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Review|'아이'(I, 2021)

김수현 | 기사승인 2021/08/17

아이들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Review|'아이'(I, 2021)

김수현 | 입력 : 2021/08/17 [19:53]

 

[씨네리와인드|김수현 리뷰어] 

 

▲ '아이'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의 시작

 

‘아동학대’,’아동방임’,’유기’와 같은 사회적 문제들은 현 시대까지도 꾸준하게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사회로 나오면서 겪게되는 문제들은 더욱 혹독히 그들에게 다가온다. 가족이라는 하나의 구성원안에 속하지 못한 아이들은 그 아이들끼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구성원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름만 가족인 그 공동체는 사실 서로를 책임져줄 수도, 서로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단지, 개개인의 몸으로 사회에 내던져질 뿐이다.

 

‘아이’는 아영(김향기)이 기초수급자 대상에서 떨어져 새로운 일을 찾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아영(김향기)은 고아다. 아니 엄마 아빠는 있지만,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영(김향기)은 친구와 함께 지원받은 집에서, 지원받는 돈으로 살아간다. 그 둘은 고장난 세탁기를 고칠 돈도 여유도 없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에서 벗어나 남의 보살핌 없이 살아가는 아영(김향기)은 모순적이게도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보육교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돈을 벌기위해 시작하게되는 그 일도 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자신이 가졌던 그 결핍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싫어서일까? 학교수업에서는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아영(김향기)도 아이들 앞에 가면 온갖 애교를 부리는 한 명의 보육교사가 된다. 이러한 모순적인 아영(김향기)의 상황은 아영(김향기)의 유년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 모순의 시작 말이다.

 

▲ '아이'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 영채(류현경)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 아영(김향기)은 한심해 보이는 영채(류현경)의 모습과 반대되는 순수한 아이를 극진히 보살핀다. 그렇게 영채(류현경)의 가족에게 마음을 열어가며 꽤 순탄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아영(김향기)은 하나의 큰 시련을 맞이한다. 영채의 아들이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다. 사실, 이 상황은 아영(김향기)의 잘못이 아닌 영채(류현경)의 실수다. 하지만, 영채(류현경)는 자신의 실수를 애써 피하고자 되려 화를 내며 아영(김향기)을 내쫒는다.

 

그런 영채(류현경)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함에도 불고하고 아영(김향기)을 고소한다. 사실, 이는 아영(김향기)을 다시 부르고 싶은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은 아영(김향기)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상태를 말하며 자신의 곁에 아영(김향기)가 남아주기를 바랐었기에 고소라는 선택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영채(류현경)의 합리화다. 영채(류현경)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미혼모이다. 미혼모에 대한 지원도 없고, 미혼모의 삶이 힘들다라는 것이 영채(류현경)의 모습을 통해 충분히 보여진다. 하지만 그 힘듦으로 인해 영채(류현경)가 자신의 아들을 무책임하게 넘기는 모습은 분명히 경계해야 하며, 합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 '아이'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영(김향기)에게는 또 다른 불행이 한 가지 찾아온다 친구 경수(김현목)죽음이다. 아영(김향기)과 친구이지만, 계속해서 갈등관계를 가지고 있던 둘이었다. 그럼에도 경수(김현목)의 죽음은 아영(김향기)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경수(김현목)의 죽음이 자살이라고 말하는 경찰과 달리 친구들은 계속해서 경수(김현목)의 죽음이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자의로 부모의 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타의로 인해 다른 시설로 맡겨지고, 다른 사람 손에 의해 혹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갔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책임감 없었던 그들의 행동이 결국 타살이라는 것을 이 영화가 시사하고 있는 바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고쳐지지 않는 세탁기가 눈에 밟힌다. 영화 초반부터 그 고장난 세탁기는 계속해서 말썽이다. 고쳐놓아도 다시 망가지고 또 고쳐도 또 다시 망가진다. 그 세탁기는 끝내 고쳐질 수 없었다. 이는, 영화 ‘아이’ 속에 나오는 모든 아이들의 상황이다. 이미 한 번 망가진 그들의 마음 그들의 일상은 고치기 쉽지 않다. 즉, 고쳐지지 않는 그 세탁기는 결국 아이들이 아무리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고, 고치려해도 그 아픔의 굴레 속에 갇혀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 영화가 시사하는 바 또한

 

그래서인지 아영(김향기)은 혁이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혁이에게 원래의 삶을 찾아주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아영(김향기)의 행동을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부모의 보호도, 사회의 보호도 받지 못하며,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었던 삶 말이다. 조금의 정이 든 그 아기에게 조차도 자신의 삶을 절대 겪게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아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아이’라는 단어로 많은 것이 설명된다. 이 영화 속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누군가의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이다. 이미 겉모습은 어른이 되어버린 영채도 그러하다. 그러한 ‘아이’ 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며 그 방식을 시사한다. 우리는 그러한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가? 사회는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가? 이는 분명히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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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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