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할 법한 상상을 실현시킨 초등학생, 과연 행복했을까

유수미 감독 단편영화 ‘선아’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5/25 [13:51]

누구나 할 법한 상상을 실현시킨 초등학생, 과연 행복했을까

유수미 감독 단편영화 ‘선아’

김준모 | 입력 : 2020/05/25 [13:51]

▲ '선아' 스틸컷  © 씨네허브 공식 블로그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단편영화는 소개팅과 같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연애의 경우 오랜 시간 그 사람을 봐 오면서 어떤 사람인지 확신을 지니고 연애를 시작한다. 내가 나를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상대가 반하는 매력 포인트가 오랜 시간에 걸쳐 드러나기 마련이다. 반면 소개팅은 짧은 시간 안에 상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야 한다. 특히 마음에 있는 이성이라면 더더욱 자신을 적극 드러내며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문에 단편영화는 자신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대해 관객이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게 뭐지?’라는 호기심 단계에서 작품이 끝났다간 정작 보여주고자 하는 장점인 감정이나 포인트를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아’는 도입부에서부터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시험이 끝나고 시험지를 받아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활기찬 초등학교 교실과는 다른 분위기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누구나 고민을 지닌다. 바로 ‘점수’다. 하위권은 하위권대로, 상위권은 상위권대로 고민이 있다. 시험에서 진정한 승자는 오직 1등뿐이다. 선아는 그런 아이다. 반에서 2등. 공부를 잘하는 아이. 하지만 1등을 차지한 아이가 너무나 굳건하다. 시험지를 받은 선아의 표정은 오묘하다. 2등이란 높은 점수 때문에 실망할 수도 없고, 1등을 못해 만족할 수도 없다. 선아의 이런 고민은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나 하는 고민이다.

 

여기서 작품은 순수하지만 악랄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학창시절 누구나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공부 때문에 며칠씩 밤을 지새울 때면 나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시험지를 몰래 빼돌렸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이는 생각으로 멈추었기에 순수하게 다가온다. 공부에 힘들어 떠올리는 상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면 이는 악랄한 행위다.

 

▲ '선아' 스틸컷  © 씨네허브 공식 블로그

 

선아는 SNS에 올라온 글을 보고 슬퍼한다. ‘선아가 또 2등 했다’는 친구들의 말에는 안타까움과 1등을 한 친구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선아는 그 1등을 꼭 빼앗고 싶다. 공부를 해서 안 된다면 남은 답은 도둑질이다. 선아는 아침 일찍 교실을 향해 교탁 옆 책상에 놓인 컴퓨터를 향한다. 시험지를 빼내서 성적을 올릴 계획을 세운 것이다. 선아가 검색창에 컴퓨터 비밀번호를 푸는 방법을 치는 모습은 초등학생다운 귀여운 면모를 보인다.

 

또 관객 역시 선아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선아가 한 번이라도 1등을 해봤으면, 나쁜 방법이지만 성적으로 고민했던 학창시절을 지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1등을 찍은 선아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다. 시험을 보기 전부터 선아는 1등을 알았을 것이다. 전 과목 시험지를 얻었으니 만점을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선아는 웃지 않는다.

 

선아가 1등을 했다며 통화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함께 보이는 선아의 뒷모습은 어두운 조명과 함께 축 쳐져있다. 침대 위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악몽을 꾸는 듯하다. 이는 상상에서 한 단계를 더 나아간 현실을 보여준다. 학창시절 아이들은 누구나 성적을 강요받는다. 다른 길을 갈 예정이라도 당장 그 길에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면 공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게끔 유도한다.

 

때문에 학생들은 미래에 어떻게 꿈을 이룰지가 아니라 당장 다가올 시험을 어떻게 볼지를 상상한다. 이 과정에서 시험지 빼돌리기, 몰래 컨닝하기, 시간 멈추기 등등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학생은 딜레마에 빠진다. 정직과 노력이라는 가치를 훼손한 것이다. 이는 앞서 선아가 1등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순간들에 대한 부정이 되기도 한다.

 

결국 작품은 현대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초등학생의 시험지 빼돌리기는 귀여운(?) 상상력이지만 그 상상까지 나아가는 과정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그 상상은 학업 스트레스에 기인하며 그 당시 세상에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단 하나밖에 없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만든다. 초등학생인 선아의 얼굴에서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선아’는 학창시절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기에 자신의 정체를 빠르게 보여준다. 전개 역시 그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상상을 실현시키며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나누며 감정적인 격화를 더한다. 10분이 안 되는 짧은 런닝타임 안에 이야기는 간단하지만 의미는 진하게 담아내며 누구나 (소개팅이라면) 애프터를 신청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냈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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