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에는 조건이 없음을 보여준 나사의 세 여성

Review|'히든 피겨스'(2016)

김혜란 | 기사승인 2021/04/20

평등에는 조건이 없음을 보여준 나사의 세 여성

Review|'히든 피겨스'(2016)

김혜란 | 입력 : 2021/04/20 [12:33]

 

▲ '히든 피겨스'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씨네리와인드|김혜란 리뷰어] <히든 피겨스>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 진출 경쟁이 한창이었던 190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NASA에서 근무한 흑인 여성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의 실화를 유려하게 풀어낸 영화이다. 인종과 성별 그리고 평등이라는 닳고 닳은 주제는 실화의 힘과 매끄러운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과 어우러져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로서 큰 손색이 없이 그려진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조금은 불편한 의문 하나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특출해야만 평등할 수 있는가?’

 

▲ '피든 히겨스'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

 

NASA의 유달리 똑똑한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도 더 특출난 재능을 가진 흑인 여성들이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 성공하는 내용은 관객들에게 쾌감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갑갑한 사회의 편견과 한계를 깨는 주인공 서사는 언제나 통쾌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 이야기가 실화라면 통쾌함은 쉽게 감동으로 전이된다.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을 수도 있다. , 이 영화의 불편한 지점은 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영웅적 서사에서 온다. 마치 너무나도 뛰어난 사람이라면 사회적 차별을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배경이 된 20세기 중반 미국에선 유색 인종 화장실이 있었을 정도로 차별이 당연했다. 그렇기에 평등이 결국 소수자들의 특출남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됐든 21세기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한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했다. 이 영화가 내세운 사회적 차별의 해결책이 '네가 월등히 잘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오늘날 조용히 고착된 차별을 호도하는 사람들 입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잘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과연 평등인가? 그렇지 않다. 유난히 똑똑하고, 유난히 용감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당당한 사람뿐만 아니라, 보통의 지능을 가지고, 조용하고, 소심한 사람에게도 평등은 동등하게 주어져야함이 온당하다.

 

▲ '히든 피겨스'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같은 맥락에서 주인공들이 맞닥뜨린 위기엔 큰 위협감이 없다. 특출한 그들이 어떻게든 문제를 잘 헤쳐나갈 것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루는 극복의 서사는 분명 멋있지만, 비교적 단조롭게 느껴진다. 마치 영웅의 승리를 보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이 보이기도 한다. 쉽게 동경할 수는 있어도 온전히 감정을 이입하고 공감하긴 힘든 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받았던 한 장면은 꼭 언급해야 할듯싶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은 '메리 잭슨'의 재판 장면이다. 그녀는 NASA에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백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부닥치고, 이에 수강 허락을 청원한다. 버지니아 주는 분리 정책을 따르기에 백인 학교에서 흑인이 교육받는 것은 불가하다는 판사에게 그녀는 자신은 NASA에서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될 것이고, 판사님의 재판은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호언한다. '저런 사람이라면 나 같아도 단번에 허락해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결국 그녀는 백인 학교에서 야간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장면은 내심 재판장에서의 호쾌한 명장면을 기대한 필자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줬다. 비록 이 장면에서 느낀 감정 역시도 몰입을 통한 감정적 울림보다는 완전한 제3자의 시선에서 보는 감탄에 더 가까웠지만, 분명 마음이 움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이렇게 영화로서 역사에 남은 실존 인물들의 서사와도 맥을 같이하는 탁월한 장면이다.

 

▲ '히든 피겨스'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오늘날에도 뿌리 깊게 잔재하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할 정도로 영화 속의 불평등 문제는 보기 좋게 다듬어졌다. 의미 있는 실화를 상업적으로 잘 깎아내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깊이 또한 덜어내야 했다. 물론 이 영화의 의미는 단순히 앞서 말한 비판에서 그치진 않는다. 현존하는 무거운 문제를 누구나 쉽게 와닿을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유의미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런 면에서 <히든 피겨스>는 아주 대중적인 화법을 지닌 영화이다. 만약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매끈한 완성도 그리고 불편하지 않은 의미를 한 숟갈 얹은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적격일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영웅 서사보다 사회적 차별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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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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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4.2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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