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더'의 반복과 변주

송상호 | 기사승인 2021/04/19

'더 파더'의 반복과 변주

송상호 | 입력 : 2021/04/19 [11:05]

[씨네리와인드|송상호 리뷰어] '더 파더'(2020)는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강렬한 영화다.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 환자가 나오는 <러블리, 스틸>(2008), <어웨이 프롬 허>(2006) 등의 영화와 <더 파더>는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있다. <더 파더>는 기존 영화들에서 주로 보이던 관찰자 시점에서의 묘사가 아닌 환자 주체의 시점에서 겪는 어려움을 독특하게 그려낸다. 특히 환자가 겪는 극심한 고통과 혼란, 내면의 분열적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이 인상 깊다. 앤서니 홉킨스의 열연, 소재가 주는 묵직한 울림 등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가공하지만, 무엇보다도 서사 구조를 재단하는 접근법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외관상 복잡한 골조에 불편하고 무거운 이야기들이 들러붙은 듯한 독특한 이 영화는 의외로 간명한 목표 지점을 염두에 둔다. 치매 증상을 겪는 사람의 내면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 파더>의 서사 형식 혹은 기묘한 플롯의 연결, 그 속에서 혼돈에 잠식되는 인물을 보고 있으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2000)가 떠오른다. <메멘토>는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남자의 내면을 형상화한 듯한 비순행적 플롯을 통해 관객의 지각 체계에 균열을 가한다. 이때 관객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먼저 복잡한 구조를 음미하며 서사의 인과성에 관해 곱씹을 수 있다. 이건 흔히 말하는 놀란 영화가 품은 지적 유희를 탐닉하는 과정이다. 또한, 소재적인 측면에서 기억의 속성을 다각도로 사유할 수 있다는 점은 더 깊은 감상을 원하는 관객에게 유효하다. 이때 <더 파더>를 과연 <메멘토>의 변주 격인 영화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메멘토>가 '인과'의 플롯 게임이라면, <더 파더>는 '체험'의 플롯 게임이다. 우리는 이 영화의 형식적인 면이 관객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자세히 살펴야 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메멘토>의 복잡한 구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의 기회를 관객에게 마련한다.

 

▲ 영화 '더 파더' 스틸컷  © 판씨네마(주)

 

반복과 변주의 미학

 

<더 파더>는 반복과 변주의 영화다. 중반부의 앤서니, , 그의 남편이 저녁을 먹는 신이 떠오른다. 장인어른을 요양소로 보내자는 남편과 가정부를 고용했으니 지켜보자는 아내 사이의 의견 충돌을 앤서니가 엿듣는 장면이 반복된다. 수용자의 지각 체계에 혼동을 불러오는 이 구간을 두고 누군가는 플롯을 재배열하여 인과관계를 파악하려 들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때 중요한 건 사건 간의 인과성이 아니다. 반복된 제시를 통해 관객이 앤서니가 겪는 혼란에 동화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처음 대화를 엿듣는 신은 앤서니의 시점 쇼트와 더불어 화면 바깥에서 남편과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게 구성되므로 관객은 앤서니의 심리에 이입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대화를 나누는 구간에서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음악이 이전과 동일한 대화 장면과 함께 제시된다. 이후 앤서니를 본 남편의 모습(앤서니의 시점 쇼트)에 이어 당혹감에 찬 앤서니의 모습으로 커트되고,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관객은 앤서니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이는 단순히 시간대의 반복인 타임 루프 구조인가? 그렇지 않다. 분명히 식탁에는 먹다 남은 닭고기가 있다. 그렇다면 선후 관계가 드러나는 이 구간은 앤서니의 병적 증세, , 망상 등이 뒤얽힌 총체이자 그의 뒤틀린 내면 세계가 형상화된 결과물이다.

 

앤서니가 겪는 몇몇 중요한 사건은 반복과 변주를 통해서 입체적으로 관객과 상호작용한다. 앤의 남편이 앤서니를 다그치는 장면을 변주하는 구간이 있다. 먼저 나오는 신과 두 번째로 반복되는 신에서 각각 딸의 남편이 앤서니에게는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처음 신에서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얼마나 여기 오래 계실 거냐는 사위의 핀잔과도 같은 질문을 듣고 허망함에 사로잡힌 앤서니를 비추는데, 이후 더 이상의 대화는 나오지 않고 다른 신으로 넘어간다. 나중에 반복되는 유사한 상황에선 사위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정확히는 배우가 바뀌고), 그 사람이 앤서니에게 이전 상황과 똑같은 질문을 건네는데, 첫째 신에서 생략되었던 대화가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때 사위가 앤서니를 위협하면서 앤서니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죄책감과 불안 등을 끄집어내고 앤서니는 그로 인해 무력감과 극심한 공포를 표출하여 딸이 급하게 달려와 앤서니를 다독여주게 된다. 이 장면의 반복과 변주는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지점들 가운데 하나다. 왜 뛰어난가? 이 반복 구조는 앤서니의 증상과 심리적인 면을 관객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면서도 동시에 앤서니로 인해 고통받는 주변인들의 어려움까지 넓은 층위로 묘사하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반복과 변주의 순간들이 인물의 내면이나 증상을 형상화하는 데에만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극 중 분위기를 환기하는 음악이 반복하여 쓰이고, 앤서니가 문을 열고 나가는 등의 공간을 오가는 방식은 변주되면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앤서니가 창문 밖을 내다보는 행위도 눈에 띈다. 먼저 앤서니는 창문을 통해 딸의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본다. 이후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앤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을 본 뒤 그는 다시 창문 앞에 선다. 노인은 왜 밖을 보는가. 나를 둘러싼 기이한 혼돈, 기억이 뒤엉기는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그런데 창문을 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집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변화들과 다르게 창밖 풍경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이는 곧 앤서니에게 생긴 비정상적인 문제로 인해 그가 주변을 이상하게 인식하게 됐다는 걸 암시하기도 한다. 앤서니는 계속 의심하고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고 의아해하지만, 사실 주변이 아니라 그가 변한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그의 정신과 내면이 요동치는 현상이 만들어낸 병리 증상이다.

 

▲ 영화 '더 파더' 스틸컷  © 판씨네마(주)

 

<더 파더>의 설계가 가닿는 지점

 

쇼트와 쇼트, 신과 신, 시퀀스와 시퀀스 간의 편집부터 서사 내 인물의 행위들, 공간 등의 미장센, 음악의 활용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형식과 내용 요소들이 모두 의도된 반복과 변주를 통해 관객을 끊임없이 교란하고 자극한다. 일방적인 단방향 자극보단 인물과 관객을 매개하는 입체적인 몸부림 혹은 상호작용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메멘토>에 비해 <더 파더>가 더 나아갈 수 있는 지점이 발견된다. 죽음과 고통을 마주하는 실존적 고뇌, 가족의 붕괴, 공간과 심리의 관계 등을 내포한 <더 파더>의 통찰은 영화의 형식적인 면과 아주 섬세하게 호응하면서 관객에게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된다. 이런 전략은 서사 구조의 변형에 치중하여 관객을 매혹하던 <메멘토>보다 훨씬 풍부한 담론을 만들어낸다. <더 파더>가 제시하는 체험의 순간은 어지러운 감정의 파편을 머금은 채 혼돈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만 구축된 건 아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기억을 잃어가며 고통 받는 앤서니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그러한 요소들을 적극 매개함으로써 매력 있는 텍스트로 기능한다. 결말부 앤서니의 눈물 어린 고백과 창밖으로 빠져나가는 마지막 쇼트가 선사하는 감정의 깊이는 이러한 영화의 세밀한 설계를 거쳐 관객에게 강렬하게 각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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