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FF|노인문제에서 여성억압을 향하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힘

[JFF 온라인 일본영화제 상영작] ‘0.5미리’ / 0.5mm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2/08

JFF|노인문제에서 여성억압을 향하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의 힘

[JFF 온라인 일본영화제 상영작] ‘0.5미리’ / 0.5mm

김준모 | 입력 : 2020/12/08 [21:04]

 

▲ '0.5미리' 포스터  © Realproducts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0.5미리(mm)’의 도입부는 튜브로 시작된다. 이 튜브는 노인의 호흡기와 연결되어 있다. 이 장면은 세대 간의 대화와 소통이 제목처럼 좁다는 걸 의미한다. 아버지가 배우 오쿠다 에이지, 어머니가 에세이스트 안도 카즈고, 동생이 어느 가족의 안도 사쿠라인 감독 안도 모모코는 그 예술가의 피를 그대로 보여준다. 동생 안도 사쿠라를 주연으로 내세운 이 작품은 간병인 사와의 삶을 통해 여성과 노년의 삶을 그린다.

 

간병인 사와는 소조라는 노인을 돌본다. 소조는 배변활동도 제대로 못할 만큼 병들어 있다. 유키코는 사와에게 아버지가 자신의 유일한 외출복에도 소변을 봐서 옷을 버렸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사와 앞에 펼쳐질 가혹한 운명에 대한 두 가지 힌트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외출복 하나하나를 아낄 만큼 유키코의 집안은 부유하지 않으며, 그녀 역시 아버지의 병간호로 지쳤다는 것이다.

 

딸 마코토가 태어나기 전부터 남편이 집을 나가 혼자 살아왔던 유키코는 아버지를 돌보며 한계점에 다다랐다. 그녀는 소조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여자를 그리워한다고 하룻밤만 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 달라 사와에게 부탁한다. 간병인은 환자의 가족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게 된다. 한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들의 고통과 애로사항을 함께 느끼며, 환자와의 밀접한 신체접촉은 애정이 들게 만든다.

 

▲ '0.5미리' 스틸컷  © Realproducts

 

유키코의 간절한 부탁을 받아들인 사와. 이 부탁을 받아들인 게 그녀에게는 큰 실수였다. 가만히 누워만 있을 줄 알았던 소조는 어디서 기운이 생겨났는지 사와의 몸을 탐하려고 한다. 저항하던 사와는 실수로 소조를 내팽개치고, 전기장판이 이상을 일으켜 집에 불이 난다. 그리고 소조는 행복한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얼떨결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온 사와는 목을 매고 자살을 택한 유키코를 보게 된다.

 

이 일로 사와는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부모가 없는 그녀는 전 재산을 차에 두고 내리면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다. 이런 사와의 눈에 들어온 게 한 노인이다. 딱 봐도 거동이 편치 않은 노인은 노래방에서 숙박이 되느냐며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사와는 이 노인을 포섭해 노래방에서 성관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 이 노인과의 만남을 통해 사와는 세 가지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노인은 돈이 많다. 이들 중 다수는 버블 시대를 겪으며 상당한 수입을 올린 이들이다. 노인은 말상대가 필요하다. 겉으로는 강인한 척, 괜찮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이에 대한 외로움을 지닌다. 특히 상대가 젊은 여자에 호감을 보이면 더더욱 좋아한다. 노인은 약하다. 나이가 들면 지적인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온갖 질병에 시달린다. 협박하기 쉽고 여성도 완력으로 제압이 가능하다.

 

▲ '0.5미리' 스틸컷  © Realproducts

 

사와는 노인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자 한다. 그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그 집에서 생활한다. 첫 번째 대상인 시게루는 활동량이 왕성한,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이는 노인이다. 허나 그의 내면은 연약하다. 그래서 자신이 친절하게 대해도 냉대하는 여자의 자전거 바퀴에 복수랍시고 구멍을 뚫는다. 이 모습을 발견한 사와는 그를 협박해 집에서 함께 지낸다. 말이 협박이지 간병인으로 일해 온 사와는 극진하게 시게루를 돌본다.

 

시게루를 통해 강조되는 노인문제는 사기다. 일본 내 노인사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식과 따로 사는 노인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사기꾼의 접근에 넘어간다. 시게루 역시 사이토라는 남자에 의해 사기를 당할 위협에 처한다. 이런 시게루를 도와주는 건 사와다. 사와의 목적은 돈을 얻는 게 아닌 살 집을 구하는 것이다. 가족이 없는 그녀에게 시게루는 돌봐야할 가족이 된다. 가족이 위협에 처하니 구해주는 게 당연하다.

 

시게루 이후 사와는 마카베라는 노인을 이용한다. 지역에서 교수로 명망이 높은 그의 약점을 잡아 집으로 들어간다. 시게루 때처럼 사와는 극진하게 마카베와 침대에 누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의 부인 시즈에를 돌본다. 문제는 사와로 인한 마카베의 마음 변화다. 참전세대인 마카베의 마음 한 구석에는 야성(野性)이 있다. 그의 내면은 존중받는 교육자와 거리가 멀다. 마카베는 사와에게 욕구를 품는다.

 

이 욕구와 부딪치는 게 시즈에에 대한 죄책감이다. 마카베가 욕구를 품을 때마다 시즈에는 마치 악령처럼 나타난다. 그 환상에 마카베는 혼란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그 명성과는 달리 노인이 된 마카베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나타난다. 재산을 노린 자식들의 다툼, 그를 무시하는 간병인 하마다, 병으로 인해 점점 약해지는 육체와 정신 등 마카베는 모든 면에서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다.

 

사와는 마카베의 집에서 결국 나오게 되지만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가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작품은 노인에 대한 문제를 다루지만 주인공은 여성인 사와다. 사와에게는 이상한 측면이 있다. 생각해 보라. 노인의 약점을 잡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를 통해 돈을 뜯어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나이도 젊고 간병인으로 능력도 있는 사와가 계속 노인과 함께 거주하며 돈도 장보는 비용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건 설정오류처럼 보인다.

 

▲ '0.5미리' 스틸컷  © Realproducts

 

이는 사와가 자립심 있는 여성이 아닌 누군가에게 항상 붙어있어야 하는 삶을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세상 밖으로 나갈 자신이 없기에 타인의 삶에 기생하고자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와는 마코토를 찾아간다. 마코토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마코토를 처음 본 아버지 타케시는 외형만 보고 여자아이가 아닌 사내아이라 생각한다. 마코토는 사와가 그랬던 거처럼 여성으로의 삶을 배운 적이 없다.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며 남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방법을 배운 적 없다. 만약 이대로 마코토의 시간이 흐른다면 사와처럼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와는 타인에게 기대어 사는 거처럼 보이지만 시점을 바꿔보면 가부장적인 남성문화 속에서 여성은 그 안에 속해 있는 존재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캐릭터가 사와가 함께 살게 되는 세 번째 노인인 타케시다.

 

타케시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책을 좋아하는 마코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읽지 못하게 한다. 사와는 자신처럼 마코토가 본인의 삶을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 여정이 마코토에게서 멈춘 건 마코토의 해방이 사와의 해방이기 때문이다. 노인세대의 가부장적인 문화와 여성의 억압을 노쇠한 노인과 억압된 여성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제목처럼 서로 이해하기엔 작은 공간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의 결말은 특정한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여성의 해방도, 노인문제 개선에 대한 촉구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현상을 통해 약자들의 삶을 느끼게 만든다. 해결은 정치인이 할 문제지 예술가의 영역이 아니다. 안도 모모코는 세대 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 시대를 그려내며 가부장제, 노인소외, 여성억압 등 다양한 문제를 담아낸다. 3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헛되게 쓰지 않음과 동시에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극적인 매력을 더한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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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12.08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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