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돌아보게 만드는 이가 사랑인가, 마주 보는 이가 사랑인가

우리도 사랑일까 (2011) by 사라 폴리

류수연 | 기사승인 2021/05/14

자꾸만 돌아보게 만드는 이가 사랑인가, 마주 보는 이가 사랑인가

우리도 사랑일까 (2011) by 사라 폴리

류수연 | 입력 : 2021/05/14 [10:00]

[씨네리와인드|류수연 리뷰어]

  

▲ <우리도 사랑일까>  스틸컷     © 티캐스트     

 

여기, 연인들의 풀리지 않는 난제가 하나 있다.

 

우리는 서로를 평생 동안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나 드라마 혹은 미디어에 간혹 등장하는 기삿거리에는 생이 다할 때까지 오로지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하나의 완결된 사랑을 이룬 이들이 나온다. 어떤 고난과 역경,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랑만을 외치며 살다 간 이들을 두고
저것 봐. 저런 태도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지.”
라고 중얼거리며 우리 옆을 차지한 이의 이마에 뜨겁게 키스한다. 우리의 사랑도 이처럼 계속해서 타오를 것이고 마침내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감독 사라 폴리는 단꿈에 젖은 연인들의 호수에 잔잔하지만 깊은 파문을 던진다.

 

우리의 지나간 연인들은 그렇다면 다 무엇이었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나?

 

영화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비추는 부엌에서 열심히 머핀을 굽는 마고로부터 시작된다.
카메라는 머핀을 굽기 위해 부엌을 분주히 오가는 마고의 얼굴과 발을 쉴 새 없이 쫓아가고 마고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스텝을 이리저리 옮긴다. 그러나 열기가 새어 나오는 오븐을 바라보는 마고의 표정은 권태롭고 사뭇 지쳐 보이기까지 한다. 곧 컷이 전환되고 길 위를 바쁘게 걸어 다니는 마고의 발로 시선이 옮겨진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중세가장행렬 축제 홍보기사를 쓰는 마고는 그곳에서 유달리 거슬리는 한 남자(대니얼)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옆자리에 우연히 그 남자가 타게 된다. 독특한 유머 감각을 지닌 마고를 남자는 쉴 새 없이 웃게 하고 우연은 계속되어 남자는 마고가 사는 동네와 아주 가까운 곳에 거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 <우리가 사랑일까>를 감상한 관객들은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 서사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흐뭇해할 테지만, 사라 폴리는 우리에게 그런 안도감을 내려주지 않는다. 합승한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마고는 묘한 기류를 삼키고 대니얼에게 결혼 여부를 밝히며 남편 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 <우리도 사랑일까>  스틸컷     © 티캐스트     

 

  

결혼과 불륜의 이야기로 영화가 점프 되기 전에 우리는 이 영화의 원제에 주목해야 한다.

Take this waltz”

이 영화는 연인 간의 사랑을 한 쌍의 남녀가 일정한 리듬과 박자를 맞추며 추는 춤, 왈츠에 비유하고 있다. 이미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루와 마고 커플은 서로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들의 일상에 자리한 사랑의 리듬에는 불협화음이 끼어든 지 오래다. 닭 요리를 위한 요리책을 집필하는 루는 늘 부엌에서 닭을 요리하느라 바쁘고 그런 루를 향해 마고는 육체적 친밀감을 느끼고 싶지만 박자는 항상 엇갈린다. 마고에게 사랑은 둘만의 특별한 순간을, 서로만을 갈구하는 그 뜨거움을 온전히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키스를 하다가도 평소처럼 장난으로 무마하거나 닭요리에 열중하기 위해 그녀를 밀어내는 루의 템포, 박자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늘 당신 반응은 내 예상대로일까? ... 매번 나한테 남는 건 더 큰 절망감뿐이야.”

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난 그냥 닭 요리를 하고 있었을 뿐이야.”
당신은 맨날 닭요리만 하잖아.”

 

서로 다른 템포로 골짜기가 패이기 시작한 루와 마고의 틈으로 대니얼이 손을 내민다.

 

다정하고 장난기 많은 루와의 박자를 맞추고 익숙한 왈츠를 돌 것인가,
대니얼이 내민 새로운 템포의 왈츠 신청을 받아들일 것인가.

 

마고는 이 둘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너무나 익숙해서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한 루와 달리 낯선 사람이기에 예측이 불가능한 대니얼과의 만남을 마고는 아슬아슬하게 이어간다. 그러나 한 사람에 대한 선택은 한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상처를 유발하므로, 선택을 유보한 채 마치 공항의 환승 구간에서 버려진 사람처럼 마고는 사이에 끼어서 붕 떠 있는상태를 지속한다. 영화 초반부 대니얼에게 밝혔던,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태에 스스로 갇히고 만 것이다.

 

이후 행복해야 할 루와의 결혼기념일에 마고는 돌연 슬픈 아이러니를 느낀다. 으레 오래된 커플이 그러하듯, 매일을 함께 하기에 특별히 털어놓을 이야기가 없고 모든 것을 다 알기에 특별히 기대할 것이 없는 루와의 관계에서 그녀는 그저 말없이 밥을 삼킨다. 이윽고 마고는 해변으로 가서 대니얼을 만난다. 센터 아일랜드에 있는 놀이기구 스크램블러를 타러 간 둘은 빠르게 회전하는 놀이기구 안에서 원심력에 의해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이 몸이 붙는 긴장감을 내내 즐긴다. 이 스크램블러 놀이기구는 루와의 안정적이면서 단조로운 관계와 달리 가까워져선 안 되기에 늘 멀리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하지만, 이따금 금기를 깨고 가까운 거리로 들어오고야 마는 대니얼과 마고의 관계를 상징한다.

 

▲ <우리도 사랑일까>  스틸컷     © 티캐스트     

 

두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고의 삶을, 갈등으로 잠식된 거창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탓에 관객은 아무것도 모르는 루가 되기도 했다가 죄책감과 짜릿함 사이에서 고민하는 마고가 되기도 했다가 그런 마고를 지켜보며 선을 넘을 듯 말 듯 구는 대니얼이 되어보기도 한다. 우리 모두 필연적으로 새것이 헌것이 되어버리는과정을 겪으며 삶을 살아왔기에 그리고 그로부터의 일탈을 한 번쯤은 꿈꿔왔기에 관객은 함부로 마고를 재단할 수가 없다.
이 영화의 묘미는 바로 그 점에서 온다.
우리가 때론 루이기도 하고 마고이기도 하고 대니얼이기도 했다는 것에서.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은 루, 그리고 대니얼을 바라보는 마고의 시선이다마고는 언제나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장난과 농담을 반복하는 루가 아닌, (루가 있기에)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대니얼을 선택한다. 내가 가진 대상은 이미 내 옆을 마주하고 있고, 오로지 가질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인간은 뒤를 돌아보기에. 마고는 그녀를 내내 돌아보게 만드는 이가 진정한사랑이라 믿으며 루와의 관계를 청산한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루는 떠나는 마고에게 그만의 사랑 방식이었던, 왈츠의 박자를 고백한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아내를 놀려 주기 위해 매일 몰래 찬물을 끼얹었던 자신의 뜨뜻 미지근하지만, 그렇기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던 사랑의 박자를.

 

그럼 샤워기는..”

고장이 아니었어. 그냥 나중에 늙어서 내가 수십 년 동안 매일 이 짓을 했다고 고백하려 했어.
그래서 당신을 웃게 해주려고...”

 

루를 뒤로하고 대니얼을 만나기 위해 해변으로 향하는 마고.
마침내 마고는 온도, 템포, 리듬이 모두 일치하는 진정한 왈츠의 무대를 찾은 것일까?

 

여기서 사라 폴리 감독의 출중한 재능이 드러난다.

 

대니얼을 택한 마고가 일상을 함께하고 사랑을 나누는 공간은 마치 연극 무대를 관람하는 것처럼 전체를 볼 수 있게끔 카메라가 이들을 360도 회전하며 비춘다. 비워져 있던 무대는 마고와 대니얼의 물건으로, 그들의 시간으로 가득 차 간다. 그러나 격렬한 웃음과 에너지가 넘치던 대니얼과 마고의 시간은 흡사 정적인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던 루와 마고의 시간을 덧씌운 것처럼 변한다영원히 타오를 듯 서로만을 갈구하던 육체적 설렘의 기억은 퇴색되고 마고는 루와의 관계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대니얼과의 관계에서도 그들 사이를 맴돌던 짜릿한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긴장감이 사라진 곳에는 오로지 공허만이 남는다. 한때는 말이 아닌 눈빛으로 사랑을 보여주던 대니얼과 마고는 입 밖으로 사랑을 내뱉어 확인하고야 마는, 다른 모든 커플이 숱하게 겪는 익숙함이라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항상 템포를 빠르게 걷던 마고의 발 클로즈업 샷은 대니얼과의 사랑의 박자가 변한 것처럼 점차 느린 템포로 변한다.

 

반복되는 사랑의 템포 변화로 또다시 권태로운 얼굴을 한 마고를 향해 루의 동생, 제럴딘은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라고 말한 뒤 자리를 뜬다이 대사야말로 사라 폴리 감독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마치 발효가 잘된 에멘탈 치즈처럼 인생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기 마련이고 그걸 어리석게 메우려고 하는 것 자체가 에멘탈 치즈를 에멘탈 치즈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생을 완성시키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불완전함이며 인간은 언제나 불완전함을 떠앉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새로운 박자를 받아들이더라도 다시 말해,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더라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템포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언젠가 왈츠를 추는 환상의 무대에 불이 꺼지고 끝이 오리라는 것을.

 

사랑의 끝은 언제나 익숙함이라는 것을.

 

영화의 후반부 장면은 이윽고 오프닝 장면으로 이어진다. 땀을 흘리며 머핀을 굽는 마고의 뒤로 아무 말 없이 대니얼이 지나간다. 한숨을 크게 쉰 뒤 그의 등허리를 안는 마고. 둘은 결코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고는 스크램블러 기구에 홀로 앉아 쓸쓸함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삶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기구가 회전하고 바람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간다. 기구에 온몸을 맡긴 마고는 마침내 미소를 짓고 영화는 끝이 난다.

 

 

 

Who is 사라 폴리? (사라 폴리는 누구인가)

 

▲ <우리도 사랑일까> 촬영 현장      © 씨캐스트     

 1979년생 캐나다인 배우이자 감독인 사라 폴리.

아마도 당신에겐 영화 <새벽의 저주>의 강인하고도 인간미 넘치는 간호사 안나영화 <스플라이스>에서 광기에 젖은 매드 사이언티스트 엘사 역으로 익숙할 그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연기에 도전하는 배우이자 이제는 라이징이 아닌, 묵직하고도 섬세한 울림을 던져주는 영화를 만드는 중견 감독으로 인식의 전환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감상하고 그녀의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면사라 폴리의 내밀한 가족사가 담긴 자전적 다큐멘터리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추천한다가족 내의 금기이자 비밀이었던 자신의 기원을 더듬어 찾아가는 사라 폴리의 담담한 고백사는 당신에게 충격과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도록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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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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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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