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택할 나이, '69세'

[프리뷰] '69세' / 8월 20일 개봉 예정

김준모 | 기사승인 2020/08/18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택할 나이, '69세'

[프리뷰] '69세' / 8월 20일 개봉 예정

김준모 | 입력 : 2020/08/18 [17:21]

▲ '69세'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우리 사회가 지닌 갈등은 편견에서 비롯된다. 남녀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 계층갈등 등 사회가 겪는 갈등은 상대에 대한 편견, 특정한 프레임을 지닌 색안경에 의해 이뤄진다. 이는 세대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각 세대에 따라 그들만의 고민이 있고 불만이 있다. 세대는 서로의 고민을 이해하고 안아주기 보다는 배척하고 힐난한다. ‘69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고, 자신의 존엄을 위해 싸워나가는 여성의 모습을 담는다.

 

69세의 효정은 29살의 간호조무사에게 성적인 폭행을 당한다. 그녀는 동거 중인 동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한다. 효정은 정액이 묻은 속옷을 제출하는 등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경찰은 편견이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들은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간호조무사의 말에 더 중점을 두고 효정을 치매 환자라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69세란 나이가 온전히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 '69세'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작품은 두 가지 키워드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첫 번째는 편견이다. 효정은 자신이 젊은 여성이었어도 사건이 이렇게 진행됐을 거냐며 형사에게 묻는다. 간호조무사는 효정이 자신과 아는 사이라며 그와 자신이 마트에서 만난 사실을 증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효정에게는 이 기억이 없다. 그 기억을 이유로 경찰은 그녀를 치매환자로 의심한다. 그런데 치매환자라면 성폭행의 기억 역시 왜곡되는 것인가.

 

경찰이 이 기억이 왜곡되었다 생각하는 이유는 그녀의 나이 때문이다. 20대 후반에 결혼을 앞둔 애인이 있는 남자가 60대 후반의 여성을 성폭행 했을 리가 없다. 이런 편견은 마이클 더글라스와 데미 무어가 출연했던 폭로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작품은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남성이 이를 증명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이 개봉했던 90년대 당시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행을 당한다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성폭행 가해자하면 남성, ‘피해자하면 여성을 먼저 이미지로 떠올린다. 이런 편견은 여성의 나이와도 연관되어 있다. 클로딘느 사게르의 못생긴 여자의 역사라는 책에서는 프랑스에서 노년의 여성이 지닌 성욕을 다룬 영화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음을 언급한다. 노년 남성의 성욕을 다룬 영화는 예술성을 인정받지만, 노년 여성은 사회적인 금기처럼 여겨진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라고 한다면 젊거나 성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여성의 존재를 먼저 떠올린다. 때문에 효정은 의심을 받는다. 이 의심은 절망의 감정을 키운다. 자신을 향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다거나, 간호조무사 같지 않은 차림으로 다닌다는 말에 그녀는 큰 상처를 입는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입으로 꺼낼 수 없는 아픈 기억 때문에 상처를 따끔거리게 자극한다.

 

▲ '69세'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두 번째는 존엄성이다. 효정과 동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몸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효정은 오십견으로 팔을 제대로 들 수 없다. 그녀가 성폭행 당시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던 이유다. 동인은 목발을 짚고 다닐 만큼 거동이 편하지 않다. 이런 동인의 모습은 그가 효정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음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 자신이 몸이 성치 않은데 누군가를 지키는 건 힘든 일이다.

 

노년에 접어들면 인생은 성장이 아닌 죽음의 과정처럼 여겨진다. 몸은 여기저기 망가지며, 사회에서는 그들의 존재를 일종의 문제로 바라본다. 과거 노인은 현명함과 지혜의 상징이었지만, 정보화 시대에서는 그 지식의 가치마저 퇴색되었다. 오히려 새로운 지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노인은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편견의 대상이 된다. 동인은 이런 무시와 편견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는 편의점 직원을 향해 너는 늙지 않는 줄 아느냐며 화를 낸다. 그가 일으킨 작은 소동은 일종의 용기다. 사회적인 약자에게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거 자체가 큰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연대와 협력이란 지팡이 없이는 일어설 수 없다. 효정은 혼자 힘으로 자신을 향한 편견에 맞서고자 한다.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하다. 그녀는 존엄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맞선다.

 

그래도 이렇게 용기를 내는 건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라는 작품 속 효정의 내레이션은 희생과 침묵이란 억압을 이겨내는 용기의 힘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결말은 다소 논란을 낳을 지점이 있다. 인간도 다른 생물처럼 종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이런 목적 하에 사회가 구성되었다. 때문에 미래 사회를 이끌어 나갈 미성년자나 청년층에 대해서는 그 죄에 경중을 달리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효정은 타인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존엄을 포기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가치는 동일하다. 자연권 사상이 등장한 후 평등은 인류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때문에 그녀는 싸운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인간이고 존엄을 지킬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69는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시각을 지닌 영화다. 장르적인 쾌감보다는 효정이 느끼는 좌절과 고통, 무너지려는 순간에도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에 주목하며 삶의 마지막 숨결까지 인간된 가치를 말하는 강한 힘을 보여준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0.08.18 [17:21]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