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권력과 차별에 대한 부정을 한 폭의 동화에 담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김혜란 | 기사승인 2021/05/20

모든 권력과 차별에 대한 부정을 한 폭의 동화에 담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김혜란 | 입력 : 2021/05/20 [11:00]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씨네리와인드|김혜란 리뷰어] 로맨스 영화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을 주제로 한다는 점에서 강력한 장점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로맨스 영화 속 등장인물의 감정에 곧잘 몰입하여 동화되곤 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여성 엘라이자와 학대받는 크리처의 사랑 이야기는 독특하지만, 매혹적이며,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을 동요하게 만든다. 더불어 이런 인물들의 관계 설정은 영화의 제목처럼 정형할 수 없는 사랑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있기도 하다. 훌륭한 로맨스 영화이지만, 이 영화가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권력과 소수자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어른들의 동화 속 권선징악

 

프롤로그와 엔딩에서 작정하고 내레이션을 삽입했듯이 이 영화는 동화의 플롯을 가져온다. 해피엔딩, 권선징악. 흔하디 흔한 동화 속의 클리셰를 그대로 적용한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전통적인 동화와는 다르게 여성이 주체적이고, 남성(크리처)이 수동적이며, 에로틱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밀고 있다. 이는 동화의 그것보다 상당히 매섭다. 환상적인 음악과 영상 그리고 크리처와 엘라이자의 사랑 이야기에 자칫 속아 넘어가기 쉽지만, 이 영화가 그저 에로틱한 로맨스만 담고 있다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이유다.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속 악역으로 그려지는 스트릭랜드는 그 자체로 위압적인 권력을 상징한다그는 미국 중산층의 비장애인 백인 남성으로서 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사람이다영화 속 배경이 되는 1960년대 미국의 백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철저한 계급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주류라고 볼 수 있다뭐 하나 부족할 게 없고바꿔 말하면 뭐 하나 차별받지 않는 사람이다그렇기에 그는 거만하고오만하다자신의 생각과 선택이 늘 옳다고 믿으며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관철한다놀랍게도 이런 이들은 오늘날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그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결코 틀렸다고 생각하는 법이 없다그들은 스스로 검열하거나의심하지 않는다. ‘스트릭랜드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그 전형적인 모든 특성을 집약한 캐릭터이다.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 위에 늘 군림해야 하는 그는, 성적으로도 엘라이자를 욕망하며, 그 위에 군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엘라이자는 그가 그토록 무시하고, 학대하던 크리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엘라이자는 크리처를 구해주기 위해 연구실에서 크리처를 빼돌리게 되고, ‘스트릭랜드는 크리처를 되찾아오지 않으면 자신이 속해있던 주류 사회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하게 된다. 크리처를 찾는 과정에서 보이는 스트릭랜드의 집착은 직업적 사명이라기보다는 계급 박탈의 두려움과 더 흡사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주류를 차지하는 권력을 향해 날카로운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는 것은 이 스트릭랜드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영화 초반부엔 손가락이 잘리고, 중반부엔 새 차가 부서지고, 결말에 다다라서는 마침내 그가 그토록 하대했던 크리처에게 죽음을 맞이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장면이 그가 결국 파멸할 것이라고 암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그의 손과 그의 미래를 상징하던 청록색 차가 엘라이자일행에 의해 처참하게 구겨진 것은 그가 올바르다고 믿었던 신념과 미래가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복선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는 언제든지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스스로 검열하지 않는 '스트릭랜드'의 파멸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결말이다. 그런데도 그의 죽음은 아주 통쾌했다. 살아서는 오만을 지우지 않는 자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이며, 진정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직접적인 일갈이다.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에서 가장 시원한 권선징악이 아닐 수 없다.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행동함으로써 의미하는 권력 전복의 미학

 

이 영화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혹자는 크리처가 그저 엘라이자의 욕망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소수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크리처를 누구보다 수동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지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만약, 성별이 반전되어 크리처가 여성, ‘엘라이자가 남성이라면 이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문제점이라고 꼬집는다. 이 주장에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껏 미디어에서 여성이 수동적이고, 욕망의 대상으로 비치는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는 것이다. 동시에 남성의 성적 판타지, 남성의 욕구는 흔히 봐왔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반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초반 시퀀스에 나오는 엘라이자의 자위 장면은 누군가의 시선에서 성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탐닉하는 여성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여성의 자위가 대부분 남성의 성욕을 불붙이는 역할로 쓰여왔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주체적인 여성상의 메시지를 지닌다. 이런 맥락을 뒤로 한 채, ‘만약 크리처가 여성이었다면?’, ‘엘라이자가 남성이었다면?’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큰 패착이 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동안 주류로 다뤄오지 않은 여성, 게다가 더욱 비주류로 분류되는 장애인 여성이 다른 소수자-동성애자 노인, 흑인 여성 노동자, 외국인-들과 적극적으로 연대를 꾀하여 목표를 이루는 이야기다. 영화 속 소수자들은 사회에 순응하기보다는 범법행위를 해서라도 자신의 권리 혹은 가치를 찾는 쪽을 택한다. ‘엘라이자가 사랑하는 크리처를 구출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일종의 투쟁이라고까지 읽히는 이유다. 영화 속 어떤 설정들은 설정만으로도 강력한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바로 이런 경우다. 만약 막강한 남성형 크리처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되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장애인 여성의 이야기였다면, 이는 지금까지 흔히 봐왔던 신데렐라 스토리를 답습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면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어딘가 비틀린 공주와 왕자 이야기는 분명 통쾌한 면이 있다. 이는 또 다른 권력의 전복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공식 예고편 中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

 

까마득하게 어렸을 때, <신데룰라>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여러분이 잘못 읽은 게 아니다. 정말 제목이 <신데룰라>였다.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래전 읽었던 동화책이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되새기다가 문득 떠올랐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 동화책은 신데룰라라는 새로운 주인공과 신데렐라를 비교하여 <신데렐라>의 의존성과 수동성을 풍자하는 작품이다. ‘신데룰라는 왕자를 기다리며 한탄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여 사랑을 이뤄낸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바로 엘라이자처럼. ‘엘라이자자일스를 설득하기 위해 했던 위 말은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짝 귀띔해준다. ‘엘라이자처럼 온몸과 온 마음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을 위해서든, ‘자일스젤다처럼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든, 이유가 어떤 것이든, 굴종하는 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자만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수 있다고.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스틸컷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자칫 거부감이 들 수 있는 크리처와 인간 여성의 사랑 이야기는 이처럼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메시지와 영화적 장치로 인해 타당성과 설득력을 확보했다. 게다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정점에 오른 연출력을 통해 구현된 우아한 미장센과 음악은 이들 관계를 극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이들뿐만 아니라 지구 상의 모든 사랑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있다. 앞서 말한 모든 것-권력의 전복, 권력의 붕괴-을 빌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명확하다. 성 정체성, 장애, 인종, 성별 등 사회적으로 규정된 모든 걸 넘어서서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찬양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사랑마저 옳고 그름이 있는 세상에 어떤 자유와 희망이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사랑에 너무 많은 잣대를 들이대고, 쉽게 재단하는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낭만적인 메시지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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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씨네리와인드 객원취재부 기자단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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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ted 2021.05.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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