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속의 어둠이 더 짙은 법

롭 마샬, 「시카고, Chicago」(2002)

남진희 | 기사승인 2021/08/25

화려함 속의 어둠이 더 짙은 법

롭 마샬, 「시카고, Chicago」(2002)

남진희 | 입력 : 2021/08/25 [10:00]

 

▲ 영화 '시카고' 스틸컷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씨네리와인드|남진희 리뷰어]

 

웰컴 투 시카고재즈로 가득 찬 도시가 여러분의 눈 앞에 펼쳐집니다!”

 

1920년대의 시카고는 휘황찬란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 온갖 범죄가 성행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도시이다. 영화 시카고1920년대 시카고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당시 시카고의 부패하고 탐욕적인 사회 분위기를 영화 전반에 걸쳐 소름 끼칠 정도로 기묘하게 표현해낸다. 특히 영화 초반부터 흐르는 재즈 음악은 많은 것을 상징한다.

 

실제로 재즈는 1910-1920년대에 걸쳐 창시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초창기 재즈는 단순한 박자와 블루스 음계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 두 구성요소는 조화로우면서도 오묘하게 어긋난 느낌을 준다. 재즈의 단순한 박자는 행진곡과 같이 경쾌한 느낌을 내면서 청중들이 음악을 즐기기 쉽게 하였다. 반면, 블루스 음계는 우울하고 끈적한 느낌을 낸다. 이렇게 박자와 음계의 부조화는 화려함 속에 짙은 어둠이 깔려있는 시카고를 그 무엇보다도 잘 드러낸다.

 

▲ 영화 '시카고'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재즈 공연의 막이 오르고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중 한 명인 벨마 켈리‘All that jazz’ 공연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이지만 가장 하이라이트인 부분이다. 바람피웠던 자신의 여동생과 남편을 죽이고 경찰이 오기 전 여동생과 함께 공연했었던 ‘All that jazz’를 열창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벨마가 노래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노래를 잘 듣다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래 속 ‘jazz’가 상징하는 바는 술과 마약, 폭력, 성적인 욕구, 부패한 권력이 난무한 당대 시카고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벨마가 '그런 것들이 전부 재즈야'라고 노래 부르다 경찰이 오자, '누구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나의 재즈'라고 당당한 눈빛을 보내는 모습은 관객들을 반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공연에 마음을 빼앗긴 관객들

 

우리가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은 벨마 외에도 영화의 다른 두 주인공들이 모두 이 장면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대 밑에서 관객의 입장으로 벨마의 공연을 바라본다. 영화의 또 다른 여주인공인 록시는 벨마의 공연에 동경의 시선을 보낸다. 그녀는 한때 스타를 꿈꿨지만, 현실의 압박으로 평범한 주부가 된 사람이다. 그런 그녀는 상상 속에서 벨마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덧입혀본다. 그러나 그녀의 상상은 곧 자신의 바람 상대인 프레드에 의해 깨지게 된다. 그들은 공연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 정열적인 관계를 즐긴다.

 

이 때 프레드와 록시의 장면이 벨마의 공연 장면과 교차하며 나타나는 것은 벨마처럼 자신의 재즈를 추구하고 싶음에도 현실의 재즈에 가로막혀 있는 록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장면은 미래에 바람을 핀 프레드를 살해한 록시가 감옥으로 끌려가는 장면과 이어지며 벨마와 록시의 인생이 닮아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한편 공연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관객인 빌리는 재즈 공연보다는 벨마를 유심히 바라본다. 그는 화려한 언변과 능수능란한 언론 플레이로 무장한 시카고 최고의 여성 재소자 전담 변호사이다. 속물적인 데다가 주색을 즐기는 빌리는 시카고의 부패한 권력을 가장 잘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벨마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장면은 벨마가 그리고 그녀와 닮은 록시가 자신의 재즈를 찾아가는 데 있어 현실의 재즈가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 영화 '시카고' 스틸컷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탱고 공연 속 숨겨져 있는 비밀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장면은 쿡 카운티 감옥에서 여섯 명의 여성 수감자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Cell block tango’를 부르는 장면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은 살인일 뿐이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Cell block tango’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 시세로, 립시츠와 같이 노래 중간중간에 추임새처럼 반복되는 단어들이다. 바로 이 단어들은 감옥의 여성 수감자들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1920년대는 여성 해방 운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때였고 시카고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었다. 그 전까지는 남성의 권위 아래 부정과 부패를 눈감아야 했던 여성들이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영화는 이러한 모습을 거칠게 ‘Cell block tango’를 부르는 교도소 안의 여성들을 통해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수감자들 외에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단발 머리를 고수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또한, 당시 여성 해방 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여성 수감자들이 남편의 부정을 말하며 자신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당당히 노래 부르는 장면은 관객들에게도 해방감을 가져다 준다.

 

또한, 여섯 명의 수감자들 중에서 중요한 인물은 -를 반복해 말하는 후냑이다. 후냑은 사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영어를 못해서 소통이 안된다는 이유로 모든 죄를 뒤집어 쓰게 된다. 그녀는 끝내 교수형까지 처해지는데 다른 죄를 지은 죄수들보다도 그녀가 가장 큰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점이다. 그래서 후냑의 존재는 ’Cell block tango‘ 넘버와 더불어 당시 사회가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 있어 얼마나 무지했고 불공평했는지 잘 나타내준다.

 

특히 감독은 관객들에게 후냑의 무죄를 알리는 데 있어 디테일한 노력을 기울였다. ’Cell block tango‘ 넘버에서 다른 여성 수감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붉은 천으로 자신이 살인했던 과정을 알려주는데 후냑은 유일하게 흰 천을 가지고 있고 살인하는 과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바로 이런 세심한 요소들이 이 영화가 뮤지컬과 영화의 경계에서 얼마나 장점을 잘 살려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영화 '시카고' 스틸컷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이건 모두 한 편의 쇼일 뿐이니까요, 그렇죠?”

 

’All that jazz’ 공연에서 암시했듯 빌리는 록시의 가치를 알게 되고 록시의 소송을 맡기로 한다. 그들은 프레드를 살해했던 과정을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어 기자들에게 배포하려고 한다. 빌리가 내세운 전략은 바로 감정에 호소하기였다. 이 전략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만 열중하는 시카고의 기자들에게는 최고의 미끼였다. 영화 장면 중, ‘We Both Reached for the Gun’ 넘버는 빌리의 손에서 놀아나는 록시와 기자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잘 보여준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인 것처럼 자신의 무릎에 앉아있는 록시를 복화술과 태엽을 통해 조종하는 빌리, 그리고 빌리에게 조종당하는 또 다른 꼭두각시 인형들인 기자들이 맞장구치며 노래 부르는 장면은 터무니없는 현장의 모습을 여과 없이 상징하고 있다. 특히 빌리가 노래를 멈춰도 알아서 지어낸 뒷얘기를 말해주는 기자들은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한 명의 사기꾼에 불과한 빌리를 명성 있는 변호사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꼭두각시 같은 시카고의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쫓아 진실을 외면했다. 그리고 또 다른 권력 기관인 언론은 이들을 비판하는 게 아닌 오히려 동조하며 가십거리를 계속 만들어냈다. 그래서 마치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쇼와 같은 빌리와 록시의 전략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카고에서 가장 믿음직한 한 수였다. 그렇기에 살인자인 록시는 한순간에 세상의 관심을 모두 받는 스타가 되었다. 그녀가 저지른 죄에 주목하기보다 그녀가 만들어낸 가십거리에 주목하는 시카고는 단순히 과거의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공연이 끝나도 블랙 코미디 쇼는 계속됩니다

 

가십으로 얻은 인기는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록시는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자신보다 더 선정적인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 모든 유명세를 빼앗기게 된다. 사람들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록시와 벨마는 팀을 결성하고 그들은 자신들만의 재즈 공연을 선보이기로 한다. 현실의 재즈에 물들어 있었던 그녀들이 마침내 자신의 재즈를 쫓고자 했을 때, 사람들은 계속 관심을 보일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들을 시카고가 낳은 최고의 킬러라고 소개한 사회자를 보면 관객들은 아직 그녀들을 가십거리에서 완전히 떼어놓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녀들의 공연이 계속되다 보면 시카고는 조금 변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1920년대의 시카고는 아직 현대 사회에 남아있다. 시카고와 같은 사회는 사람을 인생의 주연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마치 한 편의 쇼 공연자처럼 보이게 한다. 가십거리만을 쫓고 부정부패가 가득한 세상이 계속될수록 블랙 코미디 쇼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화려함 속의 어둠은 더 짙은 법이다. 영화 시카고는 세상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을 유쾌하면서도 심오하게 비판한다. 그런 면에서 록시와 벨마의 공연으로 영화를 마무리 지은 것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이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엔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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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희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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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8.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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