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하지 못한 채 경계선에 선, '폭군 이바나' [BIFF]

박시연 | 기사입력 2019/10/11 [14:05]

속하지 못한 채 경계선에 선, '폭군 이바나' [BIFF]

박시연 | 입력 : 2019/10/11 [14:05]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폭군 이바나는 주인공 속의 비친 나 자신을 찾게 한다. 외모, 나이, 국적까지. 닮은 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주인공 이바나에게서는 자꾸 내 모습이 보인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한 곳에 속하지 못한 듯한 그녀의 모습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우리의 삶에서 한 번쯤 거쳐 왔던 어느 지점과 많이 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시작부터 경계선을 위태롭게 걷고 있는 듯한 이바나’. 고향으로 향하던 열차에서 있었던 작은 소동에 약간은 불쾌한 채로 열차에서 내린 그녀는 자신을 맞아 준 가족들에게 아파서 집까지 가기 힘들다며 호소한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은 했지만, 그녀의 증상은 여전한듯하다. 이후 그녀는 여러 차례 병원에 방문했으나, 의사들은 같은 대답만 되풀이한다. ‘이바나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녀가 보이는 증상은 단순 스트레스성이라는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이바나는 누가 보더라도 병을 앓고 있지 않은데도 그녀는 자신이 심각한 병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의사들은 전부 돌팔의라며 불평까지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주변인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가 인상적인데, 극장에서는 그런 대화가 오가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관객이 더러 있었다. 아마 그녀가 부리는 꾀병에 가족과 친구들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웃을 수가 없었다. 주변인 모두가 그녀를 꾀병 취급하며 웃는 속에서 덩그러니 혼자 심각한 이바나,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짓고 바라보았다.

 

 

▲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외로움. 내가 느낀 이바나의 병명은 그것이다. 물론 그녀에게 가해지는 물리적 고통은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가 보기엔 우스운 꾀병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다만 내가 그녀에게 느낀 연민은 그녀가 짊어진 심리적 무게 때문이다. 기묘한 증상을 호소할 정도로 위태로운 그녀가, 그 마음을 보여도 주변인들에게조차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는 것. 그 점이 영화에서 가장 크게 보였다.

 

이바나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람은 어린 남자친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순간적으로 느낀 행복감의 측면에서 그렇게 보였다는 의미이고, 객관적으로 그가 좋은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주요 주변인은 가족, 현재의 어린 남자친구, 전 남자친구와 그의 여자친구 안카정도다. ‘이바나는 이들 모두와 그녀의 병에 대해 잠깐씩 대화하지만,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은 아니었다. 현 남자친구 역시 그녀를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와 있을 때는 그녀가 모든 걸 잊고 티 없이 웃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는 열세 살이나 어린 나이 차를 비롯해 그와의 관계에서마저 또 하나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고, 결국은 이별을 택하게 된다.

 

 

▲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제목에서부터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폭군이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그녀는 정말 폭군이었나? 나는 그렇다고, 또 동시에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사실 폭군이라는 과격한 수식어를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영화 속 그녀는 평범하다. 내가 보기에 그녀는 단지 조금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바나는 폭군인가라는 질문에 단순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 스스로가 느끼기에 자신은 무시무시한 폭군일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왜 나만 이렇게 예민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 내가 느끼기에 영화 속 이바나는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상과 배우라는 직업 사이에서, 세르비아와 루마니아 사이에서, 또 누군가의 연인으로 남기를 택하거나 떠나기를 고민하는 사이에서, 그녀는 그녀 나름의 병을 앓고 아파하고 있었다. 그러한 경계선에 서서, 견디기 힘든 마음의 무게를 주변인에게 표현하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런 자신의 모습에 폭군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닌지, 나는 조금 안타까웠다.

 

속하지 못한 채 경계선에 선, ‘이바나’. 주관적으로 폭군보다는 그런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씨네리와인드 박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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