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Is A Losing Game, 남겨진 사람은 누구인가

왕가위 감독, ‘해피 투게더’(1997)

한지나 | 기사승인 2021/04/21

Love Is A Losing Game, 남겨진 사람은 누구인가

왕가위 감독, ‘해피 투게더’(1997)

한지나 | 입력 : 2021/04/21 [11:15]

▲ '해피투게더' 스틸컷  © (주) 디스테이션

 

[씨네리와인드|한지나 리뷰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게임에 뛰어드는 일이다. 아휘와 보영이 함께 발을 맞추어 탱고를 추듯 사랑은 서로를 끌고 당기며 눈을 맞추고 피하는 게임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부정하고 싶을지라도 그 게임에는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 그 승패의 실루엣은 게임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수없이 뒤바뀌며 게임이 끝난 후에 승패가 뒤집히기도 한다. 이 게임은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를 매 순간 저울로 재 겨루듯 내내 기울었다가도 한순간에 고개를 드는 형태로 진행된다. 

 

 영화 해피투게더속 게임의 패자는 명백히 아휘인 듯 보인다. 아휘는 굳게 마음을 먹고 보영을 뒤로 하다가도 우리 다시 시작하자.”라는 보영의 말 한마디면 단번에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명확하게 이 게임의 끝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휘는 목적이라고는 보영밖에 없는 땅인 아르헨티나를 떠나지 못했고 보영과의 재회를 상징하는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전등을 버리지 않고 간직했다. 그 때문에 보영과의 게임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아휘는 다시 만난 보영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를 쓴다. 그러나 피범벅이 된 채 자신에게 안겨 오는 보영을 마주했을 때 아휘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를 끌어안는 일 뿐이다. 같이 자자고 엉겨 붙는 보영의 팔을 밀어내다가도 아프다는 보영의 말 한마디면 자신의 몸을 감싼 보영의 팔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는 사람이 아휘다. 아휘는 그런 사람이다. 아휘에게 보영은 자신을 휘감은 채 자라나는 끊어낼 수 없는 가시넝쿨이다.

 

▲ '해피투게더' 스틸컷  © (주) 디스테이션

 

 

그의 손이 빨리 낫지 않기를 바랐다. 아픈 그와 있을 때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제목과는 역설적이게도 아휘와 보영은 함께해서는 행복할 수 없다. 그들은 같은 곳을 바라보지 못한다. 오직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그들은 잠들어 있는 상대를 바라보는 일로 사랑을 표한다. 잠든 상대를 눈에 담아 사랑을 간직하지만, 서로를 바라만 볼 뿐 각자의 평행선을 걸어간다. 그들의 사랑은 아픈 상대를 간호하며 상대를 자신 안에 가두었을 때 비로소 안정감을 찾는다. 누군가를 가두어야 사랑할 수 있는 관계. 때문에 둘은 끝끝내 이과수 폭포에 함께할 수 없었다. 서로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만으로는 함께할 수도 사랑을 완성할 수도 없다.

 

 근본적으로 아휘는 고독을 감추는 데 익숙한 사람, 보영은 고독을 표출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다. 아휘는 보영으로만 채워지는 자신의 고독은 인정하지 못하고 보영을 제 앞에 가두는 데 혈안 되어 있다. 반대로 보영은 자신의 고독을 가득 채우는 데 급급해 눈앞의 아휘를 살피지 못한다. 결국 아휘는 비뚤어진 모양새로 고독을 숨기고 보영은 아휘로 가득 채워진 고독이 갑갑해져 그를 떠난다. 또다시 멋대로 돌아와 멋대로 떠나는 보영과 남겨진 아휘. 이로써 이 게임의 승자는 보영, 패자는 아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게임이 다 끝난 듯 보일 때에 게임의 저울은 다시 반대편으로 기운다. 바로 아휘의 성장과 보영의 머무름을 통해서. 먼저 아휘는 부둥켜안고 몸을 부벼도 이해할 수 없던 보영을 곁에서 보낸 후에야 마침내 그를 이해하게 된다.

 

늘 그는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고독해지면 결국 똑같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수치심도 없이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려 들고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보영을 보영이 고독을 끌어안는 방식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아휘는 아휘와 보영, 둘의 이상이자 꿈이었던 이과수 폭포에 홀로 당도했다. 함께해서는 결코 그 폭포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과수 폭포가 그려진 전등을 남겨둔 채로 보영을 위한 보영에 의한 땅이었던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를 떠난다. 어쩌면 정말 아휘의 실연을 담은 장의 녹음기를 세상의 끝에 묻음으로써 보영 또한 묻을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 '해피투게더' 스틸컷  © (주) 디스테이션

 

 이와 대조적으로 보영은 아휘와의 장소에 홀로 남겨졌다. 이제 게임의 저울 위에는 보영만이 남겨졌다. 그는 여전히 아휘와 함께 당도할 이과수 폭포를 상상한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전등을 고치고 전등을 바라보며 돌아올 아휘를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의 아휘가 그랬던 것처럼 혹여나 담배를 사러 나가는 그 찰나의 순간 아휘가 돌아올까 담배를 양껏 사 와 쌓아 올린다. 보영은 이제 더는 채워지지 않는 고독을 마주한 채로 아휘와의 공간에서 그의 온기가 남겨진 이불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그 흐느낌의 끝에서 보영도 아휘를 아휘가 고독을 끌어안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까.홍콩에서 시작된 이 게임의 본무대는 아르헨티나였다. 정반대의 땅, 부에노 아이레스에서 아휘와 보영은 사랑하고 몸을 부대끼고 상처 주고 피흘리며 서로를 진하게 물들였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땅 아래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제 이 게임의 패자는 남겨진 자는 누구인가. 함께하던 그 당시의 사랑의 무게는 눈에 보일지라도 그 사랑의 총량은 모르는 일이다. 결국 보영을 이겨내고 일어선 자는 아휘, 혼자 남겨져 아휘를 그리는 자는 보영이 아니던가.

 

 그러나 함께 나눠 낀 귀걸이를 여전히 귀에 붙이고 있는 둘의 모습에서 이 사랑의 결말은 모호해진다. 아휘는 이제야 보영과의 게임의 끝을 보았다. , 이제야 이들은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로 새로운 게임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화 내내 그들을 물들이는 것 중 하나는 탱고. 영화는 탱고와 함께 흘러간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탱고 음악이 사용되고 아휘는 탱고바의 직원이며 보영은 아휘에게 탱고를 가르친다. 탱고의 기원이 되는 명칭은 바일리 꼰 꼬르떼(baile con corte)’, ’멈추지 않는 춤‘.이다. 탱고는 멈추지 않는 춤으로 만남의 장소로 사람을 이끄는 음악이다. 때문에 탱고가 이 영화의 테마로 사용되는 것이 단지 미학적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춤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그들을 재회의 장소로 이끌지 모른다. 그들은 다시 한번 서로에게 자신을 맡기고 스텝을 밟으며 게임의 저울 위에 올라설 수 있을까. 아휘와 보영은 끝내 길게 늘어진 채로 이과수 폭포 앞에서 당도할 수 있을까.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한지나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cinerewind@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1.04.21 [11:15]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