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섬이 마침내 자산으로 보이는 순간

Review|'자산어보'(2019)

한지나 | 기사승인 2021/05/24

흑백의 섬이 마침내 자산으로 보이는 순간

Review|'자산어보'(2019)

한지나 | 입력 : 2021/05/24 [11:25]

▲ '자산어보' 포스터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섬에 장창대張昌大 덕순德順이라는 사람이 있어 문을 닫아걸고 손님을 사양한 채 독실히 옛 서적을 좋아하였다. 다만 집이 가난하고 책이 적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음에도 공부한 것이 폭넓지 못하였다. 하지만 성품이 조용하고 정밀하여 무릇 직접 듣거나 본 풀과 나무, 새와 물고기는 모두 자세히 살피고 깊이 생각하여 그 생리를 알았으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하였다. 나는 마침내 그를 불러들여 머무르게 하면서 그와 함께 연구하고 차례를 매겨 책을 완성하고는 자산어보라고 이름 붙였으니, 이외에도 바다의 날짐승과 해초류까지 언급하여 후대 사람들이 상고詳考하고 증험證驗할 자료로 삼았다.

-<자산어보> 서문-

 

[씨네리와인드|한지나 리뷰어] 영화 '자산어보'는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하나의 이름 창대에서 시작된다. 순조 1, 신유박해로 천주교도인 정약용 형제는 목숨을 위협받는데 그중 약종은 순교를 약용과 약전은 각각 강진과 흑산도로 먼 유배길에 오르게 된다. <자산어보>는 정 씨 형제 중 우리에게 더 익숙한 약용이 아닌 조금은 낯선 약전에 관한 이야기다.

 

전남 신안군의 작고 검은 섬에 도착한 약전은 풍만한 호기심으로 낯선 섬을 파고든다. 그곳에서 훗날 제자이자 벗이 될 창대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창대는 양반의 서자로 상놈이라는 한계 아래 홀로 글공부를 하며 출세의 꿈을 키워나가는 청년 어부다.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이며 백성을 위하는 길이라 믿는 창대는 사학죄인인 약전을 불경스럽게 여기고 그를 멀리한다. 창대에게 약전은 나라를 세운 토대를 무시하고 왕을 부정하는 반역자였다. 그러나 약전의 도움으로 옥살이를 면하고 그의 지혜를 엿보며 더 큰 세상을 보게 된 창대는 서서히 약전과 가까워진다. 그렇게 약전은 창대에게 글을 창대는 약전에게 바다생물을 가르치는 거래로 포장된 우정의 길이 돋아난다.

 

▲ '자산어보'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홍어가 가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가 가는 길은 가오리가 알지라.”

 

홍어와 가오리의 길. 창대의 말에서 약전은 흑산도의 길을 걷게 된 자신만이 쓸 수 있는 흑산도의 길을 적어내기로 결심한다. 바로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통해서. 약전은 창대와 함께 바다를 나서며 바다생물의 한자 이름을 짓고 그 특징을 세세히 기록하며 <자산어보>를 집필한다. 어부와 학자는 하나가 되어 인류부터 시작해 무인류, 해수, 해초까지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상세히 관찰하며 글을 적어나간다. <자산어보>는 백성의 곁에서 모든 것을 기록하며 백성들이 가는 길을 돕고자 하는 약전의 새로운 도약이다. 약전이 창대에게서 바다를 배우는 만큼 창대 또한 약전에게 글을 배우며 온전한 글공부를 즐기고 성리학을 향한 이상을 키워나간다. 영화는 이렇게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가 된 두 사람이 벗이 되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다에 머무르는 과정을 전개한다.

 

하지만 창대는 약전의 <자산어보> 집필을 도우면서도 마음속 깊이 자리한 의문을 떨치지 못한다. 동생 약용이 쓴 <경세유표>,<목민심서>는 제도의 개혁으로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뚝심을 표하는 데에 비해 약전의 <표해시말>, <자산어보>는 단지 작은 세상일을 탐구하는 데에서 그치니 말이다. 서자로 태어나 글을 배우며 출세의 욕망을 키워 온 창대는 성리학을 통해 백성을 다스리고 임금을 섬기는 일이야말로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라 믿는다. 그런 창대에게 약전은 바다에서 떠내려온 지구본을 건네며 성리학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서학의 이점을 받아들여 더 광대한 길을 걸을 것을 권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끝내 약전은 자신이 약용과 같은 글을 적어낼 수 없는 까닭을 밝힌다. 어떠한 계급도 없고 성리학의 꼭대기에 위치해야 할 임금도 없는 세상. 서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시대에 내놓기에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창대는 성리학을 져버리고 서학을 수용해 섬에 갇혀있는 신세임에도 여전히 위태로운 발언만을 내뱉는 약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계속해서 크고 옳은 길이 아닌 작은 샛길로 걸어가는 그의 스승과 함께할 수 없다. 결국 창대는 약전과 흑산도를 뒤로하고 <자산어보>가 아닌 <목민심서>의 길을 택한다. 창대는 물고기를 잡는 삶과 시를 짓는 삶은 다르다는 구분을 지울 수 없다. 창대는 물고기를 잡는 삶이 아닌 시를 짓는 삶을 사람다운 삶이라 판단한다. 창대의 떠나감은 섬의 바닷길이 아닌 뭍의 길을 걸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리고 그 의지의 발현은 곧 임금을 모시는 나라의 백성을 다스리겠다는 성리학에 뿌리를 둔 마음이다.

 

그러나 창대가 간과한 것은 뭍의 길은 너무도 탁해 걷는 사람조차 추악하게 물들인다는 사실이다. 과거시험을 치른 후 진사 자리에 올랐만, 그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포악하게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뿐이다. 갓난아기에게까지 세금을 매기는 까닭은 임금을 나라를 위해서라는 말뿐이다. 목민심서의 길을 걷기에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 근원조차 찾을 수 없게 부스러져있다. 자신이 읽어 공부한 것처럼 옳고 바른 글자로 임금을 위한다면 나라가 바로 서리라 믿었지만, 갑오징어의 먹물같이 선명한 창대의 의지마저 부패한 권력 앞에서 색을 잃고 퇴색된다. 임금 곁으로 다가서려던 창대는 도리어 임금 없는 세상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왜 약전이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세상을 원했는지를 말이다.

 

▲ '자산어보' 스틸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학처럼 사는 것도 좋지만.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이 있지 않겠느냐.”

 

결국 창대는 다시 섬을 찾는다. 약전이 남긴 마지막 당부를 마음에 새기고 흑산도로 돌아온 창대는 비로소 흑백의 섬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사이로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파랑새를 본다. 현란한 시를 짓고 비단을 두른 채 출세하는 삶보다 바다와 생물을 탐구하고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속에서의 배움이 더 두터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창대는 이제 알았다. 흑산에서 걷는 여정이 단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출세를 위한 발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빛나는 자산과 같은 길이었다는 사실을. 흑산도 장창대라는 개인의 삶은 결코 헛되고 사소한 것이 아니었음을.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는 약전의 말에 힘이 더해진 순간이다.

 

<자산어보>는 결코 관객에게 확고한 가르침이나 고정된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흑백의 섬이 채색되는 순간의 풍광을 조명할 뿐이다. 흑산이라는 섬을 세밀하게 살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비추고 자유와 평등을 향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사소한 듯 보이는 이야기를 확대해 거시적인 태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바람과 인간을 향한 애정이 영화를 깊이 있는 짙은 수묵화로 그려낸다. 200여 년 전 사상의 갈등과 옳은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현재까지 유효한 질문이 되어 자리를 지켜냈다. 개인의 역사를 비추어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획으로 이어주는 힘, 영화 <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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