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너무나 일찍 알아버린 '선유'의 마지막 절규|21th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나를 구하지 마세요' / 연출 정은경

한별 | 기사승인 2020/05/25 [17:30]

세상을 너무나 일찍 알아버린 '선유'의 마지막 절규|21th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나를 구하지 마세요' / 연출 정은경

한별 | 입력 : 2020/05/25 [17:30]

* 주의!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나를 구하지 마세요'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씨네리와인드|한별]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자살'이라는 행위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지만 도피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행위는 참으로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정작 본인이 아닌 주변인들이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그 고통을 짊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일가족이 번개탄을 피워 집에서 자살을 한다거나 자살한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정신적 트라우마를 몇십 년이고 겪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비관하다 가족을 놔두고 자살한 아버지. 선유(조서연)와 선유의 엄마 나희(양소민)는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마음의 상처를 입은 선유가 왕따를 당하자 새롭게 시작할 터전을 만들어주고자 나희는 선유를 데리고 전학을 가게 된다. 엄마 나희는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며 돈을 벌기 위해 식당일과 택배 상하차 일을 한다. 딸 선유에게는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자신의 미술학원 강사로 일한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어려운 가정 형편에 수도세나 전기세를 내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딸을 위해 산다.    

 

선유의 엄마는 남편이 죽고 난 후 선유 아버지의 사진을 모두 없애버렸지만, 선유는 버려진 아버지 사진 하나를 주워 간직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원망스러운 아버지였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자신을 좋아하는 같은 반 친구 정국(최로운)과 함께 죽은 참새를 묻을 때 불쌍하지 않냐는 정국의 질문에 '죽으면 아무것도 못 느끼는 데 뭐가 불쌍해'라고 말하는 선유이지만 땅을 파서 죽은 참새를 묻어주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나를 구하지 마세요'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학교에서 각자의 꿈을 발표할 때도 힘든 현실 앞에서 선유는 자신의 꿈을 말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의 호의와 사랑조차 받아들이기 꺼려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선유에게 엄마 나희는 '선유를 혼자 두고 어떻게 죽어'라고 말하지만 이미 빠져버릴 대로 힘이 빠져버린 엄마에게 선유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힘은 남아있지 않다.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선유에게 세상은 너무나 버거운 곳이다.

 

그럼에도 선유의 친구 정국은 끊임없이 선유에게 희망의 끈이 되어 준다. 엄마 나희가 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친구로서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해 줄 수 있는 존재다. 선유는 정국에게 '너는 아무것도 모르잖아'라고 말하지만, 이는 정국을 향한 '무시'가 아닌 나란 존재를 알아달라는 소리 없는 '절규'로 다가온다. 이들이 서로의 아이스크림을 바꿔 먹는 행위도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의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픈 엄마를 치료할 돈까지 빌려준 이모는 종종 선유네 집에 찾아온다. 예전에 선유네 가족이 힘들 때 돈을 빌려준 이모는 선유와 나희에게 마지막 구원 투수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남편의 사망 보험금은 압류되고 갚을 능력이 없자 나희는 한없이 비참해하고 미안해한다. 그런 나희가 딸 선유에게 '우리 아빠 보러 갈까?'라고 말하는 말은 너무나도 서글프게 들릴 수밖에 없다. 선유가 정국에게 꽃을 꺾어서 주며 '어차피 시들 꽃이니 꺾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건 자신의 삶 자체를 향한, 자신에게 하는 마지막 말이기도 하다.     

 

'나를 구하지 마세요'는 한부모가정이든 다문화가정이든 우리 주변에 있는 사회적으로 약자인 가정들을 드러낸다. 이러한 가정의 10대 아이들은 끊임없이 삶을 향한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 자신을 드러내지도, 드러낼 줄 모르는 이들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려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는 자신의 전체적인 삶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어떤 점에서 약자가 되었는지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이들에게 작은 손길 하나를 내밀어준다면 이들은 더 밝은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다. 돌아갈 곳이 없다 할지라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마음 어딘가에는 돌아갈 곳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어둡다면 차라리 어두운 밝지만은 않은 영화지만 영화는 어둡게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음악이나 조명, 색감 등의 기술적인 면도 좋지만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선사하는 감동과 사회적 메시지가 크게 와 닿는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한별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편집부/기획취재부(아시아)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 도배방지 이미지

나를구하지마세요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