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2)

2화 - 고흐가 자화상을 그릴 때

김준모 | 기사승인 2021/04/26

[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2)

2화 - 고흐가 자화상을 그릴 때

김준모 | 입력 : 2021/04/26 [10:08]

-오늘 촬영이라며. 왜 안 간 거야?

-몸이 안 좋았어.

-무슨 몸이 일주일 동안 안 좋아? 병원은? 가 봤어?

-좀 쉬면 나아지겠지.

-나아지긴 뭘 나아져. 당신 진짜 아픈 건 맞아?

-나 피곤해서 자야겠다. 미안.

 

하루 종일 공원에만 있던 사람이 뭐가 피곤해. 소리를 지르려던 미진을 멈추게 만든 건, 문을 잠그는 소리였다. 손잡이를 돌리고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 하트모양 방문걸이에 적힌 노는 중이란 글자가 어색하게 다가왔다. 숨을 고른 미진은 연달아 전화를 걸었다. 진석을 궁금해 하고 있을 택호, 건평, 인천과 자신을 궁금해 할 은실, 명지에게.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만 기분이다.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작은 동작에도 버릇이란 이유가 붙는다. CCTV에서 본 진석의 행동은 암호다. 풀기 힘든 수수께끼를 지닌 흥미요소이자 결말의 복선이 되는 힌트다. 그 궁금증에 빠진 미진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바로 옆방에 작가가 있는데 물어볼 수 없다. 묵언수행을 이유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불교에 귀의한 것도 아니면서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 동자승 같은 표정이었다.

 

-원래 남자란 게 그런 거야. 스트레스만 받았다 하면 일탈한다니까. 어쩌겠어, 그렇게 설계된 동물인 걸.

 

출판사 대표 은실은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결혼 7년차가 보기에 4년차인 미진 부부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거처럼 보인다.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연령이 4살은 느리다고 하잖아요. 남편 분 취업도 늦게 했으니까 남들보다 더 느릴 수도 있는 거죠.

 

말투부터 묘하게 기분이 나쁜 명지지만 부인할 수 없다. 30대가 되어서야 처음 취업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취업도 아니지. 명문대를 나와서 작가가 되겠다고 20대를 펑펑 보냈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글만 썼다. 주변에 취업한 친구들한테 밥을 얻어먹고, 여행에 껴 다니고. 한 번은 친구가 시계를 사고 받은 상품권 20만원 어치를 반으로 나누자고 했다고 한다.

 

-나 참, 작가라는 사람이 존심도 없나.

 

?’ 본승의 논란 표정에 미진은 또 머리를 흔든다. 30대 중반의 남자는 대기업을 다니다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이유로 교육대학원을 향해 교사가 되었다. 교사 일을 하던 중 쓴 첫 번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업 작가의 길을 택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한 거 같아요. 누구는 한 가지 일만 잘하기도 힘든데, 누구는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말이죠.

-편집장님도 대단하세요. 모르는 분야가 없잖아요. 제가 듣기로는 여기 출판사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이 나오는 것도 다 편집장님 덕분이라고 하던데요.

-아니, 제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럼 누구...

 

미진은 볼펜으로 책상을 치며 다시 본승과 책 속으로 들어간다. 밤늦게까지 하얀 노트북 화면을 까맣게 칠하던 남편이 이제야 아침 해를 봤는데 스스로 동굴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진석을 달랬다. 레고고 게임CD고 사달라는 건 다 사줄 테니 제발 촬영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가라고 말했다.

 

-미안해.

 

진석의 힘없는 한 마디가 계속 귓가를 맴돈다. 뭐가 그리 미안한데. 질문에도 진석은 답하지 않았다. 계속 놀기만 할 거냐는 미진의 성화에 진석은 애니메이션 구슬동자노래를 틀고 춤을 추며 노래했다.

 

맨날 노는 것처럼 보여~ 때가 되면 뭔가를 보여준다고 / 장난치는 것처럼 보여~ 난 언제나 세상을 신나게 살아 / 질때도 있지~ 울때도 있어 / 아무렴 뭐 어때 아무렴 뭐 어때 / 나만 좋으면 그만이잖아! 맞아! 예에~’

 

엉덩이를 흔들며 만세를 부르던 그 모습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제발 당신만 좋았던 때로 돌아가라고. 미진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면하듯 명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또 택호다. 전보다 더 열이 오른 목소리다.

 

-어머 진짜,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을 다 겪어 봐. 그쪽 남편 분,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내가 돈벌레래. 돈 때문에 자기를 괴롭히는 거래. 내가 나 좋자고 이래? 자기가 하고 싶다고 그런 거잖아. 그래요, 안 그래요? 안 그러냐고!

 

건평과 인천, 택호가 모인 미팅 자리에서 진석은 프로젝트 포기 의사를 밝혔다. 회유와 협박이 오고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지친다며 먼저 자리를 뜬 건 진석이었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스태프들을 외면한 채 택시를 타고 떠나버렸다고 한다. 어제처럼 미진은 출판사를 나와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집 대신에 공원을 댔다. 예상대로 남편은 벤치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나무를 쳐다보고 있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청설모 보고 있어.

 

진석의 손가락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못생긴 다람쥐를 가리킨다.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프로젝트 안 하기로 했다면서. 당신이 그러면 회사 사람들이 곤란해지는 거 몰라?

-인천 감독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시나리오도 다 있는데 뭐가 문제야.

-당신 보고 투자한 거잖아! 진짜 몰라서 이러는 거야, 뭐야. 당신 어린 애 아니야. 일을 벌였으면 책임을 져야지. 회사 사람들이 알아서 수습해주길 바라는 거야, 지금? 당신 어른이야. 어른이면 싫은 일도 해야 된다고.

-근데 미진아, 나 진짜 못하겠다. 미안하다, 정말.

 

남편의 떨리는 목소리에 미진은 주저앉고 싶은 자신을 느낀다. 또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8년 동안 들어본 적 없는 그 말을 진석은 계속 내뱉고 있다.

 

-당신 게으른 사람이잖아. 나약한 사람 아니잖아. 왜 이래.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주말이 지나고 영화공장은 촬영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투자자들에게는 진석이 건강상의 이유로 촬영이 힘들다며 둘러댔다. 미진은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학창시절 수능 스트레스 이후 오랜만이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마치더니 상투적인 어조로 말했다.

 

-우울증이네요.

 

책상을 딱딱 치는 볼펜소리가 판사의 판결처럼 다가왔다.

 

 

보도자료 및 제보cinerewind@cinerewind.com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Read More

  • Posted 2021.04.26 [10:08]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