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1)

1화 - 슈베르트의 교향곡은 완성되지 않았다

김준모 | 기사승인 2021/04/20

[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1)

1화 - 슈베르트의 교향곡은 완성되지 않았다

김준모 | 입력 : 2021/04/20 [10:00]

미진이 전화를 받은 건 오후 130. 회의실에서 작품에 대해 상의하던 중이었다. 60대의 상진은 자신의 러브 스토리를 소설로 써서 등단했다. 다음 작품으로 쓸 만한 경험이 없다는 말에 이것저것 이야기로 만들 법한 기억을 상기시켜 주던 미진은 명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명지는 진석의 회사에서 온 전화라고 했다. 보나마나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회식에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꺼내겠지. 택호는 여자를 좋아한다. 그 상대가 유부녀이고 육체적 관계를 맺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여자가 있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그에게 선배의 여자이자 학부시절 짝사랑은 매력적인 대상일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안 왔다고요. ...!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미진의 물음에 택호는 언성을 높였다. 새빨개진 얼굴로 허리에 손을 대고 있을 얼굴이 미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쪽 남편, 일주일째 연락도 없이 잠수 중이라고요. 아니, 무슨 언질이라도 주면 몰라.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니까 그래. 나야 몰랐지! 아무튼 빨리 집에 가서 그 인간 좀 잡아다 줘요. 지금 여기 난리 났다니까.

 

반 년 전이었다. 진석은 마늘보쌈을 사 왔다. 상업영화 프로젝트를 맞게 되었다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춘사영화제에서 상을 하나 받았는데 덕분에 투자자들이 붙었다. 건평 이사도, 인천 감독도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다고 했다. 자기도 울었냐는 말에 진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난 극장에 처음 상영하는 날 울려고. 두고 봐. 엄청 난 걸 보여줄 테니까. 자기 뭐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목록 뽑아놔. 내가 다 사줄게.

 

그랬던 남편이 첫 촬영을 앞두고 돌연 자취를 감췄다. 시작은 대본 리딩 불참이었다. 인천 감독은 부담감 때문에 그런 거 같다며 넘어갔다. 대신 리딩을 담당했다. 다음은 촬영 준비 때였다. 사전 로케이션 시간이 훨씬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스태프들이 연달아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건평 이사는 메시지를 남겨놓으면 나중에 연락을 할 거라며 혼란한 분위기를 잡았다. 촬영 날에만 맞춰 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당일 날 오지 않았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영화공장 대표 택호는 뿔이 단단히 났다. 화가 난 건 택호만이 아니다. 미진은 침대에서 자고 있을 남편의 등짝을 때릴 생각이었다. 당신이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할 예정이었다.

 

-뭐야, 왜 없는 거야.

 

집안 어디에도 진석은 보이지 않는다. 현관에 놓인 건 미진의 단화가 전부다. 남편이 갈 만한 곳에 전부 전화를 걸어봤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관리사무소에 부탁해 CCTV를 확인해 보니 오전 10시 즈음에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찍혔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경찰에 신고한 후 미진의 머릿속에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사채 빚부터 바람까지 아내 몰래 집을 나가는 남편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이 떠올랐다.

 

-저기 저 사람이 남편 분 맞으시죠?

 

진석은 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한 달 동안 저장된다는 CCTV 속 영상을 미진은 경찰과 함께 관리자의 허가 하에 재생한다. 일주일 내내 진석은 이곳을 찾아왔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벤치에 앉아있거나 운동기구를 만지작거리며 공원을 돌아다녔다. 이전에도 몇 번 일이 있다며 나간 날마다 이곳에서 멍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노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남편 분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나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경찰을 쳐다봤지만 머리는 다른 생각으로 차있다. 지난 7편의 영화는 모두 저예산 촬영이었다. 작년에만 4편의 영화를 IPTV로 공개했다. 평론가들에게 심하게 욕을 먹었다. 한 번은 진석과 해물탕집에 갔다 한 평론가 부부와 마주했다. 그 평론가는 식사 중인 미진 옆에 앉아서 진석의 작품이 지닌 문제점을 이것저것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진석은 한 마디에 꽃게 껍질을 주절거리는 입을 향해 던졌다.

 

-작가 출신이면 시나리오라도 좋아야지. 능력이 부족한 거야, 쓰기 귀찮은 거야, 뭐야.

 

평론가는 작품만 평가하면 되는데 사람도 평가한다. 하루하루 평가당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면 미쳐버릴 것이다. 한 작가는 마지막 인사를 위해 미진을 찾아왔다. 사촌과 함께 포도농사를 시작하기로 했다는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으로 더는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술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번만 꺼내도 재미있는 사람이 되잖아요. 인기도 얻고, 환호도 받는데 다들 내 입만 바라보니까 막상 그 자리를 즐기지 못하더라고요. 책이 좋아서 작가가 됐는데, 책을 즐길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리니 즐겁지 않죠, .

 

충전기가 없는 건전지는 에너지를 소비하면 방전된다. 과하게 에너지를 소비한 작가일수록 더 빨리 자취를 감춘다. 그는 처음 미진과 만났을 때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늘어놨다. 쓸 작품이 수두룩하다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마라톤을 단거리 달리기로 착각하더니 쓰러졌다. 코스 안으로 들어온 미진은 그 옆에 쓰러진 남편을 발견했다. 그의 얼굴에는 땀 한 방울 없고 맥박도 안정적이다. 왜 여기 있느냐는 말에 풀린 눈으로 아내를 쳐다본다. 영혼이 지친 사람은 육체를 휘어잡는다. 굽은 등과 쳐진 어깨, 초점 없는 눈동자 등 의지와 다르게 신체가 변한다. 진석은 예외다.

 

-최근에 남편 분과 대화 중 평소와 달랐던 점은 없었나요? 작은 거라도 좋아요.

 

경찰의 질문에 답을 생각하던 미진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근 몇 주 동안 진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말은 항상 진석이 먼저 걸어왔다. 피곤한 날에도 말동무를 해주느라 자정이 넘어 잠이 들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었다는 건 진석이 말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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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4.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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