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의 거장, 그의 작품세계를 만든 세 가지 키워드|21th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애니메이션의 연금술사, 얀 슈반크마예르' / 연출 아담 올하, 얀 단헬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6/12

초현실주의의 거장, 그의 작품세계를 만든 세 가지 키워드|21th JEONJU IFF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애니메이션의 연금술사, 얀 슈반크마예르' / 연출 아담 올하, 얀 단헬

김준모 | 입력 : 2020/06/12 [15:28]

▲ '애니메이션의 연금술사, 얀 슈반크마예르' 스틸컷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얀 슈반크마예르는 독창적이고 초현실적인 연출을 통해 애니메이션 거장으로 인정받은 감독이다. 그의 연출은 테리 길리엄, 퀘이 형제 등 후배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실험적이고도 새로운 스타일을 통해 영상예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첫 번째 장편 작품 ‘앨리스’는 실사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혼재하며 동화의 내용을 이미지를 통해 강렬하게 구현해냈다. 이 작품의 기괴함은 컬트적인 매력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거장의 예술세계를 담은 이 작품은 2018년 ‘벌레’ 이후 은퇴를 선언한 얀 슈반크마예르 감독의 진실한 이야기를 담는다. 그는 68년 프라하의 봄에 대한 충격으로 유행했던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체코 정권은 이런 예술 사조를 탄압했고 얀 슈반크마예르 역시 72년 제작한 ‘레오나르도의 일기’라는 작품이 검열에 걸려 7년간 영화 제작을 금지당하는 일을 겪은 바 있다.

 

억압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금지가 풀린 이후 얀 슈반크마예르는 광기라는 단어가 연상될 만큼 기괴한 작품들을 내놓는다. ‘보헤미아의 스탈린’ ‘죽음의 식탁’ ‘쾌락의 공범자들’ 등의 작품은 강렬한 표현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작품에서 사용된 소품이 전시된 예술관은 기존의 표현을 벗어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는지 잘 보여준다.

 

▲ '애니메이션의 연금술사, 얀 슈반크마예르' 스틸컷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작품은 이런 감독의 예술세계를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제시한다. 첫 번째는 아내 에바다. 에바는 같은 예술가로 슈반크마예르의 영혼의 동반자였다. 작업을 통해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게 매료됐다. 에바의 그림은 성적인 작품이 많다. 이는 슈반크마예르의 예술에 반영된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에바에게 성적인 표현은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다. 페미니스트인 에바는 어머니와 오빠들에 의해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 트라우마가 남성 중심의 가정에서 여성으로 가지는 억압과 차별이란 걸 대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때문에 그녀는 남녀의 나체와 신체의 분열, 성기의 표출을 통해 성적인 억압을 해체하고자 한다. 이런 에바의 표현은 슈반크마예르에게 영향을 주며 예술과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에바의 죽음 이후 슈반크마예르는 아내이자 작품세계의 커다란 동력이 사라진 것에 대한 무력함을 느낀다.

 

두 번째는 초현실주의다. 초현실주의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이나 꿈의 세계를 표현하는 문학과 예술 사조다. 인간을 이성의 굴레에서 해방하고 파괴와 창조가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최고점을 얻으려는 게 목적이다. 슈반크마예르의 작품은 이런 초현실주의가 지향하는 방향을 따른다. 그의 작품은 창조와 붕괴를 반복한다. ‘앨리스’를 예로 들자면 인형인 흰색 토끼나 뼈로 만든 도마뱀 등은 창조지만 이들이 갈라지거나 부서지는 순간은 붕괴에 해당된다.

 

‘죽음의 식탁’에서는 식기는 물론 자신의 몸을 먹는 모습을 통해 이런 반복을 보여준다. 감독은 사회에 이성이란 이름으로 얽매인 요소를 파괴하기 위해 두 가지에 주목한다. 먼저 아이들의 놀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기존 놀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기존 규칙을 파괴한다. 또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놀이를 진행하기도 한다. 찰흙을 주었을 때 현상을 모방하는 게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가 하면 자전거를 탈 때도 페달을 밟지 않고 움직이는 등 기존 질서와 법칙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다.

 

▲ '애니메이션의 연금술사, 얀 슈반크마예르' 스틸컷  ©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다음은 페티쉬다. 페티쉬는 성적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물을 말한다. 이 대상물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신체부위에 있어서도 발가락, 겨드랑이, 발뒤꿈치 등 특이부위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감독은 이런 독특한 페티쉬에서 힌트를 얻어 신체부위를 색다르게 표현한다.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딜도나 야채나 기계 또는 뼈를 통해 표현된 신체의 일부는 페티쉬적인 측면을 보이며 흥미를 자아낸다.

 

세 번째는 세상과의 대립이다. 얀 슈반크마예르의 작품은 그 성적인 표현 때문에 외설적이란 말을 듣는다. 때문에 고전적인 가치와 충돌을 겪으며 세상이 원하는 흐름과 다르기에 대립하게 된다. 감독은 이런 초현실주의의 표현에 대해 미래 세대를 위한 것임을 밝힌다. 앞서 언급했듯 슈반크마예르 감독은 국가에 의해 제작을 금지 당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예술에 가장 무서운 적은 검열이다.

 

예술에 검열이 가능해지면 다음은 사회가 되고 우리의 생활영역까지 파고든다. 올바른 것을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올바른 게 무엇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또 우리는 잘못에 대해 처벌을 해야지 예술에 대해 그것을 유도한다고 탓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미국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당시 언론은 가수 마릴린 맨슨의 음악이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며 그를 비판하고 비난했다.

 

문제의 본질인 총기가 아닌 사회적인 분위기에 반한다는 이유로 예술을 억압하는 것이다. 예술은 자유롭고 다양할 때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이끌 수 있다. 예술의 다양성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가치가 통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오며, 무언가를 외설이라 규정하는 건 그것이 지닌 가치와 또 다른 가능성을 일축하는 행위다. 때문에 슈반크마예르는 미래 세대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세상과 대립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체코식 유머와 슈반크마예르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통해 기존에 만나기 힘들었던 다른 차원의 예술을 선사한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개념을 통해 모든 존재와 인식이 형태를 초월하는 영원한 실재가 있다고 말했다. 슈반크마예르의 예술세계는 이 이데아를 새로운 형태에 담아낸 예술이다. 작품을 보고 나면 슈반크마예르라는 인물이 어떤 작품을 선보였는지, 특히 ‘앨리스’라는 작품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지니게 될 것이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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