달하게 된다. 보스가 BDSM 성향의 지하실에서 폭행당하는 갱스터 영화는 앞으로도 펄프픽션뿐일 것이다. 이렇듯, 일부러 무거워 보이는 갱단의 이미지를 격하시키는 연출 덕분에 타란티노가 진중한 범죄영화의 이미지들을 비틀고자 했다는 의도가 분명하게 다가왔다.

 

▲ 영화 펄프 픽션 스틸 컷.  © 미라신 코리아

 

그런가 하면 펄프 픽션의 명장면이 나왔던 장소, 잭 래빗 슬림스 역시 주목해볼 만 하다. 1994년의 영화임에도 식당의 풍경은 1950년대와 다름없어 보인다. 마릴린 먼로나 제임스 딘 코스튬을 한 종업원들이 돌아다니는 이곳에서 둘은 트위스트를 춘다. 시대적 특징이 강한 1950년대의 식당에 들어서는 90년대의 사람들이 낯설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개성을 살린 독특한 의상 덕에 빈센트와 미아 역시 다른 분장을 한 인물들처럼 보여서 재밌었다. 게다가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90년대의 것이 아닌 1950년대의 재즈나 60년대의 록 음악이다. 이런 연출을 보고 있자면 영화의 시대가 정말 1990년대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더불어 타란티노의 작품들답게 수많은 영화의 오마주가 곳곳에서 등장하는데, 킬 빌이나 <그리스> 등 배우들의 출연작에 대한 오마주를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개인적으로 빈센트 베가를 연기한 배우가 존 트라볼타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돼서 둘의 춤이 그리스의 오마주였다는 사실을 알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 영화 펄프 픽션 스틸 컷.   © 미라신 코리아

 

마약과 피, 폭력이라는 온갖 자극적인 키워드는 타란티노에 의해 재현되고 비틀어졌다. 온갖 시대의 오마주가 섞인 펄프픽션 속에서 타란티노는 영화 속 서사에 대한 몰입보다도 이것이 영화임을 분명하게 밝히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같은 영화를 찍어도 쿠엔틴 타란티노가 찍으면 확실히 독특해지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펄프픽션을 다른 감독이 찍었다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빅 카후나 버거레드 애플 담배등 가상의 브랜드를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 역시 타란티노다웠다. 로맨스나 첩보물 등 장르 영화에는 장르가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할 정형성이 있다. 그러나 타란티노 영화에서는 다르다. 범죄영화가 가진 무게감을 코믹하게 비틀어버렸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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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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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2.02.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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