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한 테일러 쉐리던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과 감독의 이전 대표작들

이성현 | 기사승인 2021/05/05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한 테일러 쉐리던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과 감독의 이전 대표작들

이성현 | 입력 : 2021/05/05 [12:00]

[씨네리와인드|이성현 리뷰어] 현재 세계 영화계에서 각본가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 인물로는 봉준호 감독과 둘째가라면 서러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특유의 쏟아지는 대사로 적당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애런 소킨 감독과 아이러니한 이란 사회의 모습을 꼬집어 호평을 받은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도 생각난다. 오늘은 신작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로 돌아온 테일러 쉐리던 감독을 다뤄보려 한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로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천천히 숨을 조여오는 현장에서 날카로운 한 마디를 넌지시 던지는 스타일로 새롭게 떠오른다. 이번 신작은 그간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총과 피로 관객들을 압박하는 건 여전하다. 주연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뿔을 떼어내고 오랜만에 격렬하게 싸운다. 쉐리던 감독의 대표작들과 함께 이번 신작은 어떤 점을 주목해 봐야 할지 알아보도록 하자.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미국이 마약을 지배하는 방식

 

사상 최악의 멕시코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미 국경 무법지대에 모인 FBI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CIA 소속의 총 책임자 맷(조쉬 브롤린), 그리고 작전의 컨설턴트로 투입된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극한 상황 속, 세 명의 요원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 숨막히는 마지막 장면.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프리즈너스>(2013)로 성공적인 미국 시장 데뷔에 성공한 드니 빌뇌브 감독이 쉐리던과 손을 잡고 기존에 강점이 있던 스릴러와 함께 전쟁과 범죄 장르를 버무린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러닝타임 내내 지속하는 긴장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무엇보다도 각본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간 누구도 쉽게 이야기하기 꺼렸던 미국 정부와 마약 간의 관계를 비튼다. 마약을 소탕해서 정의를 수호하는 게 아닌 마약을 이용해 타국을 지배하는. 자국 범죄의 태풍의 눈이라고 할 수 있는 마약을 가지고도 멕시코와 콜롬비아 등의 남미 국가를 통제하는 모습은 치밀하게 느껴질 정도다. 세 주인공 케이트, , 알레한드로는 각각 대중, 미정부, 그리고 끊을 수 없는 마약이라는 족쇄를 대변한다. 특히 영화는 케이트의 시선에서 알레한드로의 행적에 주목한다. 계속해서 수상한 행동을 펼치지만, 정체를 알 수 없고 맷은 가리기에만 급급하다. 마침내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케이트는 이미 잠식당해 빠져나오지 못한다. 후반부 모텔에서 알레한드로와 케이트의 대화 장면이 백미이다. 생사가 오가는 서늘함 속에서 칼자루를 쥐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로스트 인 더스트>(2016)- 가난이 만들어내는 삶의 아이러니함

 

빚더미에 시달리던 형제,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벤 포스터).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의 소유권마저 은행 차압위기에 놓인다. 절망적인 현실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연쇄 은행 강도 계획을 꾸미는 형제. 동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는 전과자 출신의 형 태너와 차분하고 이성적인 성격의 동생 토비는 범죄에 성공한다. 한편, 연달아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을 수사하던 베테랑 형사 해밀턴(제프 브리지스)은 치밀한 범죄 수법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수사망을 좁혀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 이 형제들은 분명히 잘못이 있다. <로스트 인 더스트>(2016) 스틸컷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시카리오>와 비교했을 때 규모가 작아졌다. 그리고 주제는 명확해졌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돈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를 그리고 돈이 없는 자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고 말한다. 신용불량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범죄자를 택하는 형제들의 모습은 모순 그 자체이다. 합리화라도 하려는 듯이 어설프게 은행을 터는 모습도 뭔가 어색하다. 해밀턴과의 추격 장면에서는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형제들의 편에 서서 응원하도록 만든다. 영화라는 사실을 떼어내고 바라보면 은행강도단과 이를 막는 보안관의 싸움인데 말이다. 마지막 해밀턴과 토비의 대화 장면은 이 모든 갈등이 가난에서 비롯됨을 알려준다. 나는 이미 가난을 경험해 봤기에 자식에게만큼은 물려줄 수 없다고, 사람을 죽여서라도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고. 금방이라도 총성이 울릴 것만 같은 고요함은 덤이다.

 

앞선 두 작품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서늘한 분위기와 이 안에 서서히 스며드는 메시지이다. 전개와 편집은 빠르지 않지만, 차곡차곡 쌓인 스토리와 배경, 인물들의 감정이 중첩되어 느리게, 그리고 예리하게 뇌리에 꽂힌다. 꽂힌 메시지는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곱씹어보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 개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로 한 테일러 쉐리던 감독.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2021)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쉐리던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있어서 이전 두 작품에 비해 그 결이 다르다기존에는 사회에 나도 모르게 침투하여 부패해 있는 악함에 대해 묘사했다면,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개인의 속마음을 탐구한다두 주인공 한나와 코너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트라우마는 끊임없이이들의 가슴을 쿡쿡 찌른다또 다른 점은 메시지를 귀결 짓는 방식에 있다본 작품에서는 정반대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긍정적인 바이브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중반부까지 유지하던 약간의 공포감과 어두움이후반부로 갈수록 옅어지고 결말에는 트라우마와 함께 완전히 해소된다오히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한나와코너의 유대감이 깊어지고 서로를 치유해 주기까지 한다유대감치유와 같은 키워드들은 쉐리던 감독에게있어 생소하기까지 하다이 측면에서 기대하던 부분이 나오지 않고 특징이 없다는 비판을 들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그렇기에 감독의 이름을 보고 이작품을 보러 간다면 감독이 새로운 전개를 시도하고 알던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옴을 유념하고 관람하는 걸 추천한다.

 

영화 외적으로 봤을 때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우선 안젤리나 졸리가 <솔트>(2010)와 <투어리스트>(2010) 이후로 10년 만에 내놓는 액션물이다. 액션이 주 장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불길을 헤쳐내고 짧은 시간이라도 보여주는 몸싸움에서 액션 퀸이라 불리던 과거가 떠오르기도 한다.

 

주요 소재로 사용되는 산불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CG가 아닌 실제 숲을 조성한 다음 불을 질러 화면에 담아낸 결과다. 극장에서 관람 시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한 압도감을 줄 것이다. 실제 내용상으로도 해나와 코너에게 산불은 공포 그 자체를 상징하여 서로에게 하여금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는 등 비중 있는 장치로 사용된다.

 

정리하자면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필모그래피와는 다소 다른 색을 띤다. 사회를 비판하기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고 날카로운 메시지가 아닌 치유와 연대, 극복이라는 긍정적인 말을 전한다. 안젤리나 졸리의 액션과 거대한 산불 등 볼거리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기대를 충족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극장이 침체기를 겪는 상황에서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람하기를 추천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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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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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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