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의 즐거움과 위험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히 러브스 미(He Loves Me... He Loves Me Not, 2002)

김준모 | 기사승인 2020/12/22

짝사랑의 즐거움과 위험

영화로 배우는 감정수업 / 히 러브스 미(He Loves Me... He Loves Me Not, 2002)

김준모 | 입력 : 2020/12/22 [10:17]

▲ '히 러브스 미' 스틸컷  © A-Line

 

[씨네리와인드|김준모 기자]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날 때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첫사랑은 그 순수함과 아련함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하지만 그 핵심적인 감정은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 때문에 순수함이 답답하지 않게, 아련함이 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첫사랑이 즐거운 건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짝사랑은 즐겁다. 그 사람을 신성시하며 온갖 상상을 반복한다. 아이돌에게 느끼는 유사연애 감정처럼 첫사랑의 대상은 영원히 마음에 품은 아이돌이다.

 

사랑은 햇빛이란 찬란한 즐거움이 강할수록 그 뒤의 그림자도 커진다. 처음 사랑을 시작하면 당황하는 건 내가 지녔던 환상의 파괴다. 내가 상상하고 생각했던 모습과 다른 면을 보일 때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런 생리현상부터 의견다툼은 물론 치졸한 이유로 토라지거나 실망을 표할 때면 , 내가 이런 걸 겪으려고 이 사람한테 그렇게 푹 빠졌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가 내세우는 건 사랑의 판타지다. 보통의 사랑은 콩깍지가 벗겨지면 극심한 염증을 느끼다 그래도 사랑하니까라는 마음에 순응하지만, 판타지는 벗겨진 콩깍지가 알고 보니 오해였고, 더 로맨틱하거나 진중한 면모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영화나 드라마로 사랑을 배우면 모든 순간이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상상으로만 여겼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히 러브스 미>는 색광증 환자의 이야기를 귀엽게 그린 반전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색광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일 것이다. 성적인 만족만을 위해 계속 관계를 추구하는 이 영화는 색광증을 어둡게 묘사한다면, <히 러브스 미>는 밝고 깜찍하면서 섬뜩하게 표현한다.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눠 똑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시점으로 보여준다.

 

1부는 미술학도 안젤리크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는 심장전문의 뤼크와 사랑하는 사이다. 문제는 뤼크가 유부남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안젤리크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다짐하는 뤼크. 이에 안젤리크는 모든 걸 버리고 뤼크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함께 떠나기로 한 날, 뤼크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안젤리크는 홀로 밤거리를 걸으며 눈물을 흘린다.

 

▲ '히 러브스 미' 스틸컷  © A-Line

 

1부만 보자면 뤼크는 통속극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다. 그렇다면 2부는 뤼크의 시점에서 안젤리크에게 당하는 복수를 그렸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헌데 시작부터 이 남자, 표정이 심각하다. 사랑보다는 더 심각한 고민이 있는 듯하다. 여기서 작품은 기막힌 반전을 선보인다. 알고 보니 안젤리크는 뤼크가 자신을 사랑한다 생각하고 스토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젤리크가 꽃집에서 해고당하는 사건이 되는 교통사고는 알고 보니 그녀가 뤼크의 아내를 친 것이다. 어쩐지 1부에서 왜 뤼크가 안 나오나 했건만 이런 비밀이 있었다. 그렇다면 안젤리크는 어쩌다 뤼크에게 반하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한 송이의 꽃 때문이다. 아내가 임신했단 소식에 기분이 들뜬 뤼크는 이웃에 살던 안젤리크에게 꽃 한 송이를 건넨다. 기쁨에 차서 한 행동이 상대에게 망상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감정은 소통이다. 대화를 나눌 때 내 이야기만 하면 상대가 싫어하듯 감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 기분이 불쾌하다고 그 감정만 반복하면 상대방은 피로를 느낀다. 사랑은 소통이 중요하기에 그만큼 어렵다. 좋아한다는 말로 풀리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최선을 다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짝사랑이 즐겁다. 나 혼자 상대를 실컷 좋아하면 끝이다.

 

짝사랑에는 몇 가지 증후군이 있다. 먼저 상대방이 내 감정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는 용기가 없다고 보기보단 그 감정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기는 경향에서 비롯된다. 소중한 것일수록 내 입으로 자랑하기 보다는 상대가 그 진가를 알아주었으면 한다. 안젤리크 역시 직접적으로 뤼크에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주변을 배회하며 망상을 진행할 뿐이다. 그 망상 안으로 뤼크가 들어오길 바라며.

 

▲ '히 러브스 미' 스틸컷  © A-Line

 

다음으로 작은 상황에 큰 비극을 느낀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애인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절망하지 않는다. 또 상대를 애인이 있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짝사랑 증후군의 경우 상대를 내 마음으로 짓누르려고 한다. 그 사람에게는 애인이 있어서는 안 되며, (나이가 어리다면) 사랑 한 번 안 해본 순수한 존재여야 한다. 안젤리크가 극단적으로 뤼크의 부인을 공격한 것도 이런 감정에 기반 한다.

 

마지막으로 불타는 소유욕을 보여준다. 짝사랑 증후군은 주변의 관심이 모이면 마음을 포기한 거처럼 행동한다. 혼자 하는 사랑이니 혼자서 포기하는 것도 쉬울 것이라 여긴다. 반대다. 상대와의 갈등이 없으니 더 상상을 자극하고 진행한다. 갈등은 마음을 지치게 만들고 피로를 유발하지만 짝사랑엔 이 요소가 없다. 그래서 안젤리크는 뤼크에 대한 마음을 접은 척 하면서 여전히 그에 대한 엄청난 집착을 보여준다.

 

사랑에도 건전한 생각이 있다. 집착이 심한 사랑, 폭력적인 사랑 등 광적인 사랑은 혼자만 하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에도 소통이 필요하다. 내 소중한 감정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기 보다는 서로의 공유된 감정을 소중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짝사랑은 나쁜 게 아니다. 다만 짝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 껍질을 깨지 못한다. 혼자만의 즐거움에 갇혀 버리는 위험에 빠지면 그보다 더 큰 함께하는 기쁨을 알지 못할 것이다.

 

 

김준모 기자|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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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0.12.2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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