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기사회생이라 불릴 만하다

<스파이럴>이 보여준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

이성현 | 기사승인 2021/05/13

이 정도면 기사회생이라 불릴 만하다

<스파이럴>이 보여준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

이성현 | 입력 : 2021/05/13 [12:25]

[씨네리와인드|이성현 리뷰어] 마조히즘이라는 단어가 있다. 성적으로 학대당하는 것을 즐긴다는 뜻이다. 비단 성을 벗어나더라도 고통을 좋아하고 즐기는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서 고통스럽지만,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경우, 겨울에 찬물 샤워를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경우가 그러하다. 영화에서도 그렇다. 우울하거나 사지가 찢겨나가는 듯 잔인한 고어 영화만 골라서 보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죽을 만큼 축 처지고 기운 빠지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 필모그래피를 정주행하는 팬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쏘우> 시리즈다. 1, 2편을 제외하곤 내내 혹평에 혹평을 거듭하지만 독특한 세계관과 시리즈의 정체성인 트랩에 매료되어 평이 어떻든 의리로 극장을 찾아주는 콘크리트 팬층이 존재한다. 물론 나도 이에 속한다. 오늘은 <직쏘>(2017) 이후로 약 4년 만에 스핀오프로 돌아온 <스파이럴>(2021)을 보고 느낀 점을 적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볼 만하다! 시리즈 중 1, 2편 다음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시리즈를 벗어나서 이야기하더라도 타 작품에 결코 밀릴 정도는 아니다. 일단 기존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상당히 많다. 우선 특유의 B급 정서가 많이 사라졌다. 물리적인 제작비부터 차이가 크다. 바로 전편 <직쏘>와 비교하더라도 2배가 늘어났다. 눈에 익은 배우들도 많이 보인다. 본래 적은 제작비로 인해 대부분의 출연진을 무명 배우로 채우던 시리즈에 크리스 록과 사무엘 L. 잭슨이 투입되었다. 첨가된 만큼 빠진 것들도 있다. 직쏘의 마스코트인 빌리 더 퍼펫이 다른 캐릭터로 대체된다. 대미를 장식하는 “Game over.” 도 없다. 직쏘가 등장하지 않기에 차별화를 두려는 제작사의 의도라 판단되지만 아무래도 허전한 느낌이 없지 않다. 트랩의 연출도 훨씬 디테일하다. 잔인함이 덜해졌지만, 컷 하나하나가 정교하고 사후 시신, 피의 묘사도 깔끔한 편이다. <쏘우 3D>(2010)에서 핑크색 피를 보고 몰입도가 확 떨어진 기억을 상기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쏘우>를 본격적으로 메이저 시장에 진출시키겠다는 제작진들의 의지가 돋보인다.

▲ 전 이번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쏘우2>(2005) 스틸컷.  © 라이온스게이트

 

 장르적으로도 변주를 주었다. <스파이럴>은 슬래셔, 고어보다는 형사물, 추격 스릴러에 가깝다. 이전에는 존 크레이머(토빈 벨)와 아만다(샤니 스미스), 호프만(코스타스 맨다이어)의 행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오로지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영화 전반적으로 <세븐>(1995)의 향기가 난다. 대런 린 보우즈만 감독도 실제 인터뷰에서 “<스파이럴>을 보면서 <세븐>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요 플롯에서 이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신참 백인 형사와 베테랑 흑인 형사가 팀을 맺고 진행하는 수사, 살인이 진행될 때마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상자, 점점 주인공을 향해 칼날을 겨누는 범인 등. 참혹한 사건 현장과 누렇고 탁한 잿빛도 <세븐>이 생각나게끔 한다. 전작에 대한 오마주와 이스터에그도 있다. <쏘우>를 대표하는 “Reverse bear trap”“Bathroom trap”에 대한 오마주는 예고편에도 있으니 관람하기 전에 시청하면 전편에 대한 향수와 함께 기대감이 더욱 상승할 것이다. 이스터에그는 많지는 않지만, 사무엘 L. 잭슨과 관련되어 있으니 영화 상영 도중 이를 찾아보는 재미도 챙기기를 바란다.

 

▲ <스파이럴>이 오마주한 두 명콤비. <세븐>(1995) 스틸컷. ©뉴 라인 시네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현 미국의 시국과 알맞다. <쏘우>는 시리즈 내내 경찰을 무능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치 못했다. 그중에서도 인과관계를 무시하고 이들을 밑도 끝도 없이 멍청하게만든 데에 대해 큰 질타를 받았다. 전작들의 주역이었던 에릭, 스트라움, , 할로란 등의 인물들을 오로지 결말과 반전을 위한 소모품으로만 사용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스파이럴>은 경찰을 효과적으로 비판했다고 생각한다.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뱅크스 형사(크리스 록)12년 전 어떤 사건을 떠올린다. 희생된 동료들은 당시 사건에 대해 소홀한 태도를 보였고 이후에도 각종 비리와 과잉진압을 저지르는 부패한 경찰들이다. 마지막 장면은 비리 경찰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측면에서 상당히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쯤 전 세계적으로 큰 쟁점이 되었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자연스럽게 상기시켜준다.

 

 이렇게 많은 장점 속에서도 흠이 뚜렷하게 보인다. 첫 번째로는 이번에도 각본상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사실상 시리즈가 지금껏 혹평을 들어왔던 가장 큰 이유인데, 보완은 됐지만, 아직 부족하다. <쏘우>하면 관객들은 대부분 트랩, 그리고 반전을 생각한다. 트랩은 그리 가학적이지도 않고 연출은 깔끔해졌다. 그런데 반전이 너무 뻔하다. 정말 너무 뻔하다. 주인공들의 주목적은 범인 찾기이다. 그렇다면 이것과 관련해서 뒤통수를 가격하는 정체가 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시나리오에 복선을 티가 나도록 깔아둔다. “설마 쟤가 범인은 아니겠지…” 라는 우려가 현실화된다. 또한 욕이 너무 많다. 경찰들끼리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절반 이상의 대사에 욕이 들린다. 필요 이상이다. 사무엘 L. 잭슨을 제외하면 욕의 맛도 살리지 못한다.

 

▲ 명불허전 사무엘 L. 잭슨. <스파이럴>(2021) 스틸컷.  © 라이온스게이트

 

 두 번째는 배우 문제이다. 상영 내내 뱅크스 형사 역의 크리스 록이 거슬렸다. 역할에 융화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뱅크스 형사는 사고뭉치에 경찰서 내 파벌싸움에서 밀려났지만 직쏘 모방범 사건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접근한다. 코믹함과 진지함이 잘 섞여야 하는데 크리스 록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래도 대외적으로 코미디언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인지 진지하게 열변을 토하는 부분도 익살스럽게 보일 뿐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러키스 스탠필드가 배역에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파이럴>은 분명 괜찮은 작품이다. 하지만 절대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볼 만한 요소들은 충분하기에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이러한 장르의 작품들은 사운드 시설의 차이가 감상에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낸다. 극장에서 관람해야 극한의 체험을 끌어낼 수 있다. 날씨도 더워지고 있으니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는 영화 한 편은 이번 여름의 활기찬 시작을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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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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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1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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