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과 타락천사: 왕가위가 만든 작은 세계

왕가위, '중경삼림'(1994)과 '타락천사'(1995)

고부경 | 기사승인 2021/05/07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왕가위가 만든 작은 세계

왕가위, '중경삼림'(1994)과 '타락천사'(1995)

고부경 | 입력 : 2021/05/07 [10:00]

[씨네리와인드|고부경 리뷰어] 러닝타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감독 왕가위는 영화를 두 개로 나누어 개봉했다. 그렇게 영화 "중겸삼림"이 개봉한 지 약 3개월 뒤, 원래는 중경삼림의 3번째 에피소드가 될 예정이었던 영화 "타락천사" 또한 개봉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영화는 같이 관람했을 때의 그 감상과 재미가 깊은 작품이다. 

 

▲ 영화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중경삼림과 왕가위 영화 속 음악

 

샌드위치 가게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은 채 리듬에 맞춰 집게를 들고 춤을 추는 페이(왕페이)의 모습은 중경삼림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깔리는 음악은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 이라는 곡이다.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위해, 혹은 그 영화만의 여운을 오래 남기기 위해 직접 작곡을 새로 하거나, 다른 영화에 잘 사용되지 않은 곡을 선정하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이 곡은 영화 제작 전부터 이미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던 곡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이후 이 영화의 시그니처 곡들 중 하나로써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 중경삼림을 떠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만큼 많은 관객들에게 이 영화, 그리고 그 장면이 큰 임팩트를 남겼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영화를 봤을 땐, 왕페이가 직접 부른 몽중인이 귀에 들어왔다. 한 영화를 여러 번 본다는 것의 묘미는 이런데에 있는 것 같다. 지난번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크게 다가오는 것은 내가 영화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어 준다. 영화 속에서 이 음악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페이가 블랙커피를 마시며 서있는 경찰663(양조위)를 지그시 바라보는 장면, 그의 집에서 전 여자 친구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가는 모습 등에서 영화 특유의 설레는 분위기를 몽중인은 두 배로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타락천사에선 더 노골적인 음악의 사용이 느껴진다. 영화 속 '1818' 이라는 고유번호를 가진 노래 '忘記他'는 인물들의 관계, 감정까지 전달하는 직접적인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무(금성무)가 카메라에 담긴 아버지의 모습을 혼자 돌려보면서 흐르는 음악 思幕的人은 내가 가사를 알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노래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렇게나 감정을 뚜렷하게 전달하는 영화 ost가 또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락천사의 엔딩크레딧 또한 인상 깊은데, 그 이유 역시 음악에 있다. The Flying Pickets의 Only you라는 곡인데, 좌우를 번갈아 나오는 독특한 사운드가 영화관에 울릴 때 나는 영화의 전체 장면이 다시 한번 눈 앞을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음악을 연달아 듣는 것만으로 영화 전체를 다시 본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것, 왕가위 영화의 음악엔 그런 특별한 마법이 있다. 

 

타락천사와 왕가위의 미장센

 

타락천사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미장센의 극치라고 불릴 만큼 감독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기술적으로 보자면 작품에 자주 쓰였던 핸드헬드 기법으로 인한 흔들리는 장면들을 통해 중국으로 반환되기 직전의 홍콩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잘 담아낸 것 같은 작품이었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도 갈 수 없는 곳에 대한 향수를 남긴 인상적인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우울과 아픔, 고독이 중국 반환을 앞두고 있는 홍콩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도 중경삼림에 등장하는 마약 밀매 중계자(임청하)의 금발 가발, 경찰663 그리고 홍콩을 떠나버린 스튜어디스 여자 친구(주가령)를 통해서 영국과 홍콩, 그리고 중국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영국령 홍콩은 2021년인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왕가위의 영화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영화에 많이 쓰인 스텝 프린팅 연출에서 영상과 소리가 평행하게 흘러가지 않는 장면이 많았다. 내가 지금껏 접해왔던 일반적인 영상물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 덕분에 나의 시각과 청각을 분리해서 그 모두를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아마 감독의 풍성한 미장센 덕분에 눈과 귀가 모두 쉴 틈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중경삼림에서 페이가 경찰663을 사랑에 빠진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스텝 프린팅 연출로 보여주었는데, 이 장면에서 내는 내가 마치 페이가 되어 양조위를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크린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나갔고 그러면서 양조위의 모습을 가리기도 했지만 나는 페이와 같은 표정으로 양조위만을 뚫게지게 보았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모습을 통해 스텝 프린팅 연출이 페이의 마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음을 직접 깨달을 수 있었다. 타락천사 속 킬러 황지민(여명)의 대사 "이 일의 장점은 모든 결정을 내가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죽일 사람, 시간과 장소는 이미 결정되어있다."를 처음 듣는 순간, 이 인물의 운명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대사 속에 담긴 앞으로의 암시는 지금으로선 너무 읽기 쉬운 미장센이지만, 그것마저 아름답게 느껴진은 것은 아마도 홍콩의 낭만적이면서도 위험한 90년대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중경삼림과 타락천사가 지독한 미장센의 나열일 뿐이라며 불친절한 스토리를 지적하고, 너무 높이 평가된 영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들이 가진 의미를 왕가위의 미장센을 통해 조금 더 깊이 느끼며 그들과는 다른 생각을 한다. 9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 그리고 영국령 홍콩이라는 공간적 배경이 아니고선 세상 그 언제 어디서도 만들거나 흉내낼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는 나에게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리워질 때 마다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표현하고 싶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의 유기성

 

5월 1일. 중경삼림 속 경찰223인 하지무(금성무)가 먹는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이고, 타락천사 속 수감번호 233인 하지무(금성무)가 실어증이 걸리게 된 이유인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이기도 하다. 이 한 문장 속에서도 이미 두 영화의 얽힌 정도가 직관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두 영화는 원래 한 작품으로 구상되었고, 그 때문인진 몰라도 비슷한 맥락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이 때문에 기시감이 들고 나는 중경삼림을 먼저 보고 타락천사를 본 터라 타락천사를 보면서 맥도날드, 페이가 일하는 패스트푸드 가게 등이 등장했을 땐 괜히 반갑기까지 했다.

 

킬러 지민과 그의 집을 청소하는 파트너(이가흔)는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결국 파트너의 함정에 빠져 킬러는 죽음을 맞는다. 경찰 663과 그의 집을 청소하는 페이는 영화의 끝에서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웃는다. 퇴폐적이고 암울한 분위기를 강조한 타락천사에서는 주인공들의 감정이 위태롭고 끝내 해소되지 않는 결말을 가져간다. 그에 비해 중경삼림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훨씬 밝고 설레는 주인공들의 표정과 감정선, 그리고 결말을 갖고 있다. 킬러의 방을 청소하는 파트너의 모습에서 나는 기계적인 모습과 날카로움이 도드라진다고 생각했는데, 경찰 663의 방을 청소하는 페이의 모습은 대담하면서도 느긋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사실 중경삼림에서 경찰633의 방은 사실 그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 여자 친구의 흔적이 가득했던 그의 마음에 페이가 몰래 들어와 조금씩, 하지만 아주 과감하게 장악해나가는 과정을 너무 귀엽게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락천사의 찰리(양채니)가 스튜어디스가 된 후 들린 패스트푸드점에는 하지무가 있었고, 중경삼림의 페이가 스튜어디스가 되어 돌아온 패스트푸드점엔 경찰663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 속 찰리는 한결같이 하지무를 기억하지 못한다. 의도가 있었는진 알 수 없지만 결국에는 이뤄지지 않는 그들의 관계, 그리고 계속해서 괴짜같이 장사를 하던 하지무가 실연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았다. 사랑했던 찰리에게 실연을 당하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후 공허함을 느끼던 하지무와 극 중 가장 연관이 적었던 킬러의 파트너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장면에서야 영화는 처음으로 동이 트는 밝은 시간대를 보여주는데, 이때 금성무의 대사를 들으며 타락천사와 중경삼림을 매개하는 또 다른 하나의 요소가 사람의 관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가고 그중 누군가는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중경삼림에서 페이와 경찰 233은 서로 부딪치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로 남는다. 반면 경찰 233과 가장 가까웠던 거리가 0.01cm 였던 마약밀매 중계자는 그의 706호 친구가 되어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두 작품 간의 독특한 연결고리는 몇 번 영화를 보면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고 이것들을 발견하는 것 또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 중 하나일 것이다. 결코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어딘가 모르게 계속 연결되어있고 얽혀있고, 또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기도 하다. 홍콩의 혼란함을 표현하는 왕가위의 의도가 숨어있었겠지만, 우리의 인생이란 결국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복잡하게 맺어져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4K 리마스터링, 왕가위 감독 특별전, 그리고 후속작

 

지난 2월부터 왕가위 감독 특별전이 전국의 영화관에서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같은 날 타락천사와 중경삼림을 연달아 관람했다. 지금까지 왕가위 감독의 필모를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없었음에 아쉬웠는데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볼 수 있어서 설레는 기분으로 영화관을 찾았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는 것조차 아쉬워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재개봉을 보러 온 많은 관객들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한 왓챠에서 독점적으로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포함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리마스터링 버전을 17일 공개하기도 했다. 나는 두 영화 외에도 해피투게더와 화양연화 등을 왓챠로 다시 보기도 했는데, 이 감독이 만들어내는 작은 세계 속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너무 즐거웠다. 왕가위 감독이 만든 이 세계는 또 한 번 변모를 시도한다는 소식이 있다. 2036년 충칭을 배경으로 하는 중경삼림의 후속작이 제작 예정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나온 일정이나 추가적인 정보는 없지만, 단 한 마디로 나를 설레게 만들어준 소식이었다. 전작의 배경과는 달리 중국 본토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지가 기대된다. 

 

'다신 갈 수 없는' 홍콩의 낮과 밤을 영화 속에 꽉꽉 채워 넣어준 왕가위 감독에게 너무 감사하다. 영화라는 매체가 전달하는 것은 결코 단지 스크린 속의 영상과 소리뿐만이 아니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 두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과 공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받았다. 매체로서의 영화의 힘이라는 것은 나의 생각보다 견고하고 또 커다란 것임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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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경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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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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