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3)

3화 - 벚꽃은 봄보다 빨리 진다

김준모 | 기사승인 2021/05/12

[단편/소설] 김진석이 우울증에 걸렸대(3)

3화 - 벚꽃은 봄보다 빨리 진다

김준모 | 입력 : 2021/05/12 [10:00]

명지의 목소리가 다시 미진을 부른 건 상진이 두 번째로 출판사를 찾아왔을 때였다. 감자와 고구마를 쪄 온 신인작가는 캐릭터 구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고백했다. 조언대로 타인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해봤지만 글에 담기는 건 자신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면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줄 알았는데 편협한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며 푸념을 내뱉었다. 서른만 넘어가도 친구가 없어진다는 말을 시작하려는 찰나 편집장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번에는 정신과 의사 혜진이다. 진석이 진료를 다 취소했다며 보호자와 상의한 것인지 물었다. 매번 받지 않는 스마트폰을 대신해 택시를 탔다. 이번에는 머리를 굴렸는지 공원이 아닌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발견됐다. 그네에 앉은 진석은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여기서 뭐, 아니지. 그네를 타고 있는 거지. 왜 여기서 그네를 타고 있는 거야. 지금 상담 받으러 갈 시간이잖아.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고민에 공감해줄 거 같아서. 입바른 동정보다 순수한 직선이 더 듣기 좋잖아.

-제발 말 좀 들어. 당신 때문에 이게 몇 번째야. 나 지금까지 회의만 세 번은 허탕치고 나왔어. 나 만난다고 기다린 사람들 내가 돌려보냈다고. 나까지 망가뜨리려고 그러는 거야?

-, 핸드폰이 묵음으로 되어 있었구나. 앞으로는 잘 받을 게, 미안.

 

그날 이후 미진은 점심시간마다 진석을 데리고 병원을 향했다. 점심은 샌드위치나 햄버거, 과자로 때웠다. 집에 오면 남편은 방문을 굳게 잠갔다. 일부러 TV 앞에서 식사를 했다. 예능을 틀어놓고 크게 웃었다. 공원에 나가 달리고 또 달렸다. 온몸의 수분이 빠져 푹 잠이 들 수 있도록. 그래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릴 슬픈 생각을 하지 않도록.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를 만나 환자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내용과 함께 정신적인 문제는 과거에서 왔을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떤 자료는 한 개인의 모습 중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건 빙산의 일각이며 수면 아래에는 더 많은 모습이 감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몇 개의 자료를 더 찾아본 미진은 8년 동안 겪은 진석의 모습을 모두 말할 각오로 진료실 문을 두드렸다. 진석의 상담 내용을 훑어보던 혜진은 준비했던 질문을 내뱉었다.

 

-남편 분이랑 나이 차이가 꽤 있더라고요. 대학교 때 만났다고 들었는데 계기가 있었나요?

-오빠가 휴학을 오래했어요. 군 제대 후에 작가가 된다고 준비하다가 실패해서 학업이라도 빨리 끝내자는 마음으로 돌아왔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대화는 많이 하세요? 주로 무슨 대화 나누세요?

-오빠가 말이 많아요. 별명이 편의점이거든요. 24시간 쉬지 않고 말한다고 해서요. , 그날 뉴스기사 보고 말할 때도 있고, 영화나 책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여기 오고 난 이후부터는 말이 없어졌지만요.

-듣기로는 남편 분이 갑자기 직장에 나가지 않았다고 하던데. 그 시점 즈음에 무슨 일이 있진 않았나요?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글쎄요, 전혀 없었어요. 적어도 제 기억에서는요. 그런데 왜 자꾸 이런 걸 질문주시는 거죠? 첫날 이야기 드렸듯이 남편은 새 영화 작업에 들어가면서...

-제가 보기에는 가족 문제에 더 가까워 보여요. 남편 분은 영화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완전 손을 놓아버렸거든요.

 

눈 내리는 날의 흰나비처럼 진석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꿈은 마음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행동은 가족에 얽매여있는 거처럼 보인다고 의사는 말했다. 부담이 심하면 멀리 도망을 쳤을 것이다. 술을 마시거나,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일탈이라 부를 법한 행동에 열을 올리는 게 예상된 반응임에도 집 근처 공원을 어슬렁거렸다. 혜진은 이 행동에 대해 가정 내의 불만이라 했다. 그 불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집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 거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라 부를 만한 순간이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던 미진은 한 서랍장에서 손을 멈춘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났을 무렵, 진석은 영화공장에 합류했다. 이제 안정된 소속을 얻었다며 축하파티를 열어준 미진은 2세 계획을 말했다.

 

-첫째는 딸보다 아들이 좋을 거 같아. 든든한 오빠가 있어야 동생들을 지켜줄 거 같거든. 우리 적어도 두 명은 가지자.

-애보다 개 키우는 걸 추천할게. 우리 둘이 행복하면 그만이지, 애까지 셋은 너무 버겁다. 요즘 TV에서 보니까 포메라니안 귀엽던데, 어때?

-왜에~ 난 낳고 싶은데. 오빠는 싫어? 오빠 닮은 아들 낳으면 좋아할 거면서, 그치?

-내가 강아지 상이잖아. 나 닮은 강아지는 어때? 침대에 내 얼굴이 두 개 누워있으면 더 좋을 거 같지 않아?

-저기,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거든. 난 아이 낳고 싶어. 자기랑 나 닮은 아이 낳아서 행복을 주고 싶다고.

-아이가 있으면, 뭐가 달라져?

 

무슨 의미였을까. 슬픈 눈에 냉소적인 목소리는 미진의 기억 속 진석과 달랐다.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뭐라고 말한 거지? 기억을 더듬던 머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를 밟는다.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을 무시한 미진 앞에는 유리창 너머로 삿대질을 하는 나이든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김준모
씨네리와인드 미디어본부 기획취재부
rlqpsfkxm@cinerewi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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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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