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사랑이 뭘까(What Is Love?, 2018)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2/18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는 걸까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사랑이 뭘까(What Is Love?, 2018)

김준모 | 입력 : 2020/12/18 [10:11]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어린 시절 누구나 색칠공부를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색칠공부에는 정해진 색이 있다. 백설공주의 머리는 검은 색으로 칠해야 하고, 신데렐라의 머리는 노란색으로 칠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색칠을 해도 그림은 완성되지만, 그 그림은 원래 색을 칠한 완성본에 비해 부족한 느낌을 준다.

 

조건 없는 사랑은 마음대로 칠한 색칠공부와 같다. 자기만족에 취해 마음대로 색을 선택한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가 씌여 계속 예뻐 보인다면 모르겠지만, 어느 날 한 발짝 뒤에 서서 완성본과 자신의 그림을 비교한다면 실망할지 모른다. 우리가 사랑에 있어 조건을 계속해서 생각하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완벽에 가까운 모양을 얻기 위해서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거라지만 내 마음은 어린 시절 그 모습만으로 남아있지 않다.

 

▲ '사랑이 뭘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8일째 매미>, <종이 달>의 작가로 유명한 가쿠다 미쓰요는 인간이 지닌 심리의 불온한 행복을 들여다본다. <종이 달>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의 주인공 리카는 남을 향한 강한 동정심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은행 계약직 사원이 된 리카는 까다로운 고객의 손자 코타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자 도와주고자 한다. 언뜻 보기에는 착한 심성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택한 방법은 고객 예금에 손을 대는 것이다.

 

리카는 타인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나쁜 짓을 한다. 허나 이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은행은 돈이 많은 곳이다. 돈이 일부 비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다시 채워 넣으면 된다. 지금의 난 불우한 사람을 돕는 게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서도 이런 불온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바로 헌신적인 짝사랑이다.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사랑이 뭘까의 첫 장면은 야마다 테루코가 타나카 마모루의 집에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테루코는 몸이 아픈 마모루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화장실 청소도 한다. 그런데 마모루의 반응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인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라는 테루코의 말에도 마모루는 그녀를 내보낸다. 우연히 한 모임에서 만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아니, 연인 관계라 테루코는 믿었다. 사랑을 나누었으니 연인이라 여긴 테루코는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보며 마모루가 내뱉은 말이 프로포즈라고 생각한다.

 

▲ '사랑이 뭘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작품 속에는 한 래퍼가 나와서 노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래퍼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말하면서 어리광을 다정함으로 착각하지마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길 원한다. 그런 감정이 내면에 내재되어 있다. 집에 가족이 없으면 나가서 누군가라도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사랑이 없어 외롭기 때문이다. 이 사랑을 얻기 위해 때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을 갈구하기도 한다. 이 감정이 어리광이다.

 

처음 테루코에게 말을 건 것도, 사랑을 나누는 것을 주도한 것도 마모루다. 가난한 예술가인 그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것이고, 이 허한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 필요했을 것이다. 간단하게 외로움을 달래는 관계를 원했던 마모루에게 테루코의 사랑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몸이 나은 그는 테루코를 불러 밥을 산다. 전형적인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로 재설정을 원한 것이다. 며칠 간 연락이 두절된 그가 테루코에게 스미레를 소개하는 것도 이런 마음에서다.

 

그는 대놓고 자신은 스미레를 좋아한다고 테루코에게 말한다. 스미레는 집착하지 않는 쿨한 여자라는 말에서 테루코를 비하하기도 한다. 웃긴 점은 이렇게 상처를 준 마모루가, 그래도 테루코의 애정이 식지 않자 다시 그 품을 향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테루코의 친구 요코와 그녀를 좋아하는 나카무라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나카무라는 짝사랑하는 요코를 위해 모든 부탁을 다 들어준다.

 

심지어 테루코와 마모루, 스미레가 함께 떠나는 여행에도 요코의 부탁으로 그녀 대신 함께 참석한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상 명령이다. 이 사랑에 지친 나카무라는 한 발짝 뒤에서 자신과 요코를 바라본다. 혼자만 애를 쓰는 사랑의 형태를 발견한 그는 슬픔에 빠지고 테루코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우리 둘 다 일방적인 사랑에 고통 받고 있다고 말이다. 혼자 원하는 색으로 채워나가던 색칠공부가 본인의 눈에도 미워 보이기 시작한다.

 

▲ '사랑이 뭘까'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짝사랑을 포기하는 건 어른이 되었다는 말과 같다. 어른은 확실한 걸 좋아한다. 불안정한 미래나 관계에 힘을 쓰지 않는다. 허나 사랑이란 게 어찌 마음먹은 대로 쉽게 갈까. 테루코가 즐거운 시간은 모두 마모루와 함께 할 때이다. 남들이 볼 때 테루코는 사랑에 있어 호구지만 좋아하는 사람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느낀다. 이런 테루코의 마음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불행한 안정을 택할 것인가 행복한 불안을 택할 것인가.

 

테루코의 직장 동료는 결혼을 앞둔 사람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테루코에게 털어놓는다. 결혼은 꼭 사랑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때로는 감정 없이 의리로 택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인생에서의 안정을 위해 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을 때 막상 답하기 힘들다. 완벽하게 색칠을 했다 여겼지만 네가 이 그림을 좋아하니?’라고 물었을 때 라고 말할 수 없다.

 

살다 보면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나보다 돈을 적게 버는 친구를 만나도 그 친구가 하는 일에 만족을 느끼고 즐기는 모습을 보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그래도 저 친구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구나. 그런데 난 뭐하고 있는 거지?’ 테루코의 감정은 불온하지만 어찌되었건 행복이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은 일이 취미고, 취미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일치하는 것만큼 천운도 없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주는 건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랑은 그 마침표를 위해 타협을 본다. 그 타협이 싫은 사람이라면 조금 불온하다 하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그 또는 그녀에게) 나쁜 건 아니지 않을까.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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